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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깨란 Aug 18. 2021

브런치의 '글 쓰라'는 고마운 독촉

글 쓰지 못했던 사정과 다시 키보드 앞에 앉겠노라는 다짐의 글

얼마 전 브런치에서 두 번의 알림이 왔다. 

"작가님 글이 보고 싶습니다.. 무려 60일 동안 못 보았네요 ㅠ.ㅠ" 

"작가님의 브런치 계정이 휴면 전환될 예정입니다." 


브런치의 어떤 정책에 따라 자동 발송될 메시지일 테지만, 그런 독촉이 못내 고마웠다. 

그간 글 쓰지 못한 여러 사정들이 있었다. 


1. 글이 좀 물렸었다. 

지난 1월부터 회사에서 단행본 출판 프로젝트를 맡아 왔다(참고로 내가 다녔던 회사는 출판사가 아니다).

때문에 많은 글을 읽고, 고치고, 수정하고, 추가적으로 필요한 글을 군데군데 쓰는 일이 나의 업무였다. 

그러다 보니... 글이 너무 물렸다. 사실 물릴 조짐은 대학원 시절부터 조금 낭낭했었다. 


내가 쓰던 글은 주로 아주 많은 정보들을 잘 조직화한 후, 정보를 잘 전달하는 것에 집중된 글들이었다. 논문을 생각하면 이해하기 쉬운데, 논문에서는 내가 가진 가설들을 입증하기 위해 숫자, 문자로 된 각종 데이터를 분석하고 그 내용을 잘 배치해 글로 만들어야 한다. 이번 단행본도 약 4년여간 지속된 프로젝트를 쉽게 정리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었기에, 유사한 성격의 글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다 보니 내가 목말랐던 것은 정보 말고, 마음과 생각을 보여주는 훌륭한 표현 도구로서의 글이었던 것 같다. 쉽게 말해 내가 주로 쓰던 '비문학'에 물렸고, '문학적인' 글을 쓰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오랫동안 써보지 않은 문학적 글은 사실상 한 줄조차 쓰기 버거웠다. 또 내 안의 표현도 언어도 문학에 다가가기에 너무 빈곤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래서 글이 물렸다며 외면했달까... 


2. 브런치에는 어쩐지 정돈된 글, 기획된 글을 써야 할 것만 같다. 

블로그와는 달리 브런치는 '작가 심사'라는 까다로운 과정을 거쳐 비로소 글을 '발행'할 수 있는 플랫폼이다. (내 경우엔, 세 번만에 합격했다ㅎ) 그러다 보니 쉽고 편하게 후루룩 쓴 글을 올리면 안 될 것 같은 그런 압박감이 있었다. 실은 브런치에 작가 신청을 한 것은 만족스러운 내 온라인 상 공간에서 쓰고 싶은 다양한 글을 마음껏 발행하고자 한 것이었는데... 어떤 '시리즈물로 묶지 않으면, 혹은 굉장히 잘 쓴 글이 아니면 안 된다.' 류의 생각 때문에 마음껏 글 쓰고자 했던 최초의 동기를 잊은 것이다. 


다른 한 가지는 내가 쓰고 싶은 글보다 '인기 있는 글'을 쓰고 싶었던 욕심도 있었다. 브런치에서 인기 있는 카테고리는 아마도 '퇴사', '커리어' (이건 딴 소리지만... 퇴사와 커리어가 둘 다 있는 것이 아주 흥미롭다. 나만의 커리어를 쌓으면 성장하고 싶은 욕구가 많은 사람들을 퇴사로 이끈다면, 과거의 방식을 고집하는 많은 조직들은 조금 변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 같다.) '연애', '여행', '취향', '심리' 이런 종류인 것 같다. 인기 있는 글을 쓰고 싶다는 욕심은 내가 무슨 글을 쓰고 싶은지에 대한 고민과 생각보다, 저 카테고리에서 내가 쓸만한 글이 뭐가 있나 라는 생각 앞으로 나를 이끌었다. 그리고 그 생각 앞에 주저앉아 글 쓰기를 포기했다고나 할까. 


3. 다음 스텝 없는 퇴사로 마음이 좀 붕 떴었다. 

지난주를 끝으로 1년간 다녔던 직장을 정리했다. 1년 중 6개월은 학위논문을 쓰며 직장에 다녔고, 다른 6개월은 나에게는 다소 버거웠던 단행본 프로젝트를 겨우 이끌어왔다 (물론 덕분에 정말 많이 배웠다. high 고생high 배움이랄까... 누군가 이런 내게 고통 변태라고 했다). 그리고 그 전에는 학교 다니면서, 연구보조로 주 2일 출근하면서, 학위논문 준비를 하면서, 프리랜서 작가로 글을 썼다. 쓰면서도 숨차다. 그러다 보니 여러모로 좀 쉬고 싶었다. 이룬 건 별로 없지만 이 정도면 쉬어도 된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한 가지 단단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면 정말 좋겠지만, 내 마음속에선 자주 모순된 여러 마음이 팽팽한 긴장을 이루곤 한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정말 쉬어도 된다'는 위안과 '어서 다음 스텝을'이라고 외치는 불안이 계속해서 부딪혔다. 이럴 때면 나는 몸은 움직이지 않으면서 머리만 바삐 움직이곤 했다. '이걸 할까, 저걸 할까' 머리로 재면서 실제로는 괜히 요리만 한다 ㅋㅋㅋ. 이걸 할까, 저걸 할까의 목록 속에는 단연 60일간 굶주린 나의 브런치 채널도 있었다. 머리로 구상하던 글들은 너무 거대해서 실제 글 쓰는 행동으로 까지 옮기지 못했다. 그러던 중 브런치에서 '그냥 뭐든 쓰라'며 독촉 알림이 온 것이다. 기계에게 이렇게나 고마울 줄이야.


