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에 선명하게 남는 초콜릿에 관한 기억들이 몇 있다. 아빠가 출장 선물로 사온 조개모양, 해마 모양의 길리안 초콜릿. 일본에서 살고 있는 고모가 한국에 오실 때 사다 주신 메리스 초콜릿. 연희동에서 만난 쇼콜라티끄의 초콜릿. 아마 이 셋이 나를 초콜릿이라는 여정으로 끌어준 가장 핵심 기억들일 것이다. 그 중 메리스 초콜릿은 일상을 살아가며 문득문득 떠오를 정도로 나에겐 짙은 인상을 남겼다. 길리안, 고디바 같은 양산형 고급 초콜릿과는 또 다른 일본 특유의 섬세함이 묻어나는 작고 예쁘고 맛있는 초콜릿이 가득 든 선홍빛 박스. 그 빛나는 붉은 빛은 아직 단 거라면 마냥 좋았던 소녀의 눈과 코와 입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성인이 되기까지는 한 알에 2천원이 넘어가는 수제 초콜릿을 먹을 일이라곤 잘 없었다. 그 때 부터도 초콜릿을 좋아했지만 애초에 내가 살던 고향 동네에서는 최근이 되어서야 고디바가 백화점에 입점했을 정도로 수제 초콜릿을 살 수 있는 가게 자체가 거의 없었다. 가족들과 일본에 갈 일이 있을 때 메리스 초콜릿을 찾아보았지만 허탕이었다(그 때는 아마 그냥 내가 어려서 못 찾았던 것 같고 지금은 면세점이나 백화점 지하에 가면 꼭 있다). 내가 아는 유일한 수제 초콜릿이었던 마리 초콜릿은 그렇게 내 코어 메모리로 기억 한 구석에 진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본격적으로 '수제 초콜릿'이라는 존재를 알게 된 건 대학을 서울로 가게 되며 청춘에 몸을 맡겨 서울의 이곳저곳을 탐험하던 중이었다. 당시 대학생들이 놀이터였던 홍대, 신촌, 이태원으로 놀러다봤지만 그 때부터도 사람이 많은 곳과 거리가 멀었던 나는 결국 꽤 길게 방황을 하다 남들 다 가는 연남동을 지나 연희동에 다다르게 된다.
그 거리를 우연히 걷다 만난 것이 연희동의 작은 초콜릿 가게 "쇼콜라티끄"였다. 쇼콜라티끄는 동그란 쉘에 가나슈를 채워 동글동글 귀여운 봉봉이 특징인데, 겪어본 적도 없는 노스텔지어를 자극하는 나무 문을 열고 들어가면 가게 문 같은 우드 접시에 오밀조밀 모여있는 초콜릿들과 조용한 여사장님께서 NPC처럼 맞이해주신다. 봉봉들을 지긋이 바라보고 있다 보면 저것들을 내 입에 넣고 굴리고 싶다는 어딘가 고장난 욕망(?)이 들어 가격표는 보지도 않고 저절로 주문을 하게 되더라. 쇼콜라티끄라는 공간과 초콜릿에 대해서는 또 할 말이 산더미라 다음에 또 길게 쓰겠다.
그렇게 가끔 피난처처럼 연희동을 찾을 때면 참새 방앗간처럼 쇼콜라티끄에 가 먹고 싶은 봉봉 두 개, 기분을 내고 싶을 때는 네 개를 사 골목을 거닐며 하나씩 소중하게 녹여먹던 시절을 지나, 인턴을 시작하고 내가 직접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 옷도 가방도 화장품에도 별 관심이 없는 나에게 초콜릿은 기어이 나의 유일한 사치품이 되고야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