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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건 May 15. 2021

“자전거 사주세요, 콘텐츠 구독하려고요.”

[포스트 코로나 IT 트렌드] 펠로톤과 구독 경제

"엄마, 신문 좀 구독해주세요."

"무슨 신문을 본다고 하니? 책도 잘 안 보면서…"

"신문이 논술 시험에 도움된다고 해서요."


90년대에 학교를 다녔다. 논술 시험이 대학 입시의 중요한 관문으로 부각되던 시기다. 신문을 활용한 교육, NIE(Newspaper In Education)라는 말이 유행처럼 번졌다. 사설을 많이 봐야 논술에 도움이 된다고들 했다. 신문사들은 이 용어를 마케팅에 활용했다. 사실 논술 시험을 잘 보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단지 자전거가 갖고 싶었다. 당시 신문사들은 구독자에게 자전거를 사은품으로 증정했다. 신문 구독은 자전거를 가질 수 있는 좋은 명분이었다. 부모님은 큰 의심을 하지 않고 신문 구독을 해주셨다. 자전거는 신나게 타고, 신문은 TV 편성표 정도만 봤던 것 같다. 자전거가 목적이고, 신문 구독은 수단이었다. 잘 보지 않는 신문 구독료로 자전거 가격 이상의 값을 지불했다. 자전거를 가질 수 있어 기뻤지만, 신문 구독 철회의 지난한 과정을 거치며 구독이란 건 함부로 해선 안된다는 걸 깨달았다.


‘자전거와 구독’ 이 오묘한 조합을 다시 만났다. ‘홈트레이닝 시장의 넷플릭스’라는 수식어로 등장한 펠로톤(Peloton) 덕분이다. 펠로톤은 디스플레이가 달린 실내 자전거와 스트리밍 콘텐츠 구독을 접목한 서비스다. 피트니스 센터에서 운동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억눌린 수요가 폭발하며, 펠로톤은 코로나 시대 대표적 수혜 기업으로 주목을 받았다. 집에서 운동을 한다는 뜻의 ‘펠로톤 한다’는 말까지 생겼다. '코로나 시대 미국인의 필수품 세 가지는? 휴지와 고기, 그리고 펠로톤'이라는 농담도 회자됐다.


펠로톤의 시작은 소울 사이클이다. 2006년 뉴욕에서 시작된 실내 라이딩 스튜디오로, 모델, 패셔니스타 등이 즐겨 찾는 뉴요커들의 핫플레이스다. 이곳을 자주 애용하던 존 폴리 부부는 아이를 낳은 이후 운동하러 갈 시간이 없어지자, 집에서도 소울 사이클을 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다. 실내 사이클에 커다란 디스플레이를 달아 집에서 운동하면서도 오프라인 스튜디오에 모여 강습을 받듯이 콘텐츠를 보면서 운동을 하면 어떨까 생각했다.


이들은 소울 사이클의 강사들을 직접 섭외했고, 펠로톤의 비즈니스 모델을 구축했다. 커넥티드 피트니스 제품(Connected Fitness Products), 구독(Subscription) 상품을 출시했다. 펠로톤 바이크는 2,245달러(약 250만 원), 월 콘텐츠 구독료는 39달러(약 5만 원)로 적지 않은 금액이다. 2011년 시작되었던 펠로톤은 2019년 나스닥에 상장되면서 승승장구했고, 2020년 코로나 시대를 맞아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2020년 9월 발표한 성과 발표에 의하면, 매출은 전년 대비 172% 증가해 분기 매출 6억 달러(약 7,000억 원)를 기록했다. 구독자 수는 두 배 이상 늘어 110만 명 정도다. 주가 또한 크게 올랐다. 2019년 30달러대였던 주가는 2020년 150달러까지 치솟으며, 주주들에게 5배 이상의 수익을 안겼다. 시가 총액은 350억 달러로 약 40조 원이다. 코스피 기준 10위 안에 드는 규모이며, 카카오와 비슷한 수준이다.

펠로톤의 인기 비결은 쌍방향 인터랙션(interaction)이다. 22인치 고화질 터치스크린을 통해 강의 장면을 보면서 실시간으로 따라 할 수 있다. 매일 20개의 새로운 클래스가 열린다. 이를 집에서 직접 라이브로 참여할 수 있다. 언제든 강사나 함께 운동하는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다. 서로 격려하고 자극받으며 경쟁심도 생기게 된다. 운동은 스스로 하기 정말 어렵고, 그래서 사람들이 피트니스 센터를 찾는다는 심리를 잘 파악했다. 강사의 적절한 채찍질과 주변에서 함께하는 이들의 격려 속에서 엄청난 인기를 누리게 됐다.

 

펠로톤은 현재(3월 기준) 글로벌 시가총액 1위 애플(2,300조 원)이나, 모든 자동차 회사 중 가장 높은 가치를 인정받는 테슬라(740조 원)와 비슷한 비즈니스 모델을 선보인다. 제품을 파는 하드웨어 회사지만, 소프트웨어도 강하다. 애플은 자사 제품 전용의 콘텐츠를 공급해, 고객을 애플 생태계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게 만든다. 애플이 제공하는 압도적인 경험과 애플 헬스, 애플 TV, 애플 뮤직 등 차별화된 콘텐츠로 ‘한 번 애플 유저는 영원한 애플 유저’가 되고 만다.


