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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탕국 Jan 05. 2024

감동하는 인간

11월엔 책을 단 한 자도 읽지 못했다. 2023년 나의 가장 큰 과제는 감동하는 인간이 되는 것이었으므로, 12월이 되면 읽고자 했던 책을 퀘스트 깨듯 한 권씩 읽어나가는 중이다. 세상에 감동을 주는 것들은 무수히 많지만, 가장 빨리 나의 감정 급소를 자극할 수 있는 것은 글이라고 생각했다.


감동을 연습하기로 결심한 건 연초에 읽은 시집 때문이다. 학부 시절 수강한 철학과 수업을 담당한 선생님이  10년 만에 출간한 시집이었다. 시인이기도 했던 선생님은 늘 수업 시작 전 먼저 온 학생 한 명에게 칠판에 무언가를 적어달라고 부탁하며 종이를 건네셨다. 그건 그날 선생님이 준비한 시였고, 우리의 철학 수업은 시를 한 편 읽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이제는 그때 배운 철학자의 이름도 가물가물하지만 그때의 분위기만은 여전히 문신처럼 내 기억에 진하게 남아있다. 그런 선생님이 아주 오랜만에 출간한 시집에 담긴 상당수의 시를 나는 너무나 덤덤히 아무런 감정 없이 읽어 내린 것이다. 그러고보니 나는 오래도록 감동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유를 찾기 위해 골몰하기도 했지만 답을 찾지 못했다. 대신 2023년엔 감동을 연습하기로 했다.


지난해 나의 감동은 최진영과 백수린, 김연수, 클레어 키건의 문장에 빚졌다. 구체적으로는 최진영의 <홈 스위트 홈>, 백수린의 <아주 오랜만에 행복하다는 느낌>, 김연수의 <너무나 많은 여름이>, 클레어 키건의 <이처럼 사소한 것들>이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점에 무엇을 읽고 감동했나 살펴보아서인지 12월에는 주로 쓰기에 대한 문장이 오래 남았다. 언젠가 갚을 수 있을까 막연히 그런 생각을 했는지도 모른다.


그중 하나를 옮겨 적어본다. 클레어 키건의 <이처럼 사소한 것들> 중 역자가 전한 키건의 말이다.


소설가 존 맥가헌은 좋은 글은 전부 암시이고 나쁜 글은 전부 진술이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 저는 좋은 이야기의 기준 가운데 하나는 독자가 이야기를 다 읽고 첫 장으로 다시 돌아왔을 때, 도입 부분이 전체 서사의 일부로 느껴지고 이 부분에서 느껴지는 감정이 그 뒤에 이어질 내용의 특징을 잘 드러낸다고 느낄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감동하는 인간이 되기 위해 내년에도 후년에도, 그리고 앞으로 살아가는 동안 부단히 연습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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