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임신 사실을 알았을 때 내가 확인한 날부터 병원에서 임신을 확인받기까지의 시간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7일간의 기다림이 내게는 7년 같았던 시간으로 느껴졌던 그 모든 순간들이 나는 너무도 힘겨운 시간이었다.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는 말을 누가 제일 처음 말한 것일까? 그 말을 지푸라기 삼아 잡고 있던 나의 바람은 감사하게도 내게 귀한 생명을 보내주셨다. 첫 출산은 맞지만 첫 임신은 아니었던 나는 임신을 했다는 사실에 너무도 기뻤던 한편 10개월 동안 병원 검진을 가는 날마다 이유 없는 불안과 공포에 사로잡혀갔었다. 모든 부정이 나를 지배하는 날이 산부인과 정기검진일이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온갖 상상으로 나를 괴롭히고 있었다. 말이 씨가 된다, 생각하는 대로 이루어진다 등의 말들이 100% 맞는 거였다면 지금 나의 현재 모습들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그 당시의 나는 엄청난 부정적인 사람이 되어 있었다.
이것이 한 편의 드라마였다면 '그 시간을 견디고 해피엔딩이었습니다.'라고 전개가 되어야 할 것 같지만 내가 처음 아이를 낳아 육아를 시작하던 때 너무도 큰 두려움과 설렘이 동시에 나를 둘러쌌고 나는 그 시간을 오롯이 혼자 견뎌야만 했었다. 정답이 있는 문제집을 푸는 것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지속되었던 지난날들의 아픔은 지금 돌이켜봐도 금방 눈시울이 붉어진다. 늦은 결혼에 늦은 출산이 나의 많은 것을 바꿔 놓기에 충분했고, 육아라는 새로운 세계에 던져진 나는 예상보다 훨씬 많은 감정노동을 감당해야 했었다. 나와는 상관없을 것 만 같았던 우울이라는 감정 그리고 자존감이 바닥을 찍어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나의 인생을 마주하는 것이 고통스러웠던 시간들을 아무도 모르게 살아냈다. 나와 같은 경험을 하고 어려움을 겪는 이들을 보거나 듣기라도 하면 나의 눈물샘은 고장 난 것 마냥 하염없이 눈물을 흘려보낸다. 엄마라는 자리가 무엇인지 제대로 알고 완벽히 준비되어 있는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 정답 없는 문제를 들고서 정답을 찾고자 늘 쉼 없이 노력하는 수험생이 된 것 같은 심정으로 하루하루를 살았던 나로서는 그 기나긴 터널을 빠져나오기까지 부단한 노력이 필요했다. 이제는 그 터널 속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엄마, 엄마~ 엄마!!
눈을 뜨고 감을 때까지 쉼 없이 귓가에 들려오는 '엄마'를 찾는 아이의 목소리가 도돌이표 노래처럼 끝이 없다. 말이 트이기 전까지는 울음소리가 끝없이 들렸다면 말을 하기 시작하고서부터는 '엄마' 이 단어 하나가 끝없이 나의 뒤를 쫓는다. 너무 예쁘고 귀한 생명이라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다는 어른들의 말씀이 무엇인지 나도 이제는 어렴풋이 이해가 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벅찰 때가 많다. '한 번만 불러도 돼, 그만 좀 불러~'라는 대답을 아이에게 되돌려 주고 있는 나는 아직도 갈 길이 먼 것 만 같은 미완 성형 육아맘이다. 내 이름 석 자 불릴 일은 병원이나 가야지 가능하지 일상에서는 누구의 엄마, 그리고 그냥 엄마일 뿐이다. 이름 없이 불리는 나의 닉네임은 동명이인이 차고 넘치는 평범하지만 절대 가벼울 수 없는 이름 '엄마'이다. 누군가에게는 너무도 간절할 엄마라는 자리가 내게는 너무도 부담스럽기만 했고, 시간이 갈수록 자책감이 쌓이고 쌓여 나 스스로 우울의 골짜기로 걸어 들어가는 이유가 되었다. 이래도 되나, 이게 맞나? 나는 왜 이것밖에 못하나 등등의 이유로 나는 늘 나를 옥죄며 살아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의 엄마를 통해 들여다본 엄마라는 자리의 의미
나에게도 한 명의 대단한 엄마가 계신다. 늘 자신을 희생하고, 자신의 것은 고려치 않고 가족들을 위해 헌신하는 것이 당연하게 보이는 인생을 사셨던 나의 엄마. 그런 엄마가 있었기에 아이를 키우며 나의 부족함이 더 크게 느껴지고, 내가 더 작아진 것은 아니었나 되돌아본 적도 있지만 그건 아니었다. 헌신을 하는 삶을 살기는 했지만 결코 제대로 된 헌신은 아니었다는 스스로의 결론을 내렸기 때문이다. 그건 더 없는 슬픔으로 느껴져 나를 아프게 만들기도 했었고 엄마를 위해서라도 내가 더 제대로 된 엄마로 성장하고 싶은 열망을 갖게 된 이유도 있다. 나를 없애고 가족, 아이들을 위해 무작정 열심히 살았던 인생이 존중받아야 하는 것은 맞지만 그런 인생을 살았던 엄마를 생각해 본다면 좀 더 현명하게 자신을 챙기며 살 수는 없었을까 하는 아쉬움이 드는 것이다. 같은 여자로, 아이의 엄마로 살고 있는 지금의 내가 갖는 솔직한 생각이다. 가정을 돌보는 데에는 최고의 전문 가였을지 몰라도 자기 돌보기에는 실패한 어른으로 보였기 때문이라 말할 수 있겠다.
훗날 나의 아이가 자라 성인이 되어서 나를 회상해 봤을 때 지금 내가 나의 엄마로 인해 느끼는 감정들이 아니라 '우리 엄마는 내가 본 어른들 중 가장 멋진 어른, 괜찮은 어른이었다'라고 회상되고 싶은 욕심이 있기에 보다 나은 삶을 살고, 아직 미완성인 두 아이의 인생을 올바르게 길잡이 할 수 있는 어른이자 부모가 되어 주고자 나는 앞으로 끊임없이 가정 돌보기와 나 돌보기의 균형을 유지하는 줄다리기를 해 나갈 것이다. 여기 브런치에 지속적으로 나의 글을 쓰는 것부터가 나 돌보기의 시작이라 말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별일 없으면 꾸준히 브런치에 글을 쓰고, 나의 글을 읽고 공감하는 독자들이 한분이라도 계신다면 끊임없이 나눌 생각이다.
엄마라는 왕관의 무게를 이겨내는 법을 찾고, 나의 능력치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연습 그리고 스스로를 들여다보기 위한 끊임없는 나와의 대화가 시작되고, 나의 모든 감정들과 대면하며 하나씩 제대로 알아가는 연습을 꾸준히 하면서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 엄마의 자존감이 아이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무엇이며, 내가 변하는 만큼 아이들이 달라질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는 계기들도 생겼다. 여전할 것인지 역전할 것인지는 내가 결정하면 되는 일! 누구의 믿음보다 스스로의 확신이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 또한 알기에 내 삶을 역전시키기 위해서 그리고 나아가 지난날 내가 겪은 어두운 시간의 터널을 걷고 있거나 걷게 될 분들이 조금이라도 나은 방향을 얻어갈 수 있도록 앞으로 꾸준히 글을 쓰면서 하나씩 제대로 완성시켜 나가 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