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중한 무언가를 잃어버린 자의 슬픔
닫힌 왼쪽의 문. 몸이 겨우 들어갈 만큼만 열려있는 오른쪽의 문. 방안은 어둡고 왠지 모르게 문 바로 앞이 벽인 것처럼 보인다. 여자는 그곳으로 들어가려는 걸까 아니면 뒷걸음질쳐서 나오려는 걸까. 아니면 그저 이도저도 아닌 그 상태로 굳어버린 걸까. 바깥에서 햇살이 노란 빛으로 비추는데. 바깥은 노오란 여름인데. 사진은 왜인지 모르게 한없이 차다.
사실 나는 책을 읽을 때 책 표지를 유심히 보는 편은 아니다. 책 표지는 나에게 그저 간단한 인상을 남기는 역할일 뿐. "Don't judge a book by its cover."라는 영어 속담을 아이들에게 소개하는 영어쌤이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ㅎㅎ) 그런데 김애란 작가의 <바깥은 여름>은 표지에 눈이 자꾸 간다. 바깥은 여름이라는 얇은 파스텔 노랑의 글씨와 같은 색의 문 두 개. 그리고 같은 색의 원피스를 입은 한 여자. 그리고 따뜻한 색감의 하늘색 바탕. 따뜻하기도 하고 쓸쓸하기도 하고. 애처롭기도 하고 희망적이기도 하다.
<바깥은 여름>에 실린 모든 작품들은 상실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다섯살배기 아이를 잃어버린 부모의 슬픔. 아빠를 잃고 할머니에게 구박 받으며 데려온 개를 잃고 애써 외면하는 찬성이의 아픔. 8년의 연애에 마침표를 찍는 자의 공허함. 마지막 화자를 잃어버린 언어의 고독. 아버지의 외도에 느끼는 경멸감과 가장으로의 기대를 저버리게 된 자의 씁쓸함. 내 품 안에서 자라던 자식과의 뿌리 깊이 공유한 유대감을 조금씩 잃어가는 엄마의 불안. 남편과 사별한 아내가 외로움과 싸우는 처절함. 이런 것들이 각 작품들을 이끌어가고 있다.
김애란 작가는 어줍잖은 희망이나 단편적인 슬픔만을 보여주지 않는다. 주인공들은 상실을 숨겨두다 직면하기도 하고 미뤄두고 끝까지 외면하기도 한다. 상실감과 슬픔에 한없이 침잠하느냐하면 그렇지도 않다. 각자의 마음에 차오르는 욕구에 충실한 순간도 있다. 김애란 작가는 이별과 상실을 대면하는 이런 인간의 마음을 치밀하게 묘사한다. 바깥에 여름이 오는데 몸 안은 한기가 차오르는 그 느낌. 꽁꽁 언 음식을 전자레인지에 데웠을 때처럼, 겉은 녹아가는 것 같지만 중심은 여전히 꽁꽁 얼어 녹을 기미도 없이 딱딱하게 굳어있는 듯한 느낌. 이젠 여름인 것처럼, 다 녹아버린 것처럼 행동하다가다도 내 안에 차가움을 만지고는 스스로 흠짓 놀라게 되는 그것. 주인공들의 모습에서 여러 상실과 이별을 대면했던 나의 모습을 본다.
이별과 상실은 닫힌 문과 열린 문 사이에서 배회하는 그 모든 순간이 아닐까. 어렵게 어렵게 문을 닫고 나왔지만 차마 햇살을 견디지 못하는 것. 다른 방문을 열고 햇살을 피할 곳을 애처롭게 찾아보는 것. 그런데 그 안에서 또 다른 이별의 흔적을 발견하고 놀라 뒷걸음질 치는 것. 혹은 외면하는 것. 웃어넘기며 눈물을 훔치는 것. 그 문과 문 사이의 모든 순간이 이별이고 상실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희망적이지도, 절망적이지도 않은, 그냥 그렇게 조금은 병든채로 살아가게 되는 인간들의 모습. 누군가 상실의 아픔과 그 속에 놓인 인간의 발버둥을 직접 경험하고 있다면, 그 사람의 속을 쓰려질지언정 이 책을 권하고 싶다. 그 안에서 자신의 모습을 보고 주인공의 마음을 이해하며 스스로의 마음 역시 이해할 수 있도록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