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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중국이 또 시작했다. AI판 AIIB 만들기

상하이發 'AI 국제기구', 미국 AI 패권에 던진 도전장

by 서지삼


글로벌 AI 규칙 전쟁의 막이 오르다

2025년 7월, 글로벌 AI 생태계에 지각변동이 일어났습니다. 트럼프 행정부가 24일 'America's AI Action Plan'을 발표한 지 불과 이틀 만인 26일, 리창 중국 총리는 상하이 세계인공지능대회(WAIC)에서 "글로벌 AI 협력 기구" 설립을 제안했습니다. 마치 2015년 중국이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설립을 통해 기존 국제금융 질서에 도전했던 것처럼, 이번에는 AI 거버넌스 영역에서 비슷한 시나리오가 펼쳐지고 있습니다.

"AI가 소수 국가와 기업의 전유물이면 안 된다"는 리창 총리의 선언은 단순한 수사가 아닙니다. 이는 미국 중심의 AI 표준화와 칩 공급망 통제에 맞서는 중국의 전면적 대응 전략입니다. 표준, 칩, 데이터를 둘러싼 새로운 냉전의 서곡이 시작된 것입니다.


250726.png 2025년 7월 26일 상하이에서 열린 세계인공지능대회 개막식, 리창 중국 총리 연설


왜 지금 'AI 거버넌스'인가

AI 거버넌스가 급부상하는 배경에는 두 가지 구조적 요인이 있습니다. 첫째, 기술 확산 속도와 안전·윤리 리스크 간의 극심한 불균형입니다. ChatGPT가 출시 2개월 만에 1억 사용자를 확보하며 인류 역사상 가장 빠른 기술 확산을 보인 반면, 딥페이크, 알고리즘 편향, AGI 위험 등 부작용에 대한 대응 체계는 여전히 공백 상태입니다.

둘째, 이러한 규범 공백을 선점하려는 패권국들의 전략적 동기가 맞물렸습니다. AI는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경제·군사·사회 전반을 재편하는 범용기술(GPT)입니다. 따라서 AI 규칙을 누가 설계하느냐에 따라 향후 수십 년간의 글로벌 질서가 결정될 수 있습니다. 미국과 중국 모두 이 '규칙 설계권'을 놓고 경쟁할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미국의 America's AI Action Plan

트럼프 대통령이 서명한 AI 행정명령의 핵심은 세 가지 축으로 요약됩니다. 먼저 발표 배경을 보면, 이는 노골적인 대중 견제와 동맹 결집 전략입니다. "AI 경쟁에서 승리함으로써 인류 번영, 경제 경쟁력, 국가 안보의 황금기를 실현하겠다"는 백악관의 구상에는 중국의 부상을 저지하겠다는 의도가 명확히 드러납니다.


발표 배경: 對中 견제와 동맹 결집

핵심 정책 수단으로는 첫째, 칩 수출통제와 공급망 보호가 있습니다. AI 연산 장치의 위치 추적 기술을 통해 적성국 유입을 차단하고, 엔비디아 등 미국 기업의 첨단 칩이 중국으로 흘러가는 것을 원천 봉쇄하겠다는 전략입니다.


핵심 정책 수단

둘째, '풀스택 AI 수출 패키지'를 통한 동맹국 기술 확산입니다. 상무부와 국무부가 협력해 미국산 AI 기술과 표준을 패키지로 묶어 동맹국에 수출하되, 중국 등 경쟁국의 기술 접근은 차단합니다. 셋째, NIST(미국표준기술연구소) 중심의 AI 안전 표준과 규제 로드맵 구축입니다. 이를 통해 UN, OECD, G7 등 국제기구에서의 표준화 주도권을 확보하겠다는 계획입니다.


동맹 네트워크 확장 전략

동맹 네트워크 확장 전략도 주목할 만합니다. 기존 QUAD, AUKUS 등 안보 동맹을 AI 기술 협력으로 확장하면서, 유럽, 일본, 한국 등과의 기술 외교를 강화해 중국 포위망을 구축하려 합니다.


