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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집공부 Jul 02. 2024

시키지 않은 일을 하는 이유

-내가 계획한 일에는 내 책임이 따른다-

나는  시켜서 하는 일은 하기 싫어하고,  시키지 않으면 일을 만들어내서 하는 청개구리였다.

나에게 학년만 맡겨주고 학년의 대표니까 알아서 계획하고 잘 지도해 보라는 좋은 교장선생님들을 만나는 행운도 따라주었다.

시켜서 하는 일은 딱 그 일만 하게 된다. 그리고 나에게 책임이 없다는 생각이다.

그런데 시키지 않은 일은 오롯이 나의 책임으로 남기 때문에 더 열정적이 되는 듯하다.


 비평준화 지역 고교에 근무할 때였다.

그 지역에서 별로 좋은 성적의 아이들이 아니어서인지 그동안 내가 만난 아이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일을 저지르는 스케일도 남달랐다. 화장실 휴지통에 응가를 한다며 청소해 주시는 이모님이 매일 고통을 호소하기도 했다. 심지어 학교 앞 버스 종점 기사 아저씨께 쌍욕을 하고 침을 뱉었다고 노여워서 학교로 찾아오는 일도 있었다. 참 별의별 아이들이 많았다.

선생님들도 감당이 어려운 아이들은  수업 중에 나에게  보내놓기도 했다.

겉으로 표현은 안 해도 나도 참 많이 버거웠다.

그러다 생각한 것이 연극부였다.

나는 각반에서 말썽 부리는 아이들은 무조건 다 연극부로 보내라고 용기 있게 말했다.

(후에 엄청 후회하긴 했다)

그러자 학교의 일진 짱부터 각반에서 문제 좀 일으킨다는 아이들이 반 강제적으로 오게 되었다.

물론 억지로 왔다며 눈물까지 보이고  운동부로 가겠다는 아이들은 그 아이들에게도 선택권이 있어서 다른 부서로 배정해 주었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연극부는 50명이었다.

나는 교장 선생님께 연극부를 만들고 싶은 취지를 잘 설명해 드렸다.

그래서 동아리활동비를 좀 많이 배당받을 수 있었다.

동아리 활동비를 받아 외부지도교사를 초청했다.

청소년 문화센터에서 연극동아리를 맡아 지도하고 계신 실력자였다.

우리는 연극부 창단 3개월 만에 안성에서 열린 '고교 연극대회'에  겁도 없이 참가신청서를 냈다.

아이들에게 다가온 목표를 성취해 내는 방법을 알려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연극부 아이들은 기본적으로 성실함과 책임감이 부족한 편이어서 남아서 연습하기로 한 시간에 안 나타나기 일쑤였고 토, 일요일에는 전화도 꺼놓아 연락두절 상태였다.

거르고 걸러서 30명으로 추려졌을 때 연극부 동아리 창단식을 했다.


예상한 대로 우리 학교는 연극제에서 좋은 성적을 올리지는 못했다.

하지만 다른 학교의 연극부 모습을 보며 아이들은 탄성을 질렀다.

“선생님 쟤네는 준비를 많이 했네요 무대장치까지 싣고 왔어요”라고 감탄했다.

하지만 나는 상을 못 타더라도 매일 학교에서 문제아 취급 당하는 아이들이 무대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기에 함께 연극제를 즐겼다.

아이들도 잘하는 학교의 연극부를 지켜보며 반성과 후회하는 마음을 내비치며 성실하게 연습하지 않은 것에 대한 아쉬움을 서로 나누고 있었다.

나는 이 무대를 망쳤다고 해서 너무 실망하지 말고 다음에는 지금 속상했던 이 마음을 기억해 내서 더 나은 무대를 준비하면 된다고 토닥거려 주었다.

그리고 우리의 인생도 연극무대와 다르지 않다고 강조했다.

그때 심사위원 한분이 유심히 내가 아이들과 나누는 대화를 듣다가 뒤를 돌아보며 한 말씀하셨다.

“선생님은 어느 학교 소속이신가요?”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하필 연극부를 왜 만들고 싶었나요? 왜 선생님이 담당하게 되셨나요?”라며 몇 가지를 질문하셨다.

나는 우리 학교에서 소위 말썽쟁이로  구분되는 이 아이들이 좀 더 사람들 앞에서 당당해질 수 있는 이 아이들만의 무대가 있었으면 해서 만들게 되었다고 말씀드렸다.

그런 아이들만 모아놓아서 몇 배로 힘들지만 아이들이 조금씩 변화하는 모습에 행복하다고도 했다.

나를 신기하게 자꾸 쳐다보시던 그 심사위원의 추천인지 몰라도 우리 학교는 아무런 상을 못 탔는데 이상하게 나에게 지도교사상이 주어졌다.


3월 어느 날! 아이들이 강당이 떠나가라 환호하며 손뼉 치고 난리가 났다.

 입학식이 끝나고  신입생 환영 연극을 무대에 올렸다. 학교생활 안내 같은 내용을 연극으로 꾸며 보았다.

그 학년에서 말썽꾸러기라는 아이가 모범적인 반장 역을 맡아 말 안 듣는 친구에게 훈계를 하는 장면이 연출되자 대사가 잘 안들릴정도로 재학생들이 박수를 쳤다.

또 선생님 역을 맡은 아이도 어마무시한 아이였기에 아이들은 신기해하며 너무 즐거워했다.

전교생 앞에서 연극을 마친 아이들은 더 열심히 연습하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운 마음도 생겼고 후배들에게 착한 모범생이라는 인상도 심어주었다.

교장 선생님의 특별 찬조금까지 받고 아이들은  연극부라는 자부심이 높아졌다.

당연히 축제 때마다 연극부의 공연은 가장 인기 있는 동아리가 되곤 했다.

그때 지도를 했던 외부강사 선생님의 열정도 한몫 단단히 해서 참 고마웠다.

그중 몇몇 아이들은 연기과로 진학을 했고 연극부였다는 추억을 간직하고 살아가는 아이도 있을 것 같다.

지금 생각해 봐도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나왔는지 모르지만 그 아이들에게 매일 고개 숙여 “잘못했습니다”라는 대사를 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노력은 꼭 필요했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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