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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울무사 Oct 13. 2021

종전선언 좋다더니 극초음속미사일 날리는 북한

중국 전력난 활용해 석탄 금수 해제 노리는 북한의 책략들


아래 글은 <북바이북> 출판사에서 매년 11월 말에서 12월 초 출간하는 <한국의 논점>이라는 단행본에 기고한 글입니다. 매년 그 다음 해 년도를 제목에 붙이니 이번 책은 <2022 한국의 논점>이 되겠군요. 정치 경제 평화 불평등 기후위기 행복을 6개 대주제로 하여 다양한 소주제별로  각 분야의 전문가들의 기고가 빼곡이 실리니 이 책 한권이면  당대의 논점을 정리할 수 있지 않을까 싶네요. 책 소개도 할 겸 편집진의 양해를 받아 제 기고문을 아래에 게재합니다. 최근 북한이 보인 여러가지 모습을 어떤 맥락에서 읽어야 할지 짚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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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전선언과 북중관계 


김정일 위원장 시절 남북 정상회담이 두차례 열렸다. 2000년 6.15 남북정상회담과 2007년 10.4회담이다. 이 두차례 회담이 모두 북중관계와 깊이 연관돼 있었다는 점은 별로 조명되지 않았다. 그러나 실제로 6.15 남북 정상회담은 북중관계를 위한 협상의 지렛대로 활용됐고 10.4 회담은 그 당시 북한의 중국에 대한 좌절과 분노와 깊이 관련돼 있었다. 


2000년 6.15 회담을 두 주일 남겨둔 2000년 5월31일 김정일 위원장의 전격적인 중국 방문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당시 김위원장 방중은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8년 동안 소원했던 양국관계의 물꼬를 트기 위한 것이었다. 북한으로서는 중국으로부터 지원을 받을 일이 많았다. 고난의 행군을 거쳐 90년대 말부터 내부적으로 시장경제 실험을 준비하면서 이를 위한 종자돈의 확보가 절실했다. 아무리 소원한 관계가 됐어도 북이 거금의 종자돈을 부탁할 곳은 중국 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8년 만에 찾아가서 돈 좀 내놓으라고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6.15 남북 정상회담은 소원했던 북중관계를 일소하고 중국의 대북 지원 환경을 조성하는데 그 어느 것보다 효과적인 지렛대였다.  


10.4 합의 당시 북중관계는 최악이었다. 그 전 해인 2006년 초부터 북중간에 비자 발급을 둘러싼 감정싸움이 벌어졌고 그것이 2006년 7월의 대포동 미사일 발사와 10월9일의 1차 핵실험에도 영향을 미쳤다. 건강까지 나빠진 김정일 위원장에게 중국은 자신의 사후 자식들의 후사를 맡기기에는 믿을 수 없는 이웃이었다. 당시 10.4합의문에 ‘3국 또는 4국에 의한 종전선언’이라는 표현이 들어간 것도 김정일 위원장의 중국에 대한 분노와 불신감 때문이었다. 남북 정상간의 이같은 합의를 통해 북은 중국에 복수 겸 경고를 한 것이다.


남북관계와 북중관계를 교차시키는 북의 이같은 지정학 전략은 김정은 시대 북한에도 그대로 이어졌다. 김정일 시대는 그래도 남북관계가 메인이었고 북중관계는 종속적인 측면이 없지 않았다. 적어도 6.15 남북 정상회담 경우 그 한번으로 그치지 않고 금강산 관광, 개성공단 사업 등 활발한 남북 교류로 이어졌다. 10.4 합의 역시 이명박 정부가 망치지만 않았다면 그뒤 남북관계의 황금기를 열었을 것이다.


김정은 시대에는 주종이 바뀌었다. 남북관계와 북중관계 중 아무리 좋게 봐줘도 남북관계가 메인이라는 소리는 못하겠다. 남북관계는 그 순간의 감격이 지나고 나면 휘발되어 사라질 뿐이고, 북중관계에서 어떤 정책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서만 의미를 가질 뿐이었다. 


2018년 4.27 판문점 회담을 놓고 보자. 남북 두 정상이 손을 잡고 판문점 북쪽 지역을 넘어갔다 오고, ‘멀다고 하면 안되갔구나’라는 김정은 위원장의 함축적 명언 등이 있었지만 그 뒤 남은 게 없다. 그것은 당시의 남북관계가 북의 입장에서 메인이 아니고 조연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메인은 누구인가. 그것은 당연히 중국이다. 왜 중국인가? 북한 대외무역의 90%가 중국과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 외에 더 설명이 필요할까. 북한은 이미 중국과 한 몸으로 생활하는 중국 경제권이다. 


