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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주 Oct 10. 2019

07. 복수의 끝판을 찾아서

<나 하나만 참으면 괜찮을 줄 알았어> 에피소드 07



세상에서 가장 은밀하고 치졸한 싸움은 부부싸움이다. 디테일을 모두 말할 수 없어 은밀하고, 복수를 위한 각종 유치한 방법이 동원되기에 치졸하다. 덧붙여 나는 ‘뒤끝이 좀 많은 성격이라’ 다른 싸움은 못 이겨도 이 싸움만은 꼭 이기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산다. 스포츠로 따지면 ‘한일전’ 같은 느낌인데, “너만은 꼭 부셔버리고 말겠어”의 비장한 각오가 있다. 


가끔 미혼 친구들이 묻는다. “결혼하면 왜 싸워?” 음, 이유가 굉장하진 않다. “빨래가 너무 많다”, “똥 기저귀 좀 갈아줘”의 말다툼으로 시작했다가, 각자 자존심에 불이 붙으며 싸움이 커진다. 서로의 단점 들추기, 과거로의 시간여행, 다시 떠오른 안 좋은 기억. 상처를 건드리는 판도라의 상자까지. 나와 남편 사주의 핵심은 둘 다 화(火)라는데, 한마디로 화병 환자들끼리 싸우는 거다. 


싸움을 반복하다 보니 ‘통쾌하게 복수하는 법’에 대한 내 연구도 진화하고 있다. 용서, 이해 등의 단어는 잠시 미룬다. 그런 지혜는 체력이 다 하는 날, 절로 찾아올 것이다. 지금은 내 안의 불을 끄는 일이 더 시급한데, 그런 의미에서 그간의 연구를 공유하며 집단지성을 찾고자 한다. 


1.말빨 VS 말빨 

처음엔 말로 복수했다. “되로 주고 말로 받는다”는 속담을 응용해, “되로 받고, 말로 주는” 말싸움을 유치하게 이어갔다. 가령 상대가 “바보”란 단어로 공격하면 “논리는 없고, 목소리만 큰 완전 바보”라고 받아치는 식이다. 이 공격의 묘미는 말을 내뱉는 순간 참 후련하다는 것인데, 상대의 역공이 계속되면 끝말잇기처럼 싸움이 늘어진다는 단점이 있다. 게다가 상대가 내 말을 듣지 않고 “엘렐렐레”하며 귀를 막으면? 정말 제대로 엎어치기 당하는 거다. 분노가 정수리를 콱콱 찌른다. 


공격 난이도 : 별점 1   공격 효과성 : 별점 2

평가 : 소모적 공격만 반복하다 더 큰 상처를 받을 수 있음 


2. 물건 집어던지기 (Feat. 집안 살림) 

난 아이가 화가 났을 때 땅바닥에 구르는 심정을 이해한다. 말로는 안 되니 행동으로 표현하는 거다. 한 번은 싸우다가 너무 약이 올라 남편이 아끼던 스탠드를 발로 확 찼다. 와장창, 조각난 스탠드. 대학시절부터 10년 이상 함께 한 물건이었기에 상대의 충격은 컸다. 애인을 잃은 듯한 그 멍한 표정이라니. 무지하게 고소했다. 하지만 문제는 후속 응용이 쉽지 않다는 거다. “으으~”하며 후려칠 것을 찾다가 “비싼 거 깨트리면 어쩌지?”라는 본전 생각이 들 때가 있으니까. 그리고 이렇게 계산이 개입되는 순간, 후속으로 이어지는 행동은 뭔가 소극적이고 위협적이지 않다. 


공격 난이도 : 별점 2   공격 효과성 : 별점 3

평가 : 지속적 활용이 더 난감함. 더 강한 자극을 찾아야 하는 어려움. 비용 감당의 난제가 있음. 