4. 나의 하나뿐인 반려견이 많이 아프다.

그리고 마지막 사정. 나의 하나뿐인 반려견 미미가 요즘 너무 많이 아프다. 아직 11살 밖에 안 된 우리 강아지. 나랑 20살까지 살기로 처음 만난 날부터 약속했으니 버텨낼 거라 믿는다. 이 녀석이 아프면서, 이 작은 아이가 내 삶에서 얼마나 큰 존재인지 정말 깊이 알게 됐다. 내게 가족으로 와준 가장 작은 생명체인 우리 미미는, 내게 크기를 가늠할 수 없는 사랑과 신뢰를 주었다. 그리고 지금도 그 사랑을 매일 내게 주고 있다. 누군가 그래 봐야 강아지일 뿐이라고 할 수 있지만, 내게는 강아지 이상의 존재이다.


퇴사 한 덕에 미미를 위해 많은 시간을 쏟을 수 있게 됐는데, 그 사실이 감사할 정도. 온 마음이 미미의 움직임 하나, 숨소리 하나에 쏠려 있다 보니 다른 일을 손에 잡지 못했다. 그런데 오히려 미미를 위해서라도 내가 마음을 굳게 먹고 내 일상을 단단하게 만들어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미미를 돌보기 위해서는 사랑 외에도 많은 시간, 돈, 물리적 시설 등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또, 사랑스러운 강아지들은 주인의 슬픔을 너무 잘 느낀다고 하니, 혹여나의 슬픔이 미미가 싸울 힘을 덜어갈까 우려했기 때문이다. 


요즘 나는 집에서 40분~1시간 정도 거리에 동물병원에 매일 출근도장을 찍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덕분에 집중할 시간이 오히려 많아졌다. 지하철로 이동하는 시간 동안 책에 집중하기도 하고(오늘은 김애란 작가의 <바깥은 여름>을 읽었다. 나물이 몸에 전하는 기운을 묘사하는 그녀의 표현력에 말로 다할 수 없이 감탄했다), 미미가 병원에서 치료받는 동안 근처 카페에서 컴퓨터 앞에 홀로 앉아 있을 시간도 늘었기 때문이다. 논문 쓸 때도 줄곧 내 무릎을 지키며 힘을 줬던 녀석인데, 이렇게 붕 뜬 시기에 또다시 내게 시간을 선물해 주다니... 미미는 정말 내 보배다. 



어쨌든 그러니 이제 다시 글을 써볼까 한다. 글을 쓰기에 앞서 두 가지 질문을 했다. 


대관절 내게 글은 어떤 의미인가?

어린 시절 그림을 배울 때는 '화가'가 꿈이었고, 그러다 글을 배우면서는 '작가'가 꿈이 되었다. 

좀 더 커서는 오랫동안 PD가 되고 싶어 했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나는 뭐든 생각을 표현하고, 창작하는 일을 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런데 그림은 학년이 올라갈수록 공부가 더 중요해지면서 손을 놓았고, 

PD를 꿈꿨었다면 잘 다룰 법한 영상은 무엇이 두려웠던지 제대로 도전해보지 않았다. 


한편, 글은 본의 아니게 내가 가장 오랜 시간 '창작과 표현'을 위해 다루어온 익숙한 도구다. 

뛰어나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래도 꽤 많은 사람들에게 반복적으로 '잘 쓴다'는 칭찬도 받아온 터였다. 

현재의 나는 아직 잘 쓰지 못하는 '영상이 보이는 듯한 글', '심장을 때리는 문장'에 대한 욕심도 있다. 

좀 더 단련해 '창작과 표현'을 위한 대체 불가능한 무기로 만들어보고 싶은 심정. 

영상, 그림을 통한 표현도 차차 해나가고 싶지만 우선은 익숙한 도구로 시작해보리라. 


자 그러면 무슨 글을 쓸까?

어떤 걸 써볼까 많은 고민을 했다. 우선은 작은 것부터, 또 내가 자주 할 수 있는 것부터 시작하라는 말을 여러 사람으로부터 들었다. 하지만 이미 일상의 기쁨을 기록하는 '기쁨 한 줄' 시리즈가 이런 점을 목표로 두고 시작한 매거진이었다. 문제는 처음부터 설정된 카테고리였다. 카테고리에 부합한 소재를 찾다가, 글 쓰기를 포기하는 경우가 왕왕 있었다. 


이번엔 카테고리를 처음부터 지정하지 않으려 한다. 그리고 현재의 내가 매일 떠올려도 부족한 주제로 글을 쓰는 습관을 길러볼 것이다. 다름 아닌 우리 미미. 우리 미미를 만났던 날부터 지금까지, 매일이 기록 감인데 하루도 기록하지 않았다. 사랑스럽다는 말로는 부족한 우리 미미와의 시간들을 한 땀 한 땀 기록하며 미미의 회복을 간절히 기원해 볼 요량이다.  



브런치와 미미 덕분에 

다시 키보드 앞에 앉아 

기록해 마땅한 시간에 대한 기록을 

시작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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