물론 안 그런 시절도 있었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를 거치며 남북경협과 북중경협이 50대 50으로 대등했던 시절도 있었다. 그때는 남북관계도 북한에게 메인 중 하나였다. 그러나 이명박 정권을 거치며 남북경협은 다 죽어 없어졌다. 그 몫이 고스란히 중국으로 넘어갔다.


남쪽은 이제 북에게 있으나 마나 한 존재일 뿐이고 중국은 없어서는 안되는 존재이다. 남쪽의 존재 의미는 북의 생사여탈권을 쥔 중국과의 협상에서 레버러지로서의 의미 정도이다.


4.27 판문점 회담은 그 전해인 2017년 11월 중국의 대북 경제제재와 뗄레야 뗄 수 없는 상관 관계이다. 2017년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은 여러 차례에 걸친 유엔안보리 대북 제재 결의를 낳았다. 그러나 그 유엔안보리 결의를 피부에 와 닿게 한 것은 그해 11월부터 시작된 중국의 대북 독자 제재였다. 북한 대외무역의 90%가 중국을 통해 이뤄지기 때문에 안보리 제재 역시 북중 경협을 차단하는데 맞춰졌다. 이는 안보리가 아무리 제재를 해도 중국이 협조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는 뜻이다. 반면에 중국이 안보리 제재를 받아들여 북한을 제재하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북에서는 비명 소리가 날 수 밖에 없다. 


바로 2017년 11월이 그런 상황이었다. 중국이 유엔 안보리 제재결의를 받아들여 북한을 틀어막기 시작한 것이다. 당시 중국은 북한을 압박하면 북측이 찾아와서 사정을 할 것으로 생각했다고 한다. 그러나 북은 다른 선택을 했다. 바로 남쪽을 택한 것이다. 2018년 2월 평창올림픽에 참가하고 4.27 남북 정상회담을 걸어놨다. 김정일 위원장이 마치 6.15 남북 정상회담을 걸어놓고 중국을 긴장시킨 뒤 그 두 주 전에 전격 방중했듯이, 김정은 위원장 역시 똑 같은 수법을 썼다. 4.27 회담을 걸어놓아 중국의 애를 태울만큼 태운 뒤 3월25일 전격적으로 방중한 것이다. 


당시 김정은 위원장의 최대 화두는 당연히 남북관계가 아니라 중국의 대북제재였다. 남북관계 없이는 살아도 대북제재가 계속 되는 상황에서는 살아남을 수 없다. 따라서 2018년 3월25일 김정은 중국 방문의 목적은 시진핑 주석과 담판해서 중국의 대북 제재를 완화시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중국으로서도 난감한 일이었다. 중국이 대북 제재를 완화하는 것은 곧 2017년 결의된 유엔안보리 제재를 위반하는 것이다. 트럼프 정부가 중국의 안보리 제재 위반에 대해 해당 기업이나 금융기관을 막론하고 세컨더리 보이콧으로 걸어 미국 금융망에서 퇴출시키겠다고 벼르는 판에 쉽지 않은 일이었다. 


2018년 내내 북한은 이 문제를 풀기 위해 매달렸지만 쉽지 않았다. 2018년 9.19 남북 정상회담 역시 본질은 같다. 원래 북한의 계획은 시진핑 주석을 9.9절에 평양에 초대해 극진히 대접하며 제재 해제를 다시 한번 당부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의 견제로 시진핑 주석이 방북을 포기해버리자 그 대신 문 대통령을 평양에 초청했다. 그리고는 시주석 대신 문대통령이 대북 제재 완화를 국제사회에 부탁하고 다니는 어색한 장면이 연출됐다.


돌이켜보면 북한의 지난 4년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바로 이것이다. 북의 목을 조여오는 2017년의 유엔 대북 제재로부터의 벗어나는 것. 그것으로부터 탈출을 위한 몸부림이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유엔 제재에서 벗어나는 것은 유엔 안보리 이사국의 결의가 없이는 불가능하다. 따라서 그것은 놔두고 실질적으로 유엔 제재가 행해지는 중국과의 관계를 통해 그것을 완화 또는 해제토록 하기위해 온갖 책략을 동원하고 거기에 필요하다면 그때그때 남북관계를 동원하는 식이었다.


