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을 계산한다? - 쇤베르크와 무조음악

by 양탕국


쇤베르크의 음악은 듣기 힘들다?


오스트리아 태생의 작곡가로, 20세기 음악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인물 중 하나로 손꼽히는 쇤베르크. 하지만 공연장이나 방송 매체 등 외부로부터 도통 들을 일이 없어 낯설기만 했던 작곡가의 존재를 알게된건 클래식음악에 본격적인 관심을 갖고 관련 책들을 훑었을 때다. 그러나 쇤베르크의 영향력에 대해 알게 되고도 쇤베르크의 음악을 처음부터 끝까지 중지하지 않고 들은 것은 그로부터 한 2년은 지났을 때다. 독일 표현주의에 대한 강의를 듣던 대학 4학년의 나는, 발표 주제로 덜컥 ‘쇤베르크 음악’을 골라버린 것이다. 쇤베르크와 그 제자들의 음악을 배경으로 표현주의 그림들이 하나씩 보이게끔 발표 영상을 만드는 과정에서 나는 ‘본의 아니게’, ‘어쩔 수 없이’ 그의 음악들을 끝없이 반복하며 들어야 했다.
그렇담 이쯤에서 고백. 사실 그 이후로 쇤베르크를 들어본 일이 손에 꼽는다. 공연장에서 연주되는 일은 여전히 드물며, 그렇다고 굳이 찾아들을 만큼 구미가 당기지도 않기 때문이다. 현대음악에 대한 어려움으로만 치부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오히려 쇤베르크 이후의 현대음악은 종종 찾아듣기 때문이다.

실제로 쇤베르크는 그가 남긴 작품은 잘 연주되지 않지만 음악사에 끼친 영향력은 엄청 크기에 불행한 작곡가로 평가되기도 한다.



필연적인 음악, 무(無)조성
작곡 선생님이기도 했던 작곡가 쇤베르크


쇤베르크는 1874년 유대인 상인의 아들로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났다. 작곡가인 쳄린스키에게 교습을 받기는 했지만 사실상 제대로 된 레슨 형태는 아니었다 한다. 그는 독학으로 작곡을 공부했고, 은행원으로 일하기도 했으나 슈트라우스의 도움으로 음악원에서 작곡을 가르치는 일을 맡기도 했다.

그가 활동하던 당시엔 음악계에 새로운 바람들이 불고 있던 때였다. 확고한 조성이 있고 규칙에 따라 발전하던 음악들이 점차 규칙을 무너뜨리고 개성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작곡가들은 어딘가 군더더기가 남는 듯한 느낌의 미묘한 화음들을 빈번하게 사용했다. 즉, 우리가 흔히 불협화음이라 느끼는 화음들이 사용되는 빈도가 잦아졌다는 뜻이다. 게다가 작곡가들은 이전 세대의 선배들과 달리 그러한 불협화음을 사용한 이후에 안정감을 주는 화음으로 마무리를 짓지 않기도 했다. 또한 음악이 점차 복잡해지다 보니 그 불협화음을 해결하는 협화음을 찾는 것도 점차 어려워진 것이 당연했다.
쇤베르크는 이러한 현상에 대처하는 방안은 무조성, 즉 조성이 없는 음악이라고 생각했다. 조성이라는 것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면 굳이 어떤 협화음으로 돌아갈 필요도 없는 것이다! 그는 이런 현상은 필연이라고 믿었으며, 1908년부터 무조성의 음악을 작곡하기 시작했다.



