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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랑랑이 Oct 27. 2015

#14 그 아이와의 끔찍한 동거

랑랑에게 중국이란...

   이 세상에서 내가 가장 싫어하는 동물을 꼽자면... 아마도 그것일 거다. 음... 그게 뭐냐면, 갈색으로 뒤덮인 몸통에 나 있는 징그러운 두드러기들, 언제 어디로 튈지 모르게 항상 공격 태세를 유지하고 있는 네 개의 숏 다리, 그것보다도 가장 끔찍한 건 나랑 마주쳤던 그 험악하고 흉악하고,어, 그리고 또 뭐가 있더라, 아무튼 그 무서운 눈동자가 아직도 눈앞에 선히 떠오른다.

   시간은 내 고등학교 3학년 시절로 거슬러 올라 간다. 참고로 내 고향 심양은 요녕성의 수도라 일류 고등학교가 다른 도시에 비해 많았다. 중국의 고등학교들은 대학 진학률과 교사, 설비 등 여러 가지 부분을 기준으로 등급이 매겨진다. 가장 높은 등급이 성중점(省重点) 학교다. 즉 요녕성에서 1류 고등학교란 의미다. 그 뒤로 시중점(市重点)학교, 즉 심양시에서 괜찮은 학교가 있다.(지금도 동일한지는 잘 모르겠지만...^^). 대학이란 유일한 외나무다리를 건너기 위해, 학부모들은 기를 쓰고 성중점 고등학교로 자식을 보내려고 한다. 물론 원한다고 해서 다 갈 수는 없는 일, 고등학교 진학 시험에서 성적 순으로 학생을 뽑게 된다. 좋은 고등학교에 붙어야, 명문대로 향한 첫걸음을 뗐다고 할 수 있다고들 한다. 그래서 학생들은 너도나도 성중점 고등학교란 나무에 오르려고 기를 쓴다. 뭐 지금도 별반 다를 게 없다고들 한다. 물론 나도 예외가 아니었다. 초등학교 6년, 중학교 3년 동안의 주입식 교육으로 이미 마비된 두뇌는 별다른 반항 없이, 나무에 오르려고 노력하고 또 노력하고 있었다.

   그래서 결국 성중점 고등학교에 붙은 나, 신나게 교문을 들어서는 첫날, 나는 꿈에도 상상을 못 했다. 그게 내 고등학교 삶의 고난의 시작이었단 걸. 이제 내 앞에 가로놓인 벽을 한번 세어볼까? 일단 1번). 학교와 집이 너무나도 멀다는 점. 버스를 타고 2시간 걸린다는 건 좀 너무 하지 않은가? 저녁에 야간자율학습까지 마치면 11시 넘어서 집에 들어가기 일쑤였다. 이건 정말 아니잖아~~ 2번). 나는 버스 공포증이 있다. 젠장, 왜 하필이면 버스 공포증일까? 그래서 나는 지금도 혼자서 버스를 잘 못 탄다. 3) 번 나는 자전거를 탈 줄 모른다. 버스를 못 탄다면 자전거라도 탈 줄 알아야 하지 않나? 그런데... 애석하게도 난 자전거도 탈 줄 몰랐다.

    그리하여 중학교 3학년 때 그 아름다웠던 여름방학, 남들이 여기저기 여행을 다니면서 마지막 자유를 만끽할 때, 난 자전거란 아이와 함께 썸 타기 시작했던 거다. 그리고 고등학교 1, 2학년 때 그럭저럭한 기술로 매일 자전거로 등하교를 했었다. 물론 아주 가끔, 나무에도 좀 부딪히고, 겨울엔 살얼음판과 키스도 하는 사고가 발생하긴 했지만, 그 정도면 완벽하게 버텨냈다고 할 수 있다. 그렇게 무난하게 3년을 보낼 줄 알았다. 하지만 3학년으로 진학하자, 나의 사랑하는 엄마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청천벽력 같은, 독단적인 결정을 아빠와 통보를 해 버렸다. 일명 "시간 아끼기 대작전", 길에서 허비하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아끼기 위해, 우린 결국 학교 근처로 이사를 가야 한다고!!