 

3. 아끼는 물건 숨기기 

나에게 한 방 먹었을 때의 남편의 ‘텅 빈 동공’이 잊히지 않았다. 한 사람의 정신적인 충격은 애정과 비례한다는 사실을 그때 깨달았다. 서둘러 머리를 굴렸다. 그의 애정, 그의 관심, 오~그의 시계가 있었군! 서둘러 결혼 예물로 선물한 고가의 시계를 숨겼다. 매일 허술하게 옷장 위에 두는 걸 치밀하게 노렸다. “혹시 내 시계 못 봤어?”라며 안색이 변한 남편. (어! 그건 내 옷장 안 코트 주머니 속에 있지) 하지만 절대 알려주지 않는다. “아니, 모르겠는데” 난 시치미를 뗀다. 허둥지둥하는 남편을 지켜보며 십 년 묵은 체증이 쑥 내려가는 것 같다.  

공격 난이도 : 별점 1   공격 효과성 : 별점 4

평가 : 혹시 발각되면 나만 우스워진다. 한두 번 실행으로 충분함 

 

4. 지속적으로 장기적인 주문 

주문의 효과를 믿는가? 만약 ‘주문’이 전혀 효과가 없는 것이라면 시크릿의 법칙, 데스노트, 각종 영험한 부적 등은 대중에게 회자되지 않았을 것이다. 주문의 핵심은 간단하다. 적에 대한 집요하고, 집요하고, 또 집요한 공격. 한마디로 주문의 효과는 ‘단기적 쇼부가 아닌, 장기적으로 결과를 기다릴 수 있는 인내심이 있을 때’ 가능하다. 난 내가 바라는 복수를 온 우주에 간절히 빌어본다. “제발, 남편이 다음 생엔 여자로 태어나 보수적인 남편과 시댁을 만나 애 다섯 낳고 독박 육아하길 바랍니다” 난 혼자 중얼대고 낄낄댄다. 생각만 해도 통쾌하네. 문제는 주문의 성사 여부를 다음 생에나 확인할 수 있다는 것. 


공격 난이도 : 별점 1   공격 효과성 : 별점 0

평가 : 생각만 해도 무지하게 후련하지만, 그저 생각에만 그칠 수 있다는 단점 

 

언젠가 이 이야기를 결혼 10년 차 유부녀 친구와 주고받은 적이 있다. 그녀는 내 방법에 공감도 하고 혀를 차다가 한 마디 했다. “넌 그래도 애정이 있나 보네. 난 남편이 들어오면 오나보다, 나가면 나가보다 그러고 산다” 마음을 비운 듯, 현자의 표정으로 이야기하는 그녀의 말을 들으며 생각했다. ‘이것이 열폭의 증거인지, 열정의 증거인지는 알 수 없지만 나는 친구 같은 표정은 절대 가질 수 없을 것’ 같다고. 


나는 우리 집 방문을 기어나갈 수 있는 그날까지, 내 안의 화를 어떻게든 풀어내야 하는 여자다. 한때는 ‘수선화’ (믿거나 말거나 그 정도로 말 수가 없고 순수했다)란 별명을 가지고 있었으나, 결혼이란 사건을 통해 ‘산천동 욕쟁이’가 된 만큼, 내 변화의 이유만은 분명히 마주해 나가고 싶다. 어떤 말, 어떤 행동들에 화가 나며, 그것들을 내 남편과 어떻게 풀어가야 할 지에 대한 끝없이 연구와 대처 말이다. 



아! 내가 누군가로부터 들은 어떤 복수의 방법이 있었는데, 좀 오싹했다. 그것은 늙어서 자리에 누워있는 남편에게 조용히 귓속말로 말하라는 것이다. “(속삭이며) 영감, 내가 당신 이럴 줄 알았어…흐흐흐” 미안한데, 내가 생각하는 복수의 동의어는 잔인함은 아니다. 복수는 내가 싫어하는 상대의 행동을 ‘내 의지와 노력으로 종료시키는 것’ 일 테니. 가능한 내 남편은 나랑 오래 살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내 남편과 웃으며 손을 잡을 수 있을 때까지. “여보, 평안하게 좀 삽시다”라고 말할 수 있을 때까지. 매일 영양제를 한 움큼씩 먹어가며 힘을 비축해 나갈 것이다. 소통을 위한 이 싸움이 오래오래 지속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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