테슬라는 전기차 양산 역량과 함께 소프트웨어 기술에 대한 기대감이 기업 가치에 많이 반영되어 있다. OTA(Over-The-Air, 차량 구매 이후 무선으로 소프트웨어를 업데이트 배포) 기술로 언제 어디서든 업데이트가 가능한 환경을 구축했다.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로 제로백(자동차가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km에 이르는 시간)을 2초대로 단축했다. '출시 이후 제로백 단축'이라는 기존 자동차에선 볼 수 없었던 압도적 경험을 제공한다. 제로백은 내연기관 양산 업체들이 0.1초 단축하려고 모든 역량을 쏟아부었던 기술이다. 고객 목소리에도 귀 기울인다. 차량의 센서 카메라 활성화로 원래 없던 블랙박스 기능도 제공한다. 순정 블랙박스가 없어 불편하다는 고객의 의견을 반영했다. 이런 소프트웨어 기술에 고객은 열광한다. 펠로톤의 폭발적 인기, 높은 기업 가치는 단순히 자전거를 튼튼하고 멋지게 잘 만들어서가 아니다. 하드웨어를 받쳐주는 소프트웨어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미래의 큰 기대감은 하나만 잘하는 기업이 아닌, 둘 다 잘하는 기업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비추고 있다.


펠로톤은 자전거라는 하드웨어에 구독 콘텐츠라는 소프트웨어를 결합했다. 자전거 판매에 그치지 않고, 판매 이후의 경험을 콘텐츠로 제공했다. 현재의 트렌드를 파악했고 사람들의 욕망을 충족시켜줄 수 있는 사업 모델을 찾았다. 그 분야에서 가장 핫한 전문가를 섭외해 콘텐츠를 제작했다. 초창기에는 사무실 뒤편에 4대의 사이클과 빌려온 조명으로 시작했지만. 막대한 투자로 최적의 콘텐츠 제작 환경을 만들었다. 할리우드 영화 촬영 스튜디오를 능가하는 펠로톤 콘텐츠 전용 스튜디오를 뉴욕에 구축했다. 이곳에서는 촬영 관련 최고의 전문가들이 상주해있다. 콘텐츠의 퀄리티를 높이기 위해 에미상 수상 경력이 있는 전문가들을 전략적으로 영입했다. 사이클 운동할 때 필요한 신나는 음악을 위해 B2B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 뉴로틱 미디어(Neurotic Media)를 인수했다. 엔터테이너(강사), 스튜디오, 촬영감독, 음악까지 모든 걸 갖추었다. 이곳에서는 매일 20여 편의 클래스가 생중계되며. 월 1000개 이상의 콘텐츠가 만들어지고 있다.



트렌드를 찾아내고, 그에 맞는 사람을 섭외, 콘텐츠로 제작하는 일련의 행위는 신문과 방송, 기존의 미디어 업체가 가장 잘하는 일이다. 펠로톤은 콘텐츠 제작 역량을 확보하기 위해 막대한 투자를 했지만, 미디어는 이미 갖추고 있다. 신문과 방송의 콘텐츠 제작 목적은 대부분 ‘감상’이다. 재미나 감동을 주기 위해, 정보 전달을 하기 위해 콘텐츠를 제작한다. 펠로톤처럼 콘텐츠를 활용해 감상 이상의 물리적인(Physical) 경험을 제공해준다면 어떨까? 자전거가 될 수도 있고, 러닝 머신, 요가, 스텝퍼, 맨손 운동 등 집에서 할 수 있는 모든 홈 트레이닝과 결합해볼 수 있다. 미디어는 섭외-제작 등 콘텐츠를 맡고 운동에 필요한 기구는 제조업체와 함께 개발하거나, OEM(Original Equipment Manufacturing, 주문자 상표 부착 생산) 방식도 활용해 볼 수 있다. 쿠킹 방송 콘텐츠와 요리하는 물리적 경험을 연결할 수도 있다. 백종원의 쿠킹 방송과 조리기구 및 밀키트를 연결해보면 어떨까?


신문을 보면 정말 좋은 인터뷰를 만나볼 수 있다. 주말판 신문은 인터뷰의 정수다. 각계 전문가들의 다양한 시선을 느낄 수 있다. 특히 심리상담 전문가의 인터뷰를 보면, 글을 읽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정화되는 느낌이다. 이런 사람들의 인터뷰를 단순히 인터뷰로 끝나는 게 아니라, 심리 상담 서비스와 연계해보면 어떨까? 신문 인터뷰의 감상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감상 이후 새로운 경험이 시작되는 셈이다. 신문을 읽고 감동받은 독자들이 ‘이 사람에게 직접 상담받고 싶다’고 느낄 때, 해당 신문에서 운영하는 애플리케이션을 QR 코드로 열고, 직접 상담을 받을 수 있게 한다면? 경제 분야 구루를 인터뷰하고, 이후 정말 관심 있는 사람들을 모아 특별 온라인 강연회를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들을 수 있다면? 학생들에게 사설 쓴 논설위원이 NIE 애플리케이션에서 직접 사설 잘 쓰는 법을 알려주고, 논술 첨삭 지도를 해준다면 어떨까? 다양한 상상을 해볼 수 있다. 서비스를 통한 새로운 수익 모델도 창출된다.


“자전거 사주세요, 콘텐츠 구독하려고요.”

펠로톤이 바꾼 패러다임이다. 신문 구독을 위해 자전거를 주던 시절은 지났다. 이제는 콘텐츠 구독이 목적, 자전거가 수단이 되는 시대다. 좋은 경험을 제공해주는 콘텐츠에 고객은 언제든 값을 지불할 준비가 되어있다.  시장을 정확히 바라보고 빠르게 대응한다면, 제2의 펠로톤은 미디어 업계에서 탄생할지도 모른다.


- <월간 신문과 방송> 4월호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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