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세계경제포럼(WEF)과 KAIST가 공동으로 4차 산업혁명과 그 사회적 영향에 대해 토론을 벌였을 때 일이다. WEF에서 일하는 한 연구자가 1차 산업혁명부터 4차 산업혁명까지 그 특징을 각각 한 장의 사진으로 설명했다.
1차 산업혁명은 스팀엔진과 기계가 주도한 혁명으로 ‘타자기’가 제시됐다. 2차 산업혁명은 전기와 분업의 시대를 상징하는 라디오를 보여줬다. 3차 산업혁명은 정보통신과 자동화의 시대였고, 그것을 상징적인 사진으로 컴퓨터가 제시됐다. 4차 산업혁명에는 어떤 사진이 제시됐을까? 우리들이 최근 자주 보고 있는, 두 눈을 헤드셋으로 가리고 이를 통해 가상현실 또는 증강현실을 보는 사람의 모습이 제시됐다. 가상세계와 물리세계의 결합을 의미했다.
“데이터와 지식에 접속해 모든 것을 연결하고 저장”
가상세계와 물리세계의 결합이라고 하면 감이 잘 오지 않는다. 그것이 인터넷으로 연결된 지구촌 사회를 의미하는 것이라면 이미 경험한지 오래됐다. 별로 새로울 것도 없다. 전자게임 속에 빠져 있는 내가 가상세계와 물리세계를 넘나드는 사람이라면 그 또한 낯설지 않다. 우리는 오래 전부터 문자로 된 소설을 읽으면서도 가상의 세계를 탐험하곤 했다. 그러면 4차 산업혁명이 말하는 가상세계와 물리세계의 결합은 무엇이 다른가?
4차 산업혁명을 앞장서 주창하고 있는 세계경제포럼은 “엄청난 양의 데이터와 지식에 접속해 모든 것을 연결하고 모든 것을 저장하는 시대”라고 정의한다. 기술발전의 속도가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고 거의 모든 산업에 영향을 미친다. 생산과 일하는 방식, 이를 규제하거나 새로운 시도를 허용하는 지배구조(governance) 측면에서 매우 다르다고 주장한다.
이 시대를 끌고 가는 기술시스템과 제품 및 서비스는 AI, 로봇, IoT, 자율주행차, 3D프린터, 나노와 바이오 기술, 재료공학, 에너지 저장기술, 퀀텀 컴퓨팅, 합성생물학 등 매우 다양하다. 이 기술이 만들어낼 미래사회는 사실상 현재로선 상상하기 힘들다. 우리는 매우 빈번하게 기술의 발전에 놀라게 될 것이고, 한평생을 새로운 사회에 적응하느라 배우고 또 배우는 시대가 매우 자연스럽게, 그러나 피곤하게 펼쳐질 것이다.
매우 새로운 미래사회가 도래하면 우리들의 일자리는 어떻게 될까? 독일은 4차 산업혁명을 ‘산업4.0(Industrie 4.0)’으로 이해하고 있는데 흥미로운 사실이 있다. 산업4.0에 대응하는 ‘노동4.0(Arbeit 4.0)’을 독일연방 노동사회부와 기업, 노동계의 주도로 논의하고 있다는 점이다. ‘양질의 노동’이라는 비전을 제시하고 있는 노동4.0은 일과 가정의 양립, 연령과 장애요인을 고려한 더 나은 사회적 통합 그리고 노동자와 기업인에게 더 많은 잠재적 기회가 제공되어야 한다는 것을 목표로 설정했다.(부어, 2017) 독일은 기술의 발전을 통해 어떤 미래가 가능한지 분석하는 것에 멈추지 않고, 어떤 미래가 바람직한 것인지까지 제시했다는 측면에서 매우 유익하고 미래지향적인 태도와 노력으로 볼 수 있다.
‘참여를 통한 혁신’이 중요한 시대
노동4.0에서 눈에 띄는 대목은 디지털화의 가장 큰 잠재력으로 ‘참여를 통한 혁신’을 꼽았다는 점이다. 독일의 노동4.0은 노동자의 참여가 기업의 혁신 잠재력을 깨운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요즘 우리사회의 과학기술계에서 논의되는 오픈 사이언스(open science)나 오픈 이노베이션(open innovation)의 관점에서도 동의할 수 있다. 단어 앞에 co-를 붙인 co-producer나 co-creator 등으로 표현되는 참여의 확장은 국가 연구개발(R&D) 사업이나 민간 기업에서 생산성 및 혁신성을 높이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박성원 진설아, 2016; Chesbrough, 2006) 보건의료학계에서는 연구에 참여하는 개인을 피험자(a testee or examinee)라고 부르지 않고 시민 과학자(a citizen scientist)로 대우하며, 연구 혁신의 동력으로 삼고 있기도 하다(Hoffman, 2015).
중요한 점은 더 많은 노동자 시민들이 기업과 정부의 의사결정에 참여하고 그 결과로서 기업과 정부의 혁신성을 높여야 한다는 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노동4.0이 주장하는대로 노동자들이 새로운 사회에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을 지속적으로 개발할 수 있는 사회적 환경이 조성되어야 한다. 기술의 급격한 발전에 발맞춰 노동자들도 이런 신기술을 이해하고 활용하는 교육의 중요성은 강조되고 있다. 하지만 실제 노동자가 필요로 하는 교육 내용은 부족한 실정이다. 정부와 기업 위주가 아닌 노동자 위주의 교육 환경이 우선 만들어져야 한다(오정록, 2013; 홍명교, 2015).
[시리즈] 4차 산업혁명시대, 인간의 자리를 묻다
* I. 일자리4.0이란 무엇인가 / 현황과 담론
Ⅱ. 인간의 자리는 어디인가 / 일자리 4.0과 일자리
Ⅲ. 직장과 근무환경의 변화 / 일자리 4.0과 기업
Ⅳ. 교육이 시작이다 / 일자리 4.0과 교육
Ⅴ. ‘일자리 4.0’ 그리고 ‘나’ / 일자리 4.0과 개인
Ⅵ. ‘큰 그림’이 필요하다 / 일자리 4.0과 정부정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