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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울무사 Jun 15. 2022

설리번과 양제츠 회동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

중간 결산을 할 때가 됐군요. 6월13일 룩셈부르크에서 만났다는 설리번 미국 백악관 안보담당 보좌관과 양제츠 중국 공산당 외교담당 정치국원의 회동 얘기입니다. 미중 양국의 내노라 하는 양대 책사가 회동한 뒤에는 한반도 정세의 물줄기가 바뀌는 광경을 보아온 입장에서는 이번 회동 역시 눈여겨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바야흐로 북한의 7차 핵실험이 눈 앞의 현실로 임박한 모양새였지요. 지난 6월6일자 미국무부 네드 프라이스 대변인 발언에는 긴박감이 물씬 묻어났습니다. "이것은 긴급 상황이다. 우리가 상당기간 지녀온 우려이기도 하다"라고 말했습니다.  라파엘 그로시 IAEA  사무총장 역시 "풍계리 핵실험장 갱도 하나가 재개방된 징후가 포착됐다"라고 밝히기도 했지요.  .


 한미 양국의 대응 역시 긴박감을 더했습니다. 6월7일, 북의 핵미사일 도발시 도발원점은 물론이고 지휘부까지 정밀폭격하기 위해 한미 양국이 전투기 20여대를 동원한 대규모 무력시위를 서해 상공에서 단행했습니다.


북한의 핵 미사일 도발이 계속될 경우 현재 괌 인근에서 훈련중인 미 항공모함 등 전략자산을 한반도 인근으로 진입시킬 가능성도 있다고 합니다. 


한반도 주변이 순식간에 2017년의 '화염과 분노' 시점으로 회귀하는 것 같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설리번-양제츠 회담을 왜 주목해야 할까요. 그것은 바로 북한의 도발 양태 때문입니다. 북한은 올해 1월5일부터 최근까지 거의 20여차례 가깝게 도발을 이어왔습니다.  그런데 그 양태는 3월9일 대선에서 윤석렬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기 이전과 이후로 나뉩니다. 3월9일 이전에도  북한이 미사일을 많이 쐈지만 대부분 단거리나 준중거리 미사일이었지요. 대선 직전인 3월5일 공중에서 폭발한 미사일은 ICBM급인 화성-17호로 추정됐는데 당시 북한은 정찰위성 시험이라고 둘러댔지요. 즉 3월9일 대선 이전에는 북의 미사일 사거리는 단거리 중거리 내지 준중거리, 그리고 ICBM급일 경우는 예전에 잘 써먹던 위성발사 실험이라고 둘러대는 식이었지요.


그런데 3월9일 이후는 갑자기 ICBM급 미사일 발사 훈련이 늘어납니다. 3월16일 실패했지만 화성17호 발사 시험, 3월24일 화성17호 또는 화성15호, 5월4일 화성15호, 5월25일 화성17호와 단거리 중거리 미사일 섞어쏘기 등 거의 거리낌 없이 ICBM을 쏘아온 것이지요. 그리고 ICBM급인 화성17호를 발사했다고 당당히 밝히기도 합니다.


단거리나 중거리 발사에 집중하던 북한이 장거리 미사일을 거리낌없이 발사하고 더군다나 7차 핵실험까지 곧 실행한다고 하는데 그 결정적인 차이는 무엇일까요?


바로 중국 입니다. 즉 3월9일 이전 북한의 미사일 발사는 중국의 동의여부가 확인되지 않은 상태서 북한이 가급적 조심스럽게  발사를 이어온 것이고 3월9일 이후는 최소한 중국의 동의하에, 좀더 적극적으로는 암묵적인 지지나 지원하에 이루진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어떻게 이런 판단이 가능한가. 그것은 바로 2017년 12월22일(뉴욕 현지시간) 이뤄진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 2397호 때문입니다. 이 2397호는 그해 11월29일 화성15 미사일 발사에 대응한 제재 결의였는데,  북한의 연간 원유공급 400만 배럴은 그대로 유지하돼 정제유는 년간 200만 배럴에서 50만 배럴로 1/4로 줄여버렸습니다. 그리고는 북한이 추가로 '핵실험'을 하거나 'ICBM(대륙간 사거리를 갖춘) 능력을 갖춘 탄도 미사일'을 발사 등 추가 도발을 할 경우 안보리가 대북 유류 공급을 추가로 제한하는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단서를 달았지요. 보통 '유류 트리거 조항'이라고 합니다. 