중국의 '글로벌 AI 협력 기구' 구상

중국의 대응은 미국과 정반대 방향입니다. WAIC 2025에서 발표된 핵심 내용을 보면, 상하이를 본부로 하는 다자간 AI 협력 플랫폼을 구축하겠다는 구상이 담겨 있습니다. 이는 기존 미국 중심의 AI 거버넌스에 맞서는 대안 질서 구축 시도로 해석됩니다.

WAIC 2025 발표 핵심: 상하이 본부·다자 플랫폼

중국의 AI 행동계획 세부 항목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첫째, 오픈소스 커뮤니티와 인력 교류 확대입니다. "AI를 인류 공동의 자산이자 국제 공공재"로 규정하며, 40개 이상의 대규모 언어모델(LLM)과 관련 기술을 글로벌 개발자 커뮤니티에 공개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행동계획 세부 항목

둘째, 칩 공급난 해소 제안입니다. 화웨이의 '클라우드매트릭스 384'처럼 엔비디아 대안 칩을 개발해 글로벌 시장에 공급하겠다는 전략입니다. 셋째, 데이터 거버넌스와 알고리즘 투명성 강화입니다. 개인정보 보호와 데이터 보안을 보장하면서도 데이터의 자유로운 흐름을 지원하겠다는 것입니다.


'글로벌 사우스' 연대와 기술 공유 패키지

특히 '글로벌 사우스' 연대 전략이 눈에 띕니다. 리창 총리가 "남반구 개발도상국에 중국의 AI 개발 경험을 공유하겠다"고 밝힌 것은 아프리카, 남미, 동남아시아 등 개발도상국을 대상으로 한 기술 공유 패키지를 의미합니다. 이들 국가에 저렴한 AI 인프라와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해 중국 중심의 AI 생태계로 끌어들이겠다는 전략입니다.


美 vs. 中 전략 비교

미중 양국의 AI 거버넌스 전략은 근본적으로 다른 철학에 기반합니다.


가치 프레임: 안전·민주 vs. 개방·평등

가치 프레임 측면에서 미국은 '안전과 민주적 가치'를 내세웁니다. AI 기술이 자유민주주의 가치에 부합하도록 규제하고, 권위주의 국가의 AI 오남용을 방지하겠다는 논리입니다. 반면 중국은 '개방과 평등'을 강조합니다. AI 기술이 소수 기업에 독점되지 않고 모든 국가가 공평하게 혜택을 누려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거버넌스 수단: 단일 규제 vs. 다자기구

거버넌스 수단에서도 차이가 뚜렷합니다. 미국은 자국 법률과 동맹국 협력을 통한 '단일 규제' 방식을 선호합니다. 미국 표준을 글로벌 표준으로 만들고, 이를 따르지 않는 국가에는 제재를 가하는 방식입니다. 중국은 UN 등 기존 국제기구와 새로운 '다자기구'를 통한 합의 기반 거버넌스를 제시합니다.


핵심 자원 확보 방식: 칩·표준·데이터

핵심 자원 확보 방식에서는 더욱 극명한 대조를 보입니다. 칩 분야에서 미국은 수출통제와 공급망 차단을 통해 중국의 접근을 원천 봉쇄하려 합니다. 중국은 자체 칩 개발과 대안 공급망 구축으로 맞서고 있습니다. 표준 영역에서 미국은 NIST, IEEE 등 기존 표준화 기구를 통한 주도권 유지를 추구하는 반면, 중국은 새로운 국제기구를 통해 대안 표준을 만들려 합니다.


