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연희동이라는 동네를 처음 알게 되었을 때부터 그 자리에 있던 가게가 있다. 고즈넉한 연희동의 길목에 앤틱한 여닫이 문 한 짝 크기의 존재감을 가지고 있는 초콜릿 가게 '쇼콜라티끄'.
사람 둘이 들어서면 꽉 차는 자그마한 가게임에도 인테리어부터 소품, 시그니처인 동글동글한 초콜릿 봉봉과 귀여운 디저트들, 가게에 들어가면 조용하게 맞아주시는 사장님까지 모두 내 취향에서 벗어난 게 하나도 없었다. 첫 만남부터 나는 아주 오래 여기 오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로. 그때처럼 자주 가지는 못하지만 일 년에 두세 번은 꼭 정기적으로 들르고 있다.
상도동 주민이었던 대학시절, 우연히 발견하게 된 연희동은 나에게 숙대입구 고비네에 이은 쉼터이자 피난처였다. 뒤늦은 사춘기에 머리가 어지러울 때면 750B 버스에 올라 50여분을 달려 연희 104고지에 도착했다. 친구들과는 홍대 연남이나 가봤지 도로 하나만 건너면 이렇게 다른 세상이 펼쳐져 있다는 걸 왜 몰랐을까. 처음 연희동을 선택하게 된 계기는 지금은 망원으로 옮긴 책바였던 것 같고, 그렇게 간 첫 연희에서 첫사랑처럼 쇼콜라티끄를 만났다.
동글동글 귀엽다!
어렸을 때부터 초콜릿을 좋아했었지만 본격적으로 수제 초콜릿의 매력에 빠지고 서울의 온갖 가게들을 찾아 쏘다니게 된 건 쇼콜라티끄의 초콜릿을 만난 이후라고 할 수 있겠다. 아무것도 모르시는 사장님은 어리둥절하시겠지만 지금의 나를 만든, 내 인생을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 비슷한 존재랄까. 오늘 가게에 갔을 때 스몰톡으로 종종 오고 있다고 그저 평범한 팬처럼 얘기하고 왔는데, 사장님 쑥스러워서 말은 못 했지만 저 지금 초콜릿 가게에서 일하고 있어요 호호.
모든 걸 차치하고 좋아하는 동네에 좋아하는 가게가 항상 그 자리에 있다는 것은 참 축복받은 일이다. 사회생활을 하고서부터는 학교 다닐 때처럼 열심히 쏘다니거나 좋아하는 가게에 매주 간다는 것은 사치가 되어버렸다. 여유가 생겨 그 공간들이 떠올라 찾아보았을 때 지도에서 '폐업했거나 정보가 없는 장소입니다.'라는 문구를 마주한다던지, 안 간 지 1년도 더 된 시점에서 공간이 사라진다는 소식을 SNS에서 만나게 되었을 때는 아쉬움과 '왜 더 자주 가지 못했는가' 하는 약간의 죄책감까지 들곤 했다.
너무 좋아하는 것들에게 '나만 알고 싶은 가게', '나만 알고 싶은 가수'라는 표현을 붙이곤 하는데 진짜 나만 아는 가게이고 나만 아는 가수이면 아마 머지않아 망해서 나만 알고 싶었던 것조차 더 이상 할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 차라리 나에게 그만큼의 행복을 주었으니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리고 그 대상들도 더 잘 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뿐이다.
겨울에 꼭 먹어줘야 하는 핫초코.
그래서 나는 쇼콜라티끄가 앞으로도 많이 잘 되었으면 좋겠다. 너무 유명해져서 캐치테이블 예약을 해야지만 겨우 먹을 수 있는 곳이 되어도 좋으니. 아, 아무래도 혼자 운영하시는 매장이다 보니 몸이 망가지시면 안 되니까 그 정도면 또 너무 과할 것 같다. 그저 시즌 때만 되면 늘 예약이 그득해서 재고 걱정 없으셨으면 좋겠고, 평소에는 연희동에 찾아오는 사람들이라면 참새 방앗간처럼 한 두 알씩 꼭 입에 넣고 가는 집 정도로 소문이 나서 너무 바쁘지 않게, 그렇다고 심심하지도 않게 계속 그렇게 잘 되어서 계속 그 자리에 계셨으면 좋겠다. 무엇이 되었든 변하지 않고 나를 기다려주는 무언가가 하나쯤 있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