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영혼은 초콜릿을 연료로 굴러간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현대인의 3대 필수 요소라는 술, 담배, 카페인을 즐기지 않는다.
술은 마실 수는 있으나 맛도 없고 약하기도 해서 마실 이유를 느끼지 못하겠으며 담배는 흡연인이 있던 자리에 남은 옅은 냄새만 맡아도 표정이 일그러진다. 물론 법적 기호식품이니 존중한다만. 커피나 카페인이 든 차 종류는 마시면 이뇨작용이 활발해지고, 라떼의 경우에도 우유가 몸에 잘 안 받아서 -그러나 유제품을 매ㅐㅐㅐㅐ우 좋아한다- 카페에 가도 주로 무카페인 차를 마신다. 이 글을 쓰는 오늘도 1차로 카모마일 티를 마시고 2차로는 루이보스 티를 마시는 중. 거기다 매운 것 까지 못 먹어서 이 얘기를 들으면 보통 두 가지 얘기를 듣는데,
세상에 먹는 게 그렇게 재미 없어서 어떻게 살아?
아침에 출근하면 잠오지 않아?
첫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은 "이 세상에는 커피, 술, 매운 음식 빼고도 맛있는 게 얼마나 많은데요."이고,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은 "출근했는데 왜 잠이 오죠?"이다. 기만자처럼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아침에 출근하면서 졸린 적은 학생 시절에도, 직장 생활을 하면서도 없었다. 아, 물론 졸아본 적이 없다는 건 아니다. 수업이 재미없거나 일이 없을 때 졸렸다는 말이지.
서론이 길어졌지만, 여하튼 내가 졸리거나 몸이 쳐지고 피곤할 때마다 찾는 각성제는 초콜릿이다. 맛있는 수제 초콜릿의 공급이 가능하다면 수제 초콜릿 한두 조각이 가장 1순위 옵션. 2순위는 시중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사제(?) 초콜릿. 지금은 거의 먹지 않지만, 이전에는 각별한 힘듦이 예상되는 날엔 판 초콜릿을 하나 사뒀다가 오전에 반절을 우적우적 해치우고, 오후에 반 절을 해치우며 하루를 버텼다. 편의점에 파는 초콜릿들 중에서는 개인적으로 가나가 가장 입에서 겉도는 싼맛과 느끼함이 덜해 좋아했다. 최악은 역시 허쉬 초콜릿. 참고로 허쉬 초콜릿이 맛 없는 것에 대해서는 역사적, 과학적(?) 이유가 있으니 궁금하다면 한 번 영상을 시청해보시길(링크)
이상하게도 회사 근처마다 초콜릿 가게들이 있어서 오전 업무가 바빴던 날에는 남들 식후땡, 식후커피 하듯 꼭 초콜릿 가게를 들렀다. 내 것을 사는 김에 같이 간 동료들이나 다른 팀원들 것도 챙기다 보니 나중에는 그냥 초콜릿을 먹지 못하는 몸이 되었다고 불만을 토로하는 사람이 나오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아, 그러고보니 지금 다니는 회사는 근처에 초콜릿 가게가 없는데 그래서 이렇게까지 퇴사가 마려운 것인가...싶기도.
그냥 오며가며 한 알씩 사먹는 것 외에, 동료의 퇴사 선물이나 내가 퇴사할 때 팀에 남기는 선물로도 초콜릿을 사주곤 했는데 - 이것도 나름 감동적인 이유가 있어 다음에 따로 적을 것 - 아무래도 입퇴사가 잦은 회사를 다녔다보니 선물용 초콜릿 패키지를 사러 가게에 가는 일도 많았고, 그러다보니 가게 사장님들과도 안면을 트며 친해지기도 했다. 그러면서 서비스로 하나씩 챙겨주시기도 하고, 신제품이 나오면 맛보라며 같이 끼워주시기도 하다보니 회사를 다니며 수제 초콜릿에 대한 애정과 집착(?)이 더 커져갔다.
그 집착이 커지다 못해 이후에는 커리어에까지 영향을 미쳤다면 믿으시겠는가. 오며가며 친해진 사장님과 어찌저찌 커리어 상담까지 하다 근무 제의를 반게 되었고, 그렇게 퇴사 직후 초콜릿 카페에서 1년간 일을 하게 되었다. 커피를 내리고 초콜릿을 만드는 시간은 나에게는 천국 같은 갭이어이자, 꿈꾸기만 해보았던 새로운 영역에 대한 탐구를 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좋아하는 것을 일로 경험하는 건 또 전혀 다른 세상이라는 진리를 어김 없이 느끼기도 했고. 지금은 다시 회사에 다니며 주말에 초콜릿 가게에서 사놨던 초콜릿들을 야금야금 아껴먹거나 그나마 대용품으로 회사 간식창고에 쌓인 초코파이와 오예스에 묻어있는 가짜 초콜릿으로 연명하고 있는 모양새다. 마치 설국열차 꼬리칸의 단백질바를 먹듯이.
초콜릿을 먹지 못할 바에야 차라리 굶어 죽으리라. 초콜릿으로 굴러가는 사람에게 초콜릿이 없는 삶이란 더 이상 어떤 의미가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