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표 연구소 @ 표경민 변호사_법무법인 디라이트
타인의 선등록상표와 유사한 상표를 사용하였으나 그 유사 상표에 대한 등록이 있을 경우, 종래 법원은 유사 상표에 대한 등록이 무효로 된 이후에만 상표권 침해가 성립한다고 보았습니다(대법원 1986. 7. 8. 선고 86도277 판결, 대법원 1999. 2. 23. 선고 98다54434, 54441(병합) 판결).
법원이 그렇게 판결해 온 이유는 간단합니다. 선등록상표와 표장 및 지정상품이 유사한 상표라고 하더라도, 일단 유효하게 등록된 이상 그 등록이 무효로 되기 전까지는 등록상표에 대한 권리가 보호되어야 한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선등록상표의 권리자는 유사 상표에 대한 상표권 침해 소송을 청구하기에 앞서 유사 상표에 대한 등록 무효심판을 청구하여 상표를 무효로 만들어야 했습니다.
최근, 위 법리를 변경하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내려졌습니다. 대법원은 '먼저 발생한 상표의 권리가 우선한다'는 상표권의 기본 원칙에 따라, 나중에 출원된 유사 상표가 유효하게 등록되었다고 하더라도 그 유사 상표를 선등록상표 권리자의 동의 없이 선등록상표의 지정상품과 유사한 상품에 사용하였다면, 선등록상표 에 대한 권리를 침해한 것이라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이 판결에 따라, 선등록상표의 권리자는 후출원된 상표의 등록 여부와 상관없이 선등록상표에 대한 자신의 권리를 우선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선등록상표가 있는데 나중에 출원된 유사 상표는 어떻게 등록받을 수 있었을까요? 선상표와의 표장 및 지정상품의 유사 여부, 상표의 식별력 유무 등에 대한 판단은 주관적 판단으로, 누가 어떠한 근거를 가지고 판단을 내리느냐에 따라 결론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이번 전원합의체 판결의 사안에서도, 특허청은 선출원 상표와 후출원 상표인 'DATA FACTORY'가 '컴퓨터 프로그램 개발업'등의 서비스에 대하여 식별력(*'식별력'이란 상표가 상품의 출처 표시 역할을 할 수 있는 '힘'이 있는지에 대한 것으로, 예를 들어 '사과' 상품에 'Apple'이라는 상표를 사용하면 출처 표시의 역할을 할 수 없지만, '컴퓨터' 상품에 'Apple'을 사용하면 출처 표시의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이 없다고 보아 'DATA FACTORY' 부분을 제외한 두 상표가 비유사하다고 판단하여 후출원 상표의 등록을 허용하였지만, 법원은 특허청의 판단과 달리 'DATA FACTORY' 부분도 식별력이 있다고 보아 후출원 상표는 선등록상표와 동일 유사하며, 이에 따라 상표권 침해가 성립한다고 판단하였습니다. 따라서 특허청의 등록결정을 받은 상표라 하더라도 특허심판원의 판단에 따라 등록이 무효로 될 수 있고, 앞으로는 법원의 판단에 따라 타인의 선등록상표에 대한 상표권 침해가 될 수도 있음에 유의해야 합니다.
이번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하여, 상표권리자는 나중에 등록된 유사 상표의 무효심결을 이끌어내지 않고서도 바로 법원의 판결을 통해 상표권 침해를 인정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또한, 상표권 침해의 성립 시점이 유사 상표의 등록 무효 확정 시점에서 유사 상표 사용 시점으로 앞당겨짐에 따라, 침해자의 고의 과실을 입증하면 선등록상표의 권리자가 주장할 수 있는 배상액도 증가될 것으로 예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