바로 이 결의안 때문에 북한은 그동안 단거리나 중거리까지는 몰라도 ICBM이나 핵실험은 엄두를 못냈지요. 1년에 정제유 50만 배럴이면 지금도 국내 수요에 턱없이 부족해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해 밀수를 하고 있는 판인데 여기서 더 줄어버리면 대책이 없는 거지요.


그런데 북한이 ICBM 발사나 핵실험을 할 방법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닙니다. 중국이나 러시아가 안보리 결의 과정에서 거부권을 행사해주면 가능합니다. 지난해 북한은 바이든 정부가 트럼프 정부 못지않은 대중 강경 태도를 보이자 이와관련해 여러차례 중국과 합을 맞춰보려 했었지요. 중국 내에서도 북한과 선을 대는 측에서는 북의 무력도발을 쓸모있는 카드로 여겼기 때문에 북한의 도발을 부추기기도 하고 했는데. 20차 당대회를 계기로 3연임과 장기집권에 나서려는 시진핑이 결정적인 순간에 몸을 사리는 바람에 북한과 중국 내 일부의 시도는 좌절하곤했지요. 


그리고 그 와중에 지난해 11월15일 바이든-시진핑간에 대만과 한반도 정세의 안정을 서로 맞교환한 신사협정이 체결됩니다.  미국이 대만해협에서 분란을 조성하지 않는 대신 중국도 북한의 도발을 지원하지 않겠다는 것이었지요. 당시 이 회담을 이끌어낸 게 이번처럼 설리번-양제츠였고 두사람이 지난해 10월 취리히에서 만난 것을 계기로 미중 정상회담으로까지 이어진 것입니다. 


미중 정상회담으로 벽에 부닥치자 당시 김정은 위원장이 다시 문 대통령과의 친서 교환을 통한 대남 카드로 중국을 압박하려 한 정황에 대해서 언급한 바 있지요. 사실 그때부터 3월9일의 대선 이전까지는 중국이 특별히 미국과의 합의를 깨고 북한의 도발을 지원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에 북한도 안보리 제재 2397호를 의식하며 도발을 해도 그 선을 넘지 않으려 했다고 할 것입니다.


그런데 3월9일 이후 북한이 ICBM을 거리낌없이 발사하고 핵실험을 준비하는 정황을 보면 뭔가 달라졌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북한이 저렇게 할 수 있다는 것은 그렇게 해도 유엔안보리가 2397호에 따른 유류 트리거 조항을 발동하지 못할거라는 확신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 얘기는 다시 말해 최근  우크라이나를 둘러싸고 서방과 맞서고 있는 러시아뿐 아니라 중국도 북한 편에 서서 미국의 유류 삭감 결의안을 막아줄 거라는 확신을 갖게 됐다는 것이고  실제로도 그랬지요. 


6월12일, 미국이 지난 3월24일 북한이 발사한 ICBM에 대응해 연간 허용 원유와 정제유를 처음에는 현행 보다 절반으로 줄이는 새결의안을 추진했는데 중러의 반대로 불발에 그치자, 다시 25%로 삭감하는 안을 냈으나 역시 불발에 그쳤습니다. 중러가 강력한 방어벽을 친 것이지요.


그렇다면 중국은 왜 3월9일 이후 태도가 바뀌었을까요. 그 이유는 곰곰히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그동안 여러차례 보수정권들이 집권해 대북정책을 펴는 것을 지켜봤는데 보수정권들이 진보정권 못지 않은  이념주의자들이라는 것을 느끼곤했지요. 정세 인식이나 정책판단이 현실의 상황에 근거하기 보다는 자신들의 선입견이나 보수적인 가치를 앞세우곤 하는 것 같았습니다. 


지난해 말에서 올해 초처럼 북중관계에 틈이 보일 때는 둘 사이를 갈라치기 하는 게 병법의 기본일 터인데 오히려 그 반대로 행동을 해 갈라진 틈을 메우는데 일조를 하더군요. 이명박 정권이 출범하던 2007년에도 북중관계가 최악이었는데 그때도 지금이나 비슷하게 양쪽 다를 적대시하거나 무시해 북중 관계가 급속하게 회복하는데 일조를 했지요. 데자뷔 또는 기시감이 들 정도입니다.


