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중심이다. 그 어떠한 기술적인 발전에서도.
(Der Mensch bleibt im Mittelpunkt - bei allem technischen Fortschritt)
-독일 4차 산업혁명 플랫폼 일자리 4.0 워킹그룹
‘일자리 4.0’의 개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4차산업혁명’이란 단어를 들여다봐야 한다. ‘4차산업혁명’은 2011년 독일에서 처음 등장해 ‘Industrie 4.0’ 혹은 ‘I 4.0’으로 사용됐다. 독일에서 4차산업혁명의 단초는 제조업 공장설비에 사물인터넷이 접목되면서부터다.
제조, 주택, 의료, 교통, 도시, 에너지 시스템이 서로 연결되고 급속도로 성장한 온라인 미디어, 검색, 공유 중심의 플랫폼이 제조업과 서비스 산업까지 확대되고 있다. 공장현장과 가상세계를 인터넷으로 연결하는 사이버 물리 시스템은 실시간으로 시뮬레이션을 가능하게 한다.
독일은 4차산업혁명을 ‘재즈 음악’에 비유한다. 3차산업혁명이 정확한 음과 정해진 소리를 내야 하는 ‘클래식 음악’이라면 4차산업혁명은 그때그때 변주가 가능한 ‘재즈 음악’이다. 빠른 속도로 변화하는 시장의 요구를 반영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고객 수요에 맞춰 제조공정을 실시간으로 변화시키고 이를 유연하게 공유할 수 있어야 한다.
같은 맥락에서 독일에서 ‘Arbeiten 4.0’, 즉 ‘일자리 4.0’이라는 용어가 등장했다. 영어로 ‘Work 4.0’으로 번역되는 이 용어는 ‘4차산업혁명 시대의 미래 일자리와 고용 환경’을 의미한다. 국내에서는 ‘노동 4.0’으로 번역해 쓰이기도 한다.
우리가 직접 설계하는 우리의 일자리
국내에서 ‘일자리 4.0’은 이제 막 논의를 시작하는 단계라고 볼 수 있다. 용어 정의는 물론 실제 산업에의 적용, 정부 정책, 소비자 문제 등에서 모두에게 아직 낯선 개념이다. 일부 전문가(학자)들은 이 용어가 해외에서 ‘직수입’됐다는 점을 문제 삼기도 한다.
하지만 공통적인 의견은 “개념 정의보다는 우리 사회 어느 분야에 어떤 방식으로 적용하고 논의할지를 함께 고민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더 중요하다”라는 점이다. 변화가 급속도로 진행 중인 만큼 개념 정의보다 발 빠른 움직임이 더 필요할 때다.
‘일자리 4.0’ 시대의 ‘새 판 짜기’는 이제 막 시작됐다. 미래 일자리 설계는 결국 우리 몫이다. 4차 산업혁명 혹은 인공지능이 우리의 일자리를 결정하지 않는다. 또 미래 일자리가 운명적이거나 결정적이지도 않다. 우리가 설계하기 나름이다. 자존감을 가질 수 있는 일, 자아실현과 사회참여가 가능한 일, 가정과 직업 그리고 일과 학습을 병행할 수 있는 일들을 직접 설계해야 한다.
인류는 구석기, 신석기, 청동기, 철기 시대를 거쳐왔다. 청동기 도구를 활용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사람이 살아남았듯, 미래 새로운 환경에서 높은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사람이 살아남을 것이다. 높은 가치를 창출한다는 것은 결국 상대적인 경쟁력을 갖는 일이며 남과 다른 나만의 차별성을 갖는 일이다.
따라서 자신의 강점을 먼저 알아야 한다. 우리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원하는지를 찾아야 한다. 우리 자신의 가치관 혹은 세계관을 토대로 우리가 원하는 미래사회의 큰 그림을 그리는 일을 시작해야 한다. 그리고 이것이 미래 일자리에 대한 비전이 합의되는 1차 프로세스다.
해법은 ‘플랫폼을 통한 의사소통’에 있다
그다음은 ‘플랫폼’ 형성이다. 서로 다른 다양한 사람들의 생각을 수렴할 수 있는 ‘플랫폼 의사소통’ 방식이 필요하다. 독일은 일찍이 ‘워킹그룹’ 플랫폼을 구축했다. 새로운 물결이 밀려오면 플랫폼부터 열고 보는 식이다. 미래의 직업 세상에 대한 밑그림을 사회적 논의의 플랫폼에서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함께 그리는 것이다.
독일에서 20여 명 정도로 구성된 각각의 워킹그룹은 자신들의 문제의식을 ‘지식 경연(競演)’ 형태로 겨룬다. 일반 시민들이 열광하는 이 프로그램은 누구나 참여해 지식을 배틀하고, 청중이 평가한다. 이 경연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내용과 논의의 깊이는 물론 쉽고 재미있게 설명해야 하므로 발표의 질이 상당히 뛰어나다. 이렇게 차근차근 사회적 합의를 이루어 나간다.
물론 국내에서도 일자리 창출을 위한 수많은 프로젝트가 있었다. 그러나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했다. ‘플랫폼’이 없었기 때문이다. 서로가 씨줄과 날줄로 엮이고, 공개돼 쉽게 자신의 파트너를 찾을 수 있는 공간이 부족한 것이다. 위 독일의 사례처럼 ‘플랫폼을 통한 의사소통’이 필요하다. 산업계, 학자, 현장 전문가뿐 아니라 근로자, 은퇴자, 주부, 시민, 자영업, 1인 기업 등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일자리 4.0 설계 의견을 수렴해 나가야 한다.
바야흐로 ‘플랫폼’ 시대다. 플랫폼 시대에는 각자가 전문가다. 어느 특정 소수의 전문가를 중심으로 산업혁명이 일어났던 시대는 지났다. 집단지성을 넘어 대중의 지혜가 모여 개방형 혁신이 일어난다. 새로운 포맷이 필요하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4차산업혁명시대, 인간의 자리를 묻다’ 시리즈 기획이 ‘콘텐츠 플랫폼’을 내세우며 출발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질문을 던지고 그 답이 쌓여가고 서로 참여하고 소통함으로써 의견을 공유해 확장해 나간다면 국내 일자리 4.0 논의에서 훌륭한 방향 제시를 해내리라 믿는다.
[시리즈] 4차 산업혁명시대, 인간의 자리를 묻다
프롤로그_일자리 4.0시대,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들
I. 일자리4.0이란 무엇인가 / 현황과 담론
Ⅱ. 인간의 자리는 어디인가 / 일자리 4.0과 일자리
*Ⅲ. 직장과 근무환경의 변화 / 일자리 4.0과 기업
Ⅳ. 교육이 시작이다 / 일자리 4.0과 교육
Ⅴ. ‘일자리 4.0’ 그리고 ‘나’ / 일자리 4.0과 개인
Ⅵ. ‘큰 그림’이 필요하다 / 일자리 4.0과 정부정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