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돌프 부흐빈더 리사이틀 후기
(*2023년 7월 루돌프 부흐빈더의 베토벤 소나타 전곡 리사이틀에 대한 후기입니다.)
이레 간의 공연이 마무리됐다. 부흐빈더는 이번 한국 공연을 통해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을 60번 무대에 올린 연주자가 되었다. 여섯 번째 공연까지 매 앙코르는 베토벤 소나타의 마지막 악장이었고, 그러면 전곡 사이클이 끝나는 일곱 번째 공연의 앙코르는 무엇일지 궁금했는데, 마지막 날의 앙코르는 슈베르트 환상곡이었다. 그간 공연에서 어떤 얘기도 한 적이 없는데 전곡 사이클을 마친 날엔 마이크를 잡았다. 한국 청중에 대한 애정과 내년에 또 올 것이라는 예고. 이미 프로그램이 나왔지만, 2024년에는 오케스트라와 함께 내한해서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전곡을 올린다.
작곡 순서대로 연주되지는 않았지만 대체로 초기 소나타는 공연 전반부에, 후기 소나타는 후반부에 배치되었는데(전반부 공연에서 연주된 후기 소나타의 경우 그날 공연의 가장 마지막 레퍼토리로 배치), 그래서 무게감과 비장미가 점진적으로 증가함을 느낄 수 있었다. 더욱이 마지막 공연은 베토벤의 마지막 3개 소나타로 마무리되면서, 한편으론 이 공연이 베토벤의 인생 여정을 따라가도록 안내한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21번 작곡 즈음에 베토벤은 청력을 잃어간다는 괴로움, 치료를 반복해도 나아지지 않는다는 절망감에 편지 형식의 유서를 쓰지만 그 글은 누구에게도 보내지지 않았다. ‘하일리겐슈타트의 유서’라는 이름으로 남아있는 이 글은 고난과 좌절로 시작해 그럼에도 음악에 대한 열정이 자신을 살아남게 한다는 고백으로 끝난다. 그리고 그 이후 작곡된 피아노 소나타는 더욱 웅장하고 비장하다.
부흐빈더는 한 인터뷰에서 베토벤의 악보엔 감정적인 지시가 유독 많이 남아있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 이 역시 후기 소나타에서 두드러진다. 예를 들어 27번 1악장은 ‘생기 있게, 그리고 감정과 표현을 철저히 지니고’, 28번 1악장은 ‘다소 활발하게, 극히 내성적인 감정을 가지고’와 같은 식이다. 마지막 3개의 소나타에는 espressivo(감정을 풍부하게)라는 표현이 더 많이 등장하고, 각 악장에 대한 연주 주문도 더 구체적이다. 청력을 완전히 잃은 작곡가가 상상을 더해 들어야만 했을 그 음악들은 놀랍도록 풍부하고 섬세하다. 며칠에 걸쳐 연달아 듣고 있자니 ‘어떻게?’라는 물음이 자연스럽게 뒤따른다. 마지막 소나타인 32번은 한껏 격정적인 1악장과 그에 대비되는(그러나 한편 너무나 대칭적인) 황홀할 정도로 아늑하고 평온한 2악장으로 구성되는데, 그 마지막의 마지막은 아주 긴 여운을 남긴다. 베토벤의 다른 곡과 비교해 보면 곧 환희로 가득한 3악장이 나와야 할 듯하지만 음악은 더 이어지지 않고 거기서 끝난다. 완벽한 마무리로 느껴지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일 것이다.
You will always discover something new in Beethoven’s music, as long as you live(살아있는 한, 베토벤의 음악에서 항상 새로운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악보만 40개에 달하는 판본을 소유하며 끊임없이 연구하고, 베토벤 전곡 무대를 60번 올린 연주자의 이 말의 의미는 그의 경험을 공유하지 않는 한 온전히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그 깊이는 다를지라도 각자에게 저마다의 의미로 받아들여지리라 생각한다.
사실 이번 공연은 부흐빈더의 나이 듦이 지난 공연들보다 잘 보이고 들리는 공연이기도 했다. 그러나 연주에 대한 열정과 그로 인한 숭고함은 그 어느 때보다 충만한 날들이었다. 특히 역대급 환호와 기립을 이끈 23번 연주를 비롯해 온 신경을 집중하게 한 29번, 그리고 마지막날의 30번부터 32번까지의 연주가 마지막 소나타 마지막 악장처럼 긴 여운으로 한동안 지속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