트럼프 정부에 이어 바이든 정부가 들어선 지금도 그 패턴은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바이든 정부 들어 북한은 미중관계를 면밀히 분석하며 나름의 희망을 가졌던 것 같다. 바이든 정부 초기에 중국 측이 기대한 것처럼 미중관계가 완화될 것 같지도 않고 특히 3월17일 알래스카 회담이후 더욱 격화하자 미중 신냉전에 편승하면 되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미중관계가 악화돼 신냉전 상황이 되면 중국이 더 이상 2017년의 유엔 안보리 대북 제재에 얽매이지 않으리라는 기대를 가진 것이다. 그 전처럼 북중 경협을 통해 북한 경제가 돌아갈 수만 있다면 바이든 정부 4년간 미국이나 남한과 문을 걸어 잠근다 한들 북한으로서는 아쉬울 게 하나도 없다. 남한이나 미국과의 관계를 통해 그동안 북한이 먹고 산 게 아니기 때문이다.  지난 4월 중순 대규모 무력도발을 통해 중국의 대북지원을 받아내려 할 당시 북한의 속내는 이런 것이었다.


그러나 지난 4월은 중국이 오히려 미중 신냉전에 대한 각오가 안돼 있다는 것만 확인하고 끝났다. 따라서 이를 통한 안보리 대북제재의 무시와 북중 교역 회복의 꿈은 이뤄지지 않았다. 


북으로서는 새로운 길을 찾아야 했다. 우선 약속을 지키지 않은 중국에 대한 압박수단이 필요했다. 또 북이 필요로 하는 식량과 생필품 의료 기기 등에 대해 중국 이외의 대체 조달처가 필요했다. 역시 북이 중국에게 압박을 가하거나 교섭의 지렛대가 필요할 때 어김없이 남북관계가 등장한다는 사실이 이때 다시한번 확인됐다.


올해 4월27일을 계기로 한 남북 정상의 친서 교환을 토대로 7.27 남북 통신선 연결이 추진된 배경이다. 물 밑에서 이에 대한 논의가 진행될 무렵 김정은 총서기는 한국과 미국의 대북 지원 가능성에 대해 테스트를 해볼 필요를 느낀 듯 하다. 즉 한미의 대북 지원이 북중관계의 대체제가 될 수 있는가 여부다. 이와관련해서 6월15일 당 중앙위 전원회의에서 김정은 총서기가 북한의 식량난을 공개하며 어려움을 호소한 배경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당시 미국은 러시아의 라브로프 외무장관을 통해 북한에 계속 만나자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었다. 6.15 전원회의는 사실 그 다음날인 6.16 미러 정상회담을 의식해 소집한 행사다. 바이든-푸틴 회담이 성공적으로 끝난 다음날인 6월17일 김 총비서가 미국에 대해 “대화에도 대결에도 다 준비돼야 한다”며 사실상 대화에 방점을 찍는 발언을 한 사실을 상기하면 6월15일의 북한 식량난 공개는 한국과 미국에게 공개적으로 식량을 좀 지원해 달라고 의사를 타진한 것이나 진배없다.


4월에 있었던 중국의 약속 위반에 대해 화도 나고 자존심도 상한 상태서 중국을 대신해 한미가 가능한지 타진한 것이다. 그때 한국이나 미국이 다만 얼마라도 지원하겠다고 나섰다면 그뒤의 양상은 많이 바뀌었을 것이다.


그러나 역시 한미는 말 뿐이었다. 자존심 상해도 실제로 식량을 주는 곳은 그래도 중국 뿐이었다. 5월 말 10만톤 지원을 구두로 약속하고 미적거리다 7.27에 남북 통신선이 연결되자 앗 뜨거라 하고 7월말까지 후다닥 10만톤을 다 들여보냈다고 한다. 그 뒤로는 온갖 생색을 다 내며 밥값을 하라고 난리였다. 


남북통신선 연결 직후 속도 조절을 위한 김여정의 1차 담화(8.1) 2차담화(8.10) 그리고 9월11,12일의 순항 미사일 발사까지가 중국의 밥 값 요구에 대한 북의 대응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9월15일 달리는 열차에서 발사한 탄도 미사일과 그뒤의 극초음속 미사일인 화성 8호, 신형 반항공 미사일 발사 등은 10월10일 노동당 창당 기념일의 물품 조달을 위한 새로운 대중 협상용 무력도발이다. 