어쨌거나 미중 회담은 잘 된 것 같습니다. 잘 보시면 6월13일 설리번과 양제츠가 만나기 전에 6월10일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장관과 웨이펑허 중국 국방장관이 싱가포르에서 열리는 아시아안보회의(샹그릴라 대화)에서 이례적인 만남을 가졌습니다. 바이든 정부 출범 후 국방장관끼리 만난 것은 처음이라는군요. 여기서 오스틴 장관은 대만과 관련한 현상 변경을 시도할 생각이 없다고 약속하고 이에대해 중국 측 역시 '솔직하고 긍정적이었고 건설적이었다'고 평가를 합니다. 서로 얘기가 잘됐다는 것이지요. 사전에 군당국간 대화가 잘됐으니 설리반 양제츠 회담 역시 잘됐다고 할 수 있겠지요.


북한 역시 변화를 눈치 챘겠지요. 미중 국방장관 회담 하루 뒤인 6월11일, 8일~10일사이 개최했던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5차 전원회의 확대회의를 마치고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그 결과를 발표합니다.


김정은 위원장이 "자위권은 곧 국권수호문제"라며 "우리의 국권을 수호하는 데서는 한치도 양보하지 않을 우리당의 강대강 정면승부의 투쟁원칙을 재천명"했다고 나옵니다. 그러면서 꼴통 강경파인 리선권을 대남문제를 담당하는  당 통일전선부장에 앉히고 하노이 회담 실패 후 실각했던 최선희를 외무상으로 복귀시킵니다. 


사실 북한 외교부는 하노이 회담 실패의 직접적인 책임 보다는 그 이후 대미 관계를 좀더 진전시키자는 안을 냈다가 당과군의 강경파에게 철퇴를 맞은 것이었지요. 최선희의 복귀는 따라서 대미관계를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메시지라고 봅니다.


왜 이런 메시지가 필요한 건가? 중국이 그동안 자신들의 무력도발을 잘 써먹고는 미국과 또 다시 짝짜꿍을 하려하니 북한도 견제구가 필요한 거겠지요.  문재인 정부가 있을 때는 이럴 때 남북 카드를 쓰곤 했는데 지금은 그게 안되니 미국과 직접 할 수 있다는 의사표시를 하는 것이지요. 중국에 대한 압박이자 그동안 오매불망 만나서 대화하자고 해온 미국에게 '이제는 우리가 만나야할 시간'이란 사인을 쥤다고 봅니다.


남한에 보수정권이 등장해 대북 압박을 가하면 남한 정권을 건너 뛰고 미국과 직접거래하는 소위 '통미봉남'이 국룰이었지요.


북한의 움직임에 6월13일 박진 외교장관과 워싱턴에서 만난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이 아주 재밌는 반응을 보입니다. 이날 둘이 만나고 기자회견을 하는데 북한과의 대화와 외교를 유난히 강조하더랍니다. 대화라는 말은 11차례, 외교라는 말은 12차례 합쳐서 23차례 언급됐는데 그 중에 블링컨이 17차례를 했다는 군요. 그러면서 "북한 도발에 대한 방어력은 항시 갖춰두는 게 중요하지만 이것은 우리가 원하는 바가 아니며 우리의 목표도 의도도 아니다. 오히려 이와반대로 한반도 비핵화를 향한 모든 이견을 외교와 대화로 평화롭게 해결하고 싶다"라고 진심을 담아 얘기합니다.


그렇다면 북한 핵실험은 어떻게 될까요. 지금까지의 판단은 미중간의 대화가 잘 진행돼 미국이 대만 관련 행동을 자제하고 중국도 북한을 자제시킬 것이라는 데에 입각했다고 할 수 있지요. 그런데 언론에 언급된 단편적인 내용만 가지고 미중 협상의 전모를 판단하기에는 시기상조인 것도 사실입니다. 무엇보다 그뒤 북중간에 어떤 얘기가 오고갈지 그리고 북한이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도 좀더 지켜봐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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