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작가 포근 Mar 20. 2020

악몽의 원인

생리와 코로나의 콜라보 작품

간밤에 악몽을 꿨다.


꿈 속에서 학생인 나는 단체로 수학여행을 떠났는데, 다같이 머무는 숙소에서 전염병이 시작되었다. 어떤 아이는 식당에서 갑자기 휙 쓰러져 방호복을 입은 구급대원들이 와서 이송해가고,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그 안에는 피를 토하고 쓰러져있는 환자와 피가 묻은 손을 쳐다보고 있는 환자의 친구가 있었다. 아이들은 공포에 질려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고 방 안에 환자가 있으면 다시 뛰쳐나와 피할 곳을 찾았다. 그 긴박함과 두려움이 마치 영화 속 같다고 꿈 속의 나는 생각했다.


나 역시 우리 방으로 몸을 피했다. 그러더니 갑자기 방이 흔들렸다. (지금 생각해보니 개연성이 똥이다.) 모래인지 악성가스인지, 무언가 호흡을 힘들게 하고 시야를 흐리는 정체불명의 먼지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호흡이 점점 어려워지고 나는 죽음을 예감했다. 같은 방에 누워있던 한 친구 역시 죽음을 예감하고 사람의 온기를 찾아 내 팔짱을 끼고 누웠다. 숨이 가빠오고, 눈을 감았다. 악성 가스가 들어간 탓인지 속이 뜨거워지는 것 같았다. 그러더니 배 한 쪽이 누가 작정하고 꾹 찌르는 것처럼 아팠다. 온 신경이 그리 쏠리더니 으윽-하면서 꿈에서 깨어났다.


눈을 뜬 나는 안도했다. 꿈이었구나. 이 놈의 코로나 바이러스가 전염병에 관한 악몽까지 만들어냈구나. 어휴.

시간은 오전 여섯시. 아직 이른 시간이었다. 꿈이었음에 안도하며 새삼스레 죽음에 대해 생각했다. 죽음. 그리고 그것을 받아들이던 어린 나의 태도. 친구의 태도. 마지막에 내가 했던 생각 같은 것들. 온갖 잡생각이 드는데 갑자기 불길한 느낌이 느껴졌다.


아. 생리가 터졌구나.


몸이 천근만근 무거워 일어나기 싫거나, 아주 스트레스를 받게하는 꿈을 꾸거나, 눈을 뜨기는 했는데 몸은 잠을 깰 생각조차 없는 유독 힘든 그런 날. 그런 날이면 아니나 다를까 생리가 시작되었다. 매달 일주일씩 겪는 일인데도 이렇게 익숙해지지가 않는다. 생리통이 심하지 않은 축에 속하는 나도 이렇게 싫은데 생리통이 심한 이 세상의 여자분들은 어떻게 매달 이 고행을 겪어나가는 걸까.


생리는 터졌지만 해야할 일이 있어 꾸역꾸역 밖에 나갔다가 몇 시간이 채 되지 못하고 집에 돌아왔다. 이런 날엔 침대에 편히 누워 핫팩 한 장 배에 올려두고 딩굴거리는 게 최고다. 집에 오는 길에 30분 뒤 마스크 판매를 시작하는 약국이 있었고 금요일인 오늘은 95년생인 내가 마스크를 살 수 있는 날이었다. 하지만 차마 30분을 줄 서서 기다릴 자신이 없었다. 하필이면 오늘, 내가 마스크를 사야하는 날, 생리 첫 날이라니. ㅜㅜ 왠지 이것조차 나를 우울하게 했다.


이 우울함도 다 호르몬의 장난질이요- 생각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마스크가 다행히 집에 여분이 좀 있고, 내 차례는 다시 돌아온다. 괜찮다. 그래도 이렇게 글을 한 편 쓰고나니 마음이 좀 낫다. 글을 쓰며 코로나와 생리의 콜라보로 만들어진 아침의 악몽이 떠오른다. 내가 유일한 작가이자 감독이자 관객이었던 악몽 영화. 어쨌거나 그 지경까지 가지 않았음에 감사하며 남은 하루는 최고의 딩굴거림으로 생리 첫날의 피로함과 싸우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침대 속에서 딩굴거리다가.

매거진의 이전글 시네라리아 꽃을 길러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