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치료제에 대한 산업계와 보험자의 생각
디지털 치료제(Digital Therapeutics; DTx)가 화제다. 저분자 화합물 기반의 1세대 치료제, 항체나 단백질 등 생물학적제제 기반의 2세대 치료제에 이어 디지털 소프트웨어 기반의 3세대 치료제가 의약품처럼 처방되고, 사용되고, 보험급여 지원의 대상이 된다는 것이다. 전세계적으로 디지털 치료제에 대한 뜨거운 관심이 모아지고 있는 가운데, 우리나라에서도 의료제품의 안전성과 유효성을 감독하는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적극적으로 디지털 치료기기를 소프트웨어 의료기기(Software as Medical Device; SaMD)의 하나로 인식하고 가이드라인을 마련한 것은 고무적이다.
그러나 디지털 치료제가 모든 사람들에게 '약'으로 받아들여진 것은 아니다. 디지털 치료제는 헬스케어 서비스 전달체계의 이해관계자인 산업계(industry), 의료계(healthcare professionals), 보험자(payor), 환자(patient) 모두 디지털 치료제를 '약'으로 인정할 때 비로소 1세대, 2세대 치료제처럼 자연스럽게 사용될 것이다. '왜 이처럼 좋은 것을 도입하지 않는지' 답답해하는 것보다는, 각 이해관계자의 대립하는 이해관계를 이해하고 조화롭게 조정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이번 글에서는 우선 이해관계자 중 산업계와 보험자에 대해 다뤄볼 것이다.
IT업계가 주도하는 디지털치료제 산업
디지털 치료제 개발에 있어서는 대형 다국적 제약회사보다 IT업계의 적극적인 참여가 두드러진다. 디지털 치료제는 태생적으로 '치료제'보다는 '디지털'로서의 속성을 더 많이 가지고 있는 듯 하다. 2017년 미국 식품의약국(Food and Drug Administration; FDA)은 Pre-Cert 프로그램을 도입하면서, 9개 회사를 선발하였다. 9개 Pre-Cert 기업들의 면면을 보면, 대형 다국적 제약사(이른바 “빅파마”)는 단 두 곳이고, 오히려 대형 다국적 IT회사(이른바 “빅테크”) 및 IT 기반 업체들이 디지털치료제 시장을 이끌어갈 것 처럼 보인다.
(i) 빅파마: 존슨 앤 존슨(Johnson & Johnson), 로슈(Roche)
(ii) 빅테크: 애플(Apple), 삼성전자, 베릴리(Verily; 구글 자회사)
(iii) 보건의료데이터 분석 회사: 타이드풀(Tidepool; 의료기기 데이터 분석회사), 포스포러스(Phosphorus; 유전체 정보 분석회사)
(iv) 디지털치료제 개발회사: 페어 테라퓨틱스(Pear Therapeutics; 디지털치료제 FDA 최초 승인)
Pre-Cert란 디지털 치료제의 낮은 위해가능성과 혁신성을 고려하여 기존의 의료제품처럼 ‘품목별’ 임상시험을 통해 안전성 및 유효성을 증명하는 대신, 신뢰성 있는 ‘제조사’에 대해서는 우선 제품을 시장에 내놓고 실사용데이터(Real-World Data)를 수집하여 안전성 및 유효성을 증명하라는 제도이다. 한편, Pre-Cert 제도는 FDA가 2017년부터 계속하여 모델 수립, 베타테스팅, 수정 등 ‘진화’하는 방식으로 설계되어, 기존의 전통적인 규제과학(regulatory science) 보다는 IT업계 개발방법론의 영향을 받은 것처럼 보인다는 점도 눈여겨볼만 하다.
왜 산업계는 디지털치료제에 관심을 갖는가
디지털치료제는 전통적인 의약품 공급망이 아니라 이미 상용화된 개인용, 모바일, 웨어러블 전자기기에서 다운로드받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거의 즉시에 가깝게 배포되고, 끊임없이 업데이트를 통해 개선될 수 있다. 나아가 약업계와 IT업계 모두 디지털 치료제와 관련하여 실시간 실사용 정보 수집이 가능한 플랫폼으로서의 가치에 주목하고 있다. 예컨대, A사의 우울증 치료제(경구투약)와 B사의 우울증 디지털치료제(모바일 어플리케이션)을 동시에 사용하는 환자의 경우, A사의 우울증 치료제에 대한 치료효과도 용이하게 수집할 수 있으며, 전통적인 임상시험과 비교할 때 훨씬 적은 금액으로 높은 관련성을 갖는 정보를 얻게 된다. 다만, 이 경우 보건의료 마이데이터(My-Data)를 전제로 하고 있으며, 산업계의 활용 범위와 방식, 이용자에 대한 보상 방법 등 고민해야 할 지점이 많음. 예컨대, 국내 스타트업인 ‘레어노트’와 같이 희귀난치병 정보를 제공하고 블록체인 기반으로 수익을 공유받는 구조도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보험자는 습관개선에 관심이 있다
FDA나 식약처가 의료제품의 안전성과 유효성에 관심이 있다면, 보험자의 관심은 경제성, 즉 보험재정 절약에 있다. 많은 디지털 치료제가 인지행동치료(Cognitive Behavioral Therapy; CBT)의 디지털 버전을 활용하고 있으며, 이는 또한 많은 디지털 치료제의 적응증(indication)이 인지행동치료로 개선할 수 있는 적응증과 중첩됨을 의미한다. 인지행동치료로 개선 가능한 적응증은 오피오이드, 알코올 중독 등 당연하게 질환으로 인식되는 ‘중독’들과, 방치될 경우 질환으로 이어질 수 있는 식습관(비만), 수면습관(불면증), 양치습관(치주질환) 등의 ‘습관’들이 있을 수 있다. 보험자(payor), 특히 국가 주도의 보험의 경우 ‘중독’ 치료나 ‘습관’ 개선이 보험재정 개선으로 연결될 것이라는 고려에서 많은 관심을 쏟고 있다. 예컨대 일본은 2014년 디지털 치료제를 법제화하고, 금연치료용 앱인 큐어앱을 처방 디지털치료제(Prescrbied DTx; PDT)로 승인한 바 있다. 보험자는 디지털치료제가 아닌 건강관리용 어플리케이션(예컨대, 당뇨병 등 만성질환 관리 지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보험재정 개선의 잠재력이 있다면 관심을 가질 수 있다.
결론
디지털 치료제는 전통적인 약업계보다는 IT업계에서 주도하고 있고, IT업계 입장에서 디지털 치료제의 가장 큰 잠재력은 실시간으로 사용자의 건강정보를 수집, 처리하여 고부가가치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디지털 치료제 산업의 성장을 위해서는 (i) 보건의료데이터의 수집, 처리, 제공에 대한 제도개선과 함께, (ii) 디지털 치료제를 ‘플랫폼’으로 이루어지는 원격 의료행위 관련 규정에 대해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나아가 보험자의 입장에서는 (iii) 디지털 치료제가 ‘중독’ 및 ‘습관’을 개선하여 잠재적으로 보험재정을 절약할 수 있다는 점을 보다 적극적으로 인식한다면, 디지털 치료제는 빠르게 확산될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은 2021. 3. 23. 한국인터넷기업협회가 주최한 디지털 치료제 연구조사 발표회에서도 같은 취지로 발표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