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발로 39일째다. 동네 초등학교 운동장을 걷다가, 톱머리 해수욕장 모래사장 길을 걷다가, 9월부터는 학교 운동장을 걷는다. 운동장에는 인공잔디가 깔려 있고 둘레로 트랙이 있다. 트랙길은 딱딱한 모랫길이다. 학교마다 인공잔디든, 천연잔디든 잔디로 한복판을 덮고, 둘레로는 우레탄을 깔았는데, 우레탄 트랙이 환경에 해롭다고 하여 깔았던 것을 다시 걷어냈던 것. 다행히 그 길을 다시 덮지 않아 맨바닥으로 살아남았다. 시골 동네 구석구석까지 시멘트나 아스팔트로 포장이 되어 있고, 웬만한 산책길은 모두 황토 시멘트나 방부목으로 되어 있는 형편으로 보면 그나마 다행이고 행운이다. 흙길이 어디 있을까, 하며 궁리가 한참일 때 근무지 학교 트랙이 맨바닥으로 있다는 것이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퇴근 후, 항상 운동장 트랙을 돈다. 하루 만보 걷기! 그런데 운동장 둘레를 만보로 채우기는 너무 힘들다. 바닥이 너무 딱딱하기 때문이다. 날카로운 돌이나 자갈이 많은 것도 아닌데 많이 걷기가 힘들다. 트랙을 깔면서 땅을 다지고 또 다지고 했을까, 이곳은 섬마을이라 모래에 소금기가 들어가면 이렇게 딱딱해지는가, 이 속에 시멘트를 덮고 다시 모래를 덮은 건가, 별 생각을 다 해본다. 가만히 보면 풀도 나지 않았다. 트랙 너머 벽돌 틈바구니에서는 삐죽삐죽 풀이 올라오는데, 이 모래바닥은 풀 한 포기가 없다. 모래라서 그런가? 딱딱한 바닥을 걸으니 발목도 아프고 무릎도 안 좋아지는 것 같다. 무릎이 안 좋아질 거라는 생각이 들자 불안해진다. 안 그래도 안 좋은 무릎이 맨발 걷기 때문에 더 안 좋아질까 봐. 하여튼 갈수록 늘어나는 것이 건강염려증이다. 맨날 말로는 오래 살고 싶지 않다, 70살 너머로는 살고 싶지 않다라고 허풍을 떨지만, 막상 내가 챙겨 먹는 건강보조식품은 엄청 많다. 어디 여행을 가려고 하면 우선 약봉지부터 챙기게 되고 그것이 한 보따리 짐이 되고 있다.
무릎에 부담을 주지 않고, 발목도 아프지 않게 하려고, 발바닥에 힘을 주어 걸었다. 뒷 발바닥이 땅에 먼저 닿도록 하고 중간, 그리고 앞발바닥으로 땅을 디디려고 했다. 너무 발바닥에 힘을 주었나, 오른쪽 뒷 발바닥에 뭔가가 세게 닿는 느낌이 들었다. 돌조각이겠지, 하며 인공잔디로 가서 발바닥을 비비고 다시 걸었다. 마침, 여름이 지나가고 있어서 해는 좀 더 빨리 수그러들고, 바람 한쪽이 시원해지고 있었다. 저물도록 걸었다. 가을과 하늘과 바람과 그리고 거기에 닿는 내 발바닥의 감촉을 감사히 느끼면서...
집에 돌아와서도 내딛는 오른발이 아팠다. 이게 뭐지? 들여다보니, 아주 조그마한 점이 보인다. 찢겼나 보다, 하고 둘레를 만져보아도 파였다는 느낌은 없는데 디디면 아프다. 가시가 들어간 듯 뭔가가 들어간 듯싶지만 돋보기를 끼고 살펴보아도 오돌토돌한 흔적은 없다. 들어간 것 같지는 않은데, 애매하게 뭐가 들어간 것처럼 아프다. 그럭저럭 또 하루를 보내고 또 하루를 걸었다. 아픈 데를 많이 딛지 않고 걸으려고 했다. 다닐만 했다.
오늘이 사흘째, 안 되겠다 싶어 동네 병원을 찾았다. 이곳은 신안의 한 작은 섬마을. 병원은 웬만한 병은 다 보는 종합병원이다. 내과, 외과, 정형외과, 이비인후과... 다 있다. 들어가니 오른편으로 물리치료실이 있고 거기에 가득히 할머니, 할아버지가 베개를 베고 누워있거나 엎져 있다. 모두 치료 중이다. 진료실 복도에 있는 의자에도 할머니 할아버지뿐이다. 의자 앞에 걸린 거울로 내 모습을 본다. 참, 젊구나! 노인들이 가득한 병원에 가니 내가 훌쩍 젊어졌다. 괜히 당당해지고 편안해진 느낌이 든다.