트럼프 정권 이래 바이든 정부까지 이어지는 미국의 대중 군사적 압박은 주로 남중국해와 대만해협을 중심으로 펼쳐지고 있다.  중국으로서는 이를 필사적으로 분산시켜야 한다. 북한의 무력도발은 그런 점에서 매우 요긴하다. 주한 미군이 남중국해나 대만해협으로 이동할 수 없게 막을 뿐 아니라 미국의 관심과 외교력을 한반도로 분산시켜 묶어놓는 효과가 있다. 당연히 북한에게 도발에 대한 댓가를 지불해야 한다. 


북한이 지금 필요로 하는 것은 백신과 평양종합병원 진단설비 외에도 지금의 경제난을 한방에 해결할 수 있는 그 무엇, 중국이 마음만 먹는다면 얼마든지 할 수 있다고 북한이 믿어온 바로 그 무엇이다.  바로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에 더이상 얽매이지 말고 대북제재를 좀 풀어달라는 것이다. 지금은 그 품목이 매우 구체화됐다.  그리고 그 품목은 지금 중국에게도 무엇보다 절실하게 필요한 것이다, 바로 북한산 석탄에 대한 금수조처를 풀어달라는 것이다.


중국이 지난해 10월 호주산 발전용 석탄을 수입금지한 이래 전력난에 봉착한 것은 세상이 다 아는 현실이다. 그중에서도 북한과 인접한 동북3성의 사정이 특히 긴박하다. 자칫하면 올해 겨울 1억명이 추위에 떨며 지내야 한다.  러시아나 몽골로부터 석탄 수입을 늘린다고 하지만 석탄과 같은 벌크 화물은 갑작스럽게 대체 수입선을 확보하기가 쉽지 않다.  


북한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유엔 제재가 있기 전인 지난 2016년 한해에만 북한산 무연탄이 2천만톤 중국에 수입돼 제련과 발전용으로 쓰였다. 2017년 8월의 안보리 결의 2371호로 석탄 철광석 납 수산물 노동력 수입이 금지된 뒤에도 지난해 7,8월까지는 밀수 형태로 수입이 이뤄지다 금년 들어서 거의 뚝 끊어지다시피 했다.  최근 석탄 품귀 현상으로 석탄가격이 금년 초에 비해 두배 이상 급등하자 그 4분의 1가격으로 북중 국경 지역에서 다시 밀수가 활발하게 이뤄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밀수로는 어디까지나 한계가 있다. 북이 원하는 것은 안보리 결의를 무시한 중국의 북한산 석탄 수입재개이다. 그것을 밀어붙이기 위해 북한이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이 동원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시진핑 주석에게 보내는 김정은 총비서의 친서에서부터 중국이 원하는 무력도발을 이미 여러 차례 강행했다. 중국에 모종의 압박을 가할 때마다 빠짐없이 등장하는 남북관계 카드까지 동원되고 있다. 


9월21일 문재인 대통령이 유엔에서 종전선언을 제안했는데 9월24일 북한 외무성 리태성을 통해 나타난 북의 첫 반응은 부정적이었다. 그러다 7시간 만에 김여정이 담화를 발표해 긍정적으로 입장이 바뀌더니 그 다음날에는 남북연락선 재개통에 남북연락사무소 재개설까지 언급하기에 이르렀다. 9월29일 김정은 총비서의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을 통해 연락선은 다시 이어졌고 상황에 따라서는 남북관계를 업그레이드하는 또다른 카드가 등장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럴 때 마다 정신줄을 놓아서는 안된다. 우리가 메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반드시 염두에 두고 북한의 의도를 살펴야 한다. 북한이 남북관계의 급수를 올리면 올릴수록 사실은 중국을 압박해 무엇인가를 관철하기 위한 것이라는 점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현 시기에 그것은 중국으로 하여금 유엔 안보리 제재를 무력화하고 북한산 석탄의 수입을 재개하도록 하는 것이다. 


국제 사회의 관점에는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북한은 중국만 결심하면 가능하다고 여전히 믿고 있다. 미중관계 악화나 중국의 석탄난 등을 감안할 때 절호의 기회를 맞고 있다고 여길만도 하다. 그러나 중국이 과연 그렇게 할 수 있을까? 


그것은 중국이 답해야 할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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