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에게 택배를 보낼 것이 있어서 주소를 물어보았다.
그런데 주소만 봐도 그곳이 어딘지, 웬만한 사람들이면 다 알 것 같은 곳에 친구가 살고 있었다.
결혼을 아주 잘했다고 소문이 나서 그저 잘했나 보다 하고만 생각했었는데
친구 집 주소를 보니, 정~~~ 말 '부~~~~ 자'인 남자와 결혼을 했나 보다 싶었다.
우와, 정말 대단하다. 친구들이 정말 놀란 것은 학창 시절의 모습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랬던' 친구가 '그런' 남자와 결혼을 해서 '그렇게' 살고 있다는 사실이 돌고 돌아 동창들 사이에 소문이 날만큼 그렇게 대단한 결혼을 했다는 것이 그제야 느껴졌다.
여자 팔자 뒤웅박 팔자라더니, 그래서 그런 말이 있구나 싶다며 친구들은 한동안 그 친구 이야기로 떠들썩했다.
그리고 잠잠했다.
그래서 잘 살고 있는 줄 알았다.
아들도 하나 낳았다고 들었다. 돌잔치에는 시댁 식구들과 가까운 손님들만 갔다고 들었다.
그 뒤로 이상한 말들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갓 낳은 아들의 옷을 속옷부터 신발, 양말, 가방까지 시어머니가 결재한다더라, 기저귀와 물티슈 브랜드를 시어머니가 결정한다더라,
어디 갈 때는 시어머니께 1시간 간격으로 전화하고, 오후 5시가 땡! 하면 신데렐라처럼 뒤도 안 돌아보고 달려간다더라...
더라 더라 하더니 이번에는'이혼했다더라' 하는 말이 들려왔다.
아.. 나는 진심으로 그 친구가 오래오래 행복하기를 바랐다. 다른 친구들은 여자 팔자 뒤웅박 팔자라 이야기하며 시샘 어린 시선을 보낼 때, 나는 진심으로 그녀의 행복을 기원했다.
내가 그 친구에 대해 알게 된 것은 고 1 때였으나, 관심을 갖고 보게 된 것은 고 3 때였다.
고 1 때는 '아는 친구'였지만, 고 3 때는 '더 알아가고 싶은 친구'였다.
그저 성격 좋고, 착하고, 부지런하고, 배려심 많은 친구라고 알았었는데, 고 3 때 전교에 소문이 파다하게 났다.
집에 불이 나서 세간살이가 다 불태워졌고, 교과서며 교복, 가방까지 하나도 건지지 못하고 몸만 겨우 빠져나왔다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하나 더 보태어서.. 그 집 대문 옆에 대나무가 꽂혀있다는 것이었다. 엄마가 무당이었다.
엄마가 무당이라는 말에, 전교생의 관심이 쏠렸다. 그리고 그 사실을 가까운 친구조차 전혀 몰랐었기에 충격으로 다가왔다.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기독교 동아리를 이끄는 리더로 3년을 보냈기 때문에 더 그랬을까.
입시를 앞두고 교과서에 교복, 가방까지 다 불태워졌다는 말에, 학교에서는 헌 교과서를 지원했고, 친구들은 십시일반 돈을 모아서 교복을 마련해주었다. 고 3 졸업하는 마당에, 누군들 교복을 새로 맞춰 사 입기는 난감한 상황이었다. 당시 교복은 어른 양복값만큼 비쌌던 시절.
그 이후 친구는 몹시 위축되었고, 점차 말이 없어지더니, 졸업식에 나타나지 않았다. 그 후로 모든 친구들에게서 소식이 끊겼고, 나는 그 친구가 부디 잘 살아내주기를 바랐다.
그러다 나 살기도 바쁘다는 이유로 기억 속에서 점점 잊혀가는 가운데 어느 날 소식이 들려왔던 것이다.
결혼을 참 잘했고
그러다 이혼했다.
결론은 그렇게 났다. 그리고 나는 이혼이 그 친구에게 오히려 '날개'를 달아준 것이리라 생각한다.
시어머니가 기저귀와 물티슈 브랜드를 정해준다던 친구가 내겐 한 명 더 있었다. 그 친구도 이혼했다.
내가 둘째 아이를 출산하러 병원에 갔을 때, 그 친구는 진료받으러 왔다가 우연히 나와 마주쳤고,
순산을 기원하며 나에게 토마토 주스를 사주었다. 마음 같아서는 꽃등심을 사주고 싶다면서...
나는 꽃등심이나 토마토 주스나 색깔은 비슷하니, 먹은 셈 치겠다고 했다.
그랬더니 그 친구가 카페가 울리도록 큰소리로 웃었다. 그리고 이내 울었다.
이혼을 했다는 것이다. 딸아이는 시어머니께 뺏겼다고 했다.
그 친구가 처음 SNS에 시댁이라며 사진을 올렸을 때도 깜짝 놀랐었다. 사진 풍경에 웬 궁전 같은 집과 정원이 보였기 때문이다. 드라마에서나 나올법한 집에서 친구는 시집살이를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이 내내 불안하고 슬퍼 보이더니, 이혼했다는 말.
두 친구의 소식을 나는 내내 기다리며 살아가고 있다.
지금 어디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내가 이혼을 하고 보니, 그 친구의 심정도 알아질 것 같고,
다독여주고 싶고 이야기를 들어주고 싶고, 네가 잘 되길 바란다는 마음을 전하고 싶은데...
졸업사진 속 아이들을 보면 얼마나 곱고 예쁜지, 그 당시에는 별명이 못난이였어도, 지금 보니 하나같이 꽃처럼 예쁜, 예쁜이들이다.
아이를 낳고 보니 하나같이 귀하게 보이는 인물들인데,
우린 무슨 이유로 이혼을 하고, 눈물을 흘렸을까.
앞으로는 그 눈물을 닦아줄 일들만 있기를, 조금 더 욕심을 부린다면, 스스로 눈물을 닦고 일어나 누군가의 눈물도 닦아줄 수 있는 힘을 갖게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