AIIB(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 설립 모델의 데자뷔

중국의 AI 협력기구 구상은 2015년 AIIB 설립 과정과 놀라울 정도로 유사합니다. 이는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중국이 기존 서구 중심 국제질서에 도전하는 일관된 전략 패턴을 보여줍니다. AIIB는 2015년 중국이 주도해 설립한 다자개발은행으로, 기존 국제금융 질서에 균열을 낸 상징적 사건입니다. 시진핑 주석이 2013년 일대일로 구상과 함께 제안한 이 기구는 아시아 지역의 인프라 개발에 특화된 금융기관으로, 1000억 달러의 자본금을 바탕으로 출범했습니다. 영국이 2015년 3월 창립회원국 참여를 선언한 것을 시작으로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등 주요 서구 선진국들이 줄줄이 합류했습니다. 57개 창립회원국으로 시작해 현재 100여개국이 참여하고 있는 AIIB는 개발도상국들에게 세계은행과 아시아개발은행(ADB)의 실질적 대안을 제공하며 성공적으로 안착했습니다. 이는 중국이 기존 서구 중심 국제기구에 정면으로 맞서지 않으면서도 대안 질서를 구축해 영향력을 확대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대표적 사례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AIIB 설립(2015) 성공 요인 3가지

AIIB의 성공 요인을 분석하면 향후 AI 협력기구의 전개 양상을 예측할 수 있습니다.

첫째, 기존 질서의 공백과 불만을 파고든 것입니다. 세계은행과 아시아개발은행(ADB)이 아시아 인프라 수요(연간 1조 7천억 달러)를 충족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AIIB가 대안으로 등장했습니다. 특히 개발도상국들은 까다로운 조건과 긴 승인 절차에 불만이 컸습니다.

둘째, 실질적 자원 제공입니다. 중국이 1000억 달러 자본금을 출자하며 회원국들에게 구체적 혜택을 제시했습니다. 말로만 협력을 외치는 것이 아니라 실제 돈과 기술을 투입했던 것입니다.

셋째, 글로벌 사우스의 적극적 호응입니다. 기존 국제금융기구에서 소외받던 개발도상국들이 대거 참여했습니다. 심지어 영국, 독일, 프랑스 등 서구 선진국들도 미국의 반대를 무릅쓰고 창립 회원국으로 가입했습니다.


AI 협력기구 평행선: 회원 모집·자원 제공·규범 주도

AI 협력기구도 AIIB와 유사한 평행선을 그리고 있습니다.

회원 모집 면에서 중국은 이미 아프리카, 남미, 동남아시아 국가들을 대상으로 사전 접촉을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WAIC 2025에 참석한 60여 개국 대표들을 상대로 구체적인 참여 방안을 논의했다고 합니다.

자원 제공 측면에서는 저렴한 AI 칩, 오픈소스 모델, 기술 교육 프로그램 등을 패키지로 제공하겠다고 공언했습니다. 화웨이가 공개한 클라우드매트릭스 384는 엔비디아 GB200 대비 30-50% 저렴한 가격에 비슷한 성능을 제공한다고 주장합니다.

규범 주도권에서는 기존 서구 중심의 AI 안전 표준에 맞서 '포용적 AI 거버넌스'라는 대안 담론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특히 "AI 기술의 민주화"와 "디지털 격차 해소"라는 명분으로 도덕적 우위를 선점하려 합니다.


차이점: 기술 의존도·안보 리스크·표준 호환성

하지만 AIIB와 AI 협력기구 사이에는 중요한 차이점들도 있습니다.

기술 의존도 측면에서 AI는 금융과 달리 미국 기업(엔비디아,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등)에 대한 의존도가 훨씬 높습니다. AIIB의 경우 기존 국제금융기구와 병행 이용이 가능했지만, AI 생태계는 네트워크 효과가 강해 플랫폼 전환 비용이 막대합니다.

안보 리스크 또한 인프라 투자보다 AI 기술이 군사·감시 용도로 전용될 가능성이 큽니다. 미국은 이미 중국의 AI 기술이 신장 위구르족 감시에 사용되고 있다며 강력히 비판하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서구 선진국들의 참여 가능성은 AIIB 때보다 현저히 낮습니다.