그가 이야기한 무조성이라는 것은 바로 위와 같은 음들의 배열이었다. 그리고 이것은 '12음기법'이라고 불리게 됐다.
일단 12음. 피아노 건반에서 한 옥타브를 차례대로 누를때 하얀 건반과 검은 건반을 모두 누르면 우리는 12개의 음을 누를 수 있다. 그리고 조성이라 함은 흔히 우리가 다장조, 가장조 등등으로 부르는 것들이며 이는 으뜸음을 두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다장조의 경우엔 도가 으뜸음으로 자리하게 되고, 이 으뜸음은 중심적 기능을 한다. 가령 음악이 끝을 맺을 때 으뜸음이나 으뜸화음으로 하게 되는 경우가 많아지고, 그것이 자연스러워보이는 것이다. 그러나 쇤베르크는 이러한 조성을 없애는 시도를 했다. 으뜸음이 없다면 조성도 생기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순서를 아무렇게나 한다면 어느 순간 우리에게 익숙한 음계를 따라 음악이 흐를 수 있다.
실제로 음악을 전혀 배우지 않은 사람들에게 아무 화음이나 만들어보라며 건반을 누르게 하면 협화음을 누를 확률이 훨씬 높다고 한다. 그만큼 협화음은 우리에게 익숙한 음들의 결합이기도 하고, 화음의 영역 자체가 넓어져서 오히려 불협화음을 만드는게 더 어렵다고 한다. 때문에 쇤베르크는 이 열 두개의 음이 등장하는 순서도 일일이 정해버렸다. 또한 그 음들의 배열을 역순으로 가는 방법, 한 음씩 높이는 방법 등을 통해 다양한 멜로디를 창출할수 있게끔 하였다. 어차피 화음이란 음과 음 사이의 간격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기존에 배치해둔 12음을 똑같이 한음씩 높이게 되어도 ('도미솔' 화음을 '레파라'로 한음씩 올려 변형한다 해도) 음과 음 사이의 간격은 여전히 똑같기 때문에 ('도미솔'과 '레파라' 모두 음과 음 사이의 간격은 '하나 건너 하나'로 같다), 쇤베르크처럼 무조성의 배열을 만들어놓으면 그것을 조금씩 변형해도 어차피 무조성인 것이다.



그는 피아노 모음곡 중 전주곡의 시작부터 그가 배열한 음들을 사용한다. 12개 음의 배열 순서와 전주곡의 악보를 함께 확인해보면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음악사에 한 획을 그은 작곡가. 하지만 -


쇤베르크는 전에 없던 새로운 시도를 통해 음악사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작곡가가 되었다. 특히 모더니즘에 대해 이야기할때 그의 음악은 해당 전통의 핵심적 위치에 자리하고 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그는 교육자로써 수많은 학생들로부터 인정을 받았고 안톤 베베른, 알반 베르크 (쇤베르크와 더불어 이 3명은 제2빈악파로 불림)와 같은 훌륭한 제자들을 배출해내기도 했다. 그와 같이 과감한 시도를 하고자 한 후배 작곡가들에게 그가 헌신적인 지지를 얻었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쇤베르크가 무조성을 택한 1908년부터 작곡된 수많은 작품들은 대부분의 연주자와 대중들에게 외면을 당했다. 전문가와 일반인 사이의 단절을 야기한 일에 본인의 음악이 중심이 된 것은 쇤베르크에게도 썩 즐거운 일은 아니었다. 그는 굉장히 개혁적인 시도로 세상을 놀라게 했지만 음악의 전통을 훼손했다는 생각으로 고통스러워하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연주자와 대중의 외면은 그 당시보다는 심하지 않겠지만 한 세기가 지난 지금까지도 연주회의 레퍼토리로는 찾아보기가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나와 같은 일반 청중의 입장으로는 오히려 무조음악이니, 12음기법이니 하는 것들을 모른 채로 쇤베르크의 음악을 접했다면 되려 조금 더 흥미롭게 여겨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있다.

그러나 아무리 어렵고 난해한 쇤베르크의 음악도 어느날 갑자기 뚝 떨어진 산물은 아니다. 앞서 언급했듯 그가 활동한 시대엔 이미 많은 음악들이 고전의 규칙을 벗어나 미묘해지고 있던 때였다. 실제로 우리는 낭만주의 음악에서 고전을 발견하고, 고전 음악에서 바로크를 발견한다. 이처럼 쇤베르크의 무조음악도 언젠가는 세상에 공개될 새로운 음악이었던 것이고, 쇤베르크는 그 흐름의 선두주자 역할을 해낸 것이다.

쇤베르크는 군 입대를 했을 당시 '당신이 작곡가 쇤베르크인가' 라는 질문에 대해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어머니 뱃속에 있었는데 아무도 쇤베르크를 하지 않겠다고 하여 제가 쇤베르크로 태어났습니다


음악사에 한 획을 그은 작곡가 쇤베르크라는 운명은 그렇게 존재하고 시작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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