접수대에 앉아 있는 사람도 나이가 지긋한 시골 아저씨이다. 눈에 띄는 모든 것이 세련되지 않고, 촌스럽고, 어수룩하고, 정리가 안된 모습이다. 덥수룩한 의사는 발바닥을 들여다보더니, 마취를 하고 상처를 헤집어서 박힌 것을 빼내야 한다고 했다. 상처를 헤집어도 아무것도 없을 수도 있다고 했다. 육안으로는 알 수 없으니 상처를 찢고 봐야 알 수 있다 했다. 수술실도 아니고, 대기실도 아니고, 달랑 침대 하나 놓여 있는 곳에서 마취주사를 맞고 치료를 받았다. 한참 긁는 듯하더니 쬐그만 게 있다고 했다.
"조그매요?"
"예, 깊이 박혔네요."
콩알보다 좁쌀보다 더 작으리라. 모래보다 더 작은 것이 몸에 박혀서 사흘 동안 그렇게 불편했나 보다. 그 쬐그만한 것이 하나 박혔다고 해서.
"뺐어요?"
엎져 있어서 내 발바닥을 볼 수 없는 처지라 상상만 하면서 물어보았다. 뭔가 나와야 안심이 될 듯했다.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빼내야 한다. 그 쪼그만 것이 안 빠지고 있으면 끝내는 무슨 사고를 낼 것만 같았다. 너무 쪼그매서 못 뺐다고 해도 뺏다고 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야 안심이 될 것 같았다.
" 예, 뺐네요"
뻈다는 의사의 말을 믿기로 했다. 뺐으니까, 뺐다고 했겠지. 환자한테 의사가 거짓말을 했겠어? 이게 나왔다고 보여주었으면 좋았겠지만 의사는 그대로 소독을 하고 붕대를 붙이더니 다음에 소독하려 오라고만 했다.
어쨌든 안심이다. 그 쬐그만한 것이 나와서 다행이다. 세상에는 어마어마한 통증이 많이 있지만, 이렇게 작은 것으로 불안해 해는 찌질한 통증도 있다.
화면에 올리기엔 참 민망한 발바닥의 상처
오늘 치료비는 2만 5천 원. 계산을 하니, 두툼한 검은 봉지를 건네준다. 오늘이 병원 개원 5주년이란다. 꽤 묵직하다. 갑자기 마음이 좋아지고 따뜻해져 온다. 역시 공짜는 좋은 것이다. 그러나 공짜가 주는 즐거움보다는 훈훈한 마음이 더 크다. 아까부터 늙고 허수레하고, 낡고, 덥수룩한 병원이 주는 편안함은 진즉 느끼고 있었지만, 한 덩이 선물을 받고 보니 그 편안함이 더 좋아지는 것이다. 시간이 되면 소독하러 나오라는 의사의 말도 이웃집 주민의 인사말처럼 들린다.
병원 5주년 기념이라고 준 선물은 구론산 드링크 두 병, 두유 하나, 시루떡 한 팩, 그리고 수건 한 장이었다. 피곤한 몸을 드링크로 축이고 더운 땀을 닦고, 소화하기 좋은 시루떡과 두유를 드시라는 마음이다. '노인들에게 뭐가 좋을까'를 두고 오래 고민한 시골 병원의 마음이다. 요양원에서 세 달을 넘기지 못하고 돌아가신 아버지가 떠오른다. 콧줄을 끼고 있던 아버지가 반의식 상태에서 중얼거린 말이 "두유, 두유"였다. 두유 먹고 싶으세요? 하고 물으면 고개를 끄덕이고 두유, 두유 하셨다. 두유를 드시지도 못할 거면서 계속 두유만을 말씀하셨다. 아버지는 평생 냉랭하고 차가웠던 분이시라, 누구 이름 대신 두유를 말씀하시다 돌아가셨다.
느닷없이 병원에서 준 물건 하나 때문에 아버지 생각이 나서 마음이 아련해졌다. 아버지는 가셨는데, 당장 내 발바닥은 안전한가? 지금 내 발밑은 안전한가? 푹신한 운동화로 싸맸던 발바닥이 맨발 걷기로 수난이다. 맨발로 맨흙바닥을 걷는 일은 힘들다. 맨살을 서로 맞닿는 일은 그만큼 힘든 것인지 모른다. 나와 네가 아무 막힘 없이 상대한다는 것은 맨얼굴을 들이대는 것처럼 솔직하고 담대해야 가능한 일이다. 그와 같은 일인지 모른다.
맨발의 상처 때문에 방문하게 되었던 읍내 병원의 풍경은 푹신한 운동화를 걷어내고 만난 복권이었다. 오늘 만난 행운! 발바닥은 마취 주사로 아팠지만, 깔끔하지 못하고 촌스러운 듯한 치료가 마음을 따뜻하고 반갑게 해 주었다. 무엇으로 덮여 있지 않은 촌스러움이 주는 편안함이 있었다. 촌스러워서 좋은 것. 촌스러워서 편안한 것.
우리가 그렇게 세련될 필요가 있겠는가, 매끈하고 세련되기 위해서 그렇게 피땀 흘릴 필요가 있겠는가. 바닥은 간혹 위험하기는 하지만 뜻밖의 건강과 행운을 가져다주는 법이다. 오늘처럼 말이다. 나의 맨발 걷기는 계속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