표준 호환성 문제도 심각합니다. CUDA 생태계와 호환되지 않는 중국 칩을 사용할 경우 개발자들이 이중 비용을 부담해야 합니다. 금융 분야와 달리 기술 표준의 분열은 글로벌 혁신 속도를 크게 저하시킬 수 있습니다.


"이번에도 통할까?"

AIIB의 성공 공식이 AI 협력기구에도 통할지는 네 가지 변수에 달려 있습니다.


표준·호환성: CUDA 생태계와의 이중 개발 비용

현재 글로벌 AI 개발자 대부분이 엔비디아의 CUDA 플랫폼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중국이 제공하는 대안 칩과 소프트웨어가 기존 생태계와 호환되지 않으면 개발자들이 이중 개발 비용을 감수해야 합니다. 화웨이의 클라우드매트릭스 384가 특정 조건에서 엔비디아 GB200보다 뛰어난 성능을 보인다고 하지만, 소프트웨어 생태계까지 고려하면 여전히 큰 격차가 있습니다.


칩 생태계·공급망: 수출통제·대안 칩 성능 변수

미국의 수출통제가 강화될수록 중국의 대안 칩에 대한 수요가 증가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최첨단 공정(3나노 이하)에서는 여전히 TSMC, 삼성 등에 의존해야 하는 상황에서 중국이 얼마나 경쟁력 있는 대안을 제시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신뢰·투명성: 데이터 거버넌스·안전 검증 메커니즘

AI 모델의 안전성과 편향성을 검증하는 메커니즘이 투명하지 않으면 글로벌 개발자 커뮤니티의 신뢰를 얻기 어렵습니다. 특히 데이터 거버넌스 영역에서 중국 정부의 강력한 데이터 통제 정책과 '글로벌 데이터 공유'라는 공약 사이의 모순을 어떻게 해결할지가 관건입니다.


글로벌 사우스의 선택: 기술 패키지 vs. 부채·보안 우

개발도상국들이 중국의 기술 패키지를 받아들일지는 단순히 경제적 혜택만으로 결정되지 않습니다. 부채 함정에 대한 우려, 기술 종속 가능성, 보안 리스크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합니다. 특히 인도처럼 중국과 지정학적 갈등이 있는 주요 개발도상국들의 참여 여부가 성패를 좌우할 것입니다.


누가 질서를 설계할 것인가

중국의 글로벌 AI 협력기구 제안은 단순한 국제기구 하나 더 만들기가 아닙니다. 이는 미국 중심의 기술 패권에 맞서는 체계적 도전이며, 향후 AI 시대의 글로벌 질서를 누가 설계할 것인가를 둘러싼 근본적 경쟁입니다. AIIB가 국제금융 질서에 균열을 낸 것처럼, 이번에도 기존 AI 거버넌스 체계에 상당한 변화를 가져올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반복되는 '새 기구 만들기' 전략에는 한계도 있습니다. 기술의 네트워크 효과와 경로 의존성이 강한 AI 분야에서는 단순히 대안 기구를 만드는 것만으로는 기존 생태계를 전복하기 어렵습니다. 실제 성과는 얼마나 매력적인 기술 패키지를 제공하고, 개발자 커뮤니티의 신뢰를 얻을 수 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결국 패권 경쟁을 넘어 다층 거버넌스 설계가 답일 것입니다. 미국식 동맹 중심 모델도, 중국식 다자협력 모델도 각각의 한계가 있습니다. 글로벌 AI 거버넌스는 기술 표준, 안전 규제, 윤리 가이드라인, 데이터 흐름 등 다양한 층위에서 복합적으로 작동해야 합니다. 어느 한 국가나 진영이 모든 것을 통제하려 하기보다는, 영역별로 최적화된 거버넌스 메커니즘을 구축하는 것이 현실적입니다. 이 과정에서 우리나라와 같은 중견국들의 중재 역할과 글로벌 시민사회의 참여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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