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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리 Jul 12. 2021

코로나 이전의 세계를 까먹을까 봐

코로나 이전의 세계가 잊힐까 봐(그럴 일은 없지만) 이 글을 쓰고 싶어 졌다.


2020년 3월 경에 코로나19가 본격적으로 세계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각 나라는 자국민 보호를 위해서 앞다투어 국경을 닫았다. 어떤 나라는 똘똘 뭉쳐 그걸 잘 해냈고, 어떤 나라에서는 사망자가 무시무시하게 속출했다. 처음 보는 광경에 나는 숨 막히고 슬펐고, 무서웠다. 이 감정은 지금도 유효하지만 이즈음에서 이전의 세계를 그리고 싶다.


우린 그때 국경 없이 여행을 다녔다. 감기나 독감에 걸려도 마스크를 잘 쓰지 않았다. 기침을 할 때 팔을 접어서 팔꿈치로 입을 가리는 문화도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은 걸로 기억한다. 흥의 민족이 터를 잡고 세운 우리나라에는 새벽 1시가 넘도록 운영하는 술집, 음식점, 노래방이 도처에 있어서 체력만 허용한다면 나는 평일 저녁에도 호기롭게 약속을 잡고 늦게까지 놀곤 했다. 노는걸 '막는' 건 없었다.


여름이 다가오면 휴가지를 고르는 게 늘 화두였다. 계획을 세우다 보면 여기 갈바엔 여기가지 하다가 어느새 비행기에 몸을 태우고 있는 경우도 있었다. 이왕 더운데 맛있는 게 많은 동남아를 가는 건 어떨까, 아님 가까운 일본, 중국 그것도 아니면 아예 오세아니아로 떠나버리는 것도 좋았다. 해외를 가면 갑자기 문화탐방을 관장하는 세포가 일을 한다. 박물관, 전시회, 미술관 등 그 나라에만 있는 특별한 걸 보기 위해 돌아다니고 부지런히 선행 공부도 한다. 음식에는 이것보다 더 본격적이고 진지하다.


당연한 말이지만 당시에도 정말 궁시렁거릴 일이 많았다. 취업은 맨날 어렵다고 했고, 환경은 역대급으로 악화되고 있다고 했다. 자극적이고 비극적인 뉴스는 넘쳐났다. 우리나라는 늘 일을 가장 많이 하는 나라에서 상위권을 맴돌았고 자살률도 그에 뒤지지 않았다. 재택근무라는 건 별로 익숙한 용어도 아니었다. 늦게까지 일했고 더 늦게까지 놀았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나라는 어떤 이슈가 생기면 그 이슈가 반영되는 속도가 심상찮은 편이다. 이들은 마케팅 자료, 홍보 영상, 기사 등 소비를 조장하는 기업의 도구가 되기 십상이고 그 길로 시장이 형성된다. 이 말인즉슨 우린 정말 빠르게 반응하고 일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렸을 땐 이걸 인지하지 못했는데, 일을 하다 보니 이런 게 보이는 걸 보니 늙었나 보다. 자주 피로하다.


서울은 4단계 방역 조치를 취하고 있다. 나는 서울에 살면서 코로나가 지겹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고 있다. 생전 처음 만나는 전염병의 두려움은 정말 충분히 체감하고 있다. 이와 동시에 바뀌고 생겨난 규칙과 문화들이 앞으로 우리를 조금 나은 방향으로 이끌기를 조금씩 기대해 본다. 나는 간절하게 코로나가 하루빨리 종식되기를 바란다. 그런데 포스트 코로나를 그릴 때 우리가 잊고 살았던 너무 당연하게 했던 나쁜 습관은 버리고 가고 싶다. 가령 너무 늦게까지 일을 한다거나, 아픈 걸 참고라도 내 몫의 일을 해내야 하는 기업 환경이라던가, 가혹한 리뷰나 이슈로 누군가를 극한으로 몰아버린다던가.


코로나 이전의 삶이 그립다.

그런데 그 이후의 삶도 조심스레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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