    이건 또 무슨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래? 대체 다들 내게 왜 이런 거야!!! 내가 꼭 이렇게 아늑하고 따뜻한 보금자리를 떠나 그 시골 바닥으로(내 생각엔 그러했다) 귀양 가야 하냐고! 이건 꿈일 거야! . (참고로 중국은 고등학교 때 보통 기숙사 자리가 많지 않기 때문에, 시골에서 온 학생들을 우선순위로 받는다. 도시에서 살았던 나는 결국 reject 당했다는...).


    여러 차례 혁명을 일으키려 시도했던 아빠와 나, 하지만 결국 불쌍한 혁명의 불씨는 "잔인한" 엄마의 발길질에 무참히 꺼져버렸다. 온몸의 심술 세포들이 눈을 뜨고 난리를 치는 통에, 난 결국 우리가 이사 갈 집도 보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게 나의 치명적인 실수였다는 게 그 후에 밝혀졌지만 말이다.) 결국 엄마는 또 한번 독단적으로 집 계약까지 마치고 보란 듯이 우리 앞에 집 열쇠를 내밀었다. 그렇게 우리 세 식구는 큰 집을 버리고 단체로 시골로 망명, 아니 이사를 해야만 했다.

    1년 동안 살아야 할 새 보금자리에 들어서는 순간, 나의 느낌을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그야말로 멘. 붕. 이었다. 허름하고 낡은 빌라, 그것도 1층이란다! 공포 영화에 꼭 나올법한 그런 집 말이다.  급하게 집을 찾다 보니 괜찮은 집이 없다는 게 엄마의 변명이었다. 그래, 참자! 1년만!

    1층에 총 두 집이 사는데, 우리 옆집엔 할머니와 할아버지 두 분이 사셨다. 엄마는 두 분 모두 착해 보인다고 했지만, 심술궂은 내 눈엔 그렇게 보일 리가 없었다. 나를 보며 가식적인 웃음을 날리는 할머니, "백설공주"에 나오는 마귀할멈처럼 보였다. 내게 먹으라고 주신 그 만두도 왠지 독이 들어있을 듯했다. 이상한 야채를 넣어서 만든 만두여서 맛이 굉장히 특이했던 걸로 기억난다. (그 후로 난 그런 만두를 먹어본 적이 없었다...)


    새로운 환경이 맘에 안 들어 입이 한발 나온 나, 그날 밤 분명 잠이 안 올 줄 알았다. 그런데 웬걸, 난 나 자신의 탁월한 적응 능력을 미처 몰랐다. 엄마의 말에 의하면 아주 그냥 술 처먹은 돼지처럼 잘도 잤다고 한다. 다음날, 그 다음날, 다다 다음날도 말이다. 이게 아닌데, 이렇게 빨리 적응해 버리면 내 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데 말이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드디어 사건이 터졌다.

    그날도 난 세상 모르고 나의 "백설공주와 마귀할멈"의 꿈을 꾸고 있었다. 그런데 인기척 소리에 눈을 번쩍 뜬 나, 어두컴컴한 밤에 침대 앞에서 서성이는 누군가의 모습이 어렴풋이 보였다. 혹시...마귀할멈?! 나는 잔뜩 긴장해서 숨도 제대로 못 쉬고 살금살금 움직이는 마귀할멈을 몰래 쳐다봤다. 달빛에 어렴풋이 보이는 실루엣, 마귀할멈이 이렇게 말랐었나?... 한 창 의아해하고 있는데, 갑자기 내게로 돌아선 마귀할멈, 그리고 한걸음 한걸음 내게로 다가오는 게 아닌가? 이제 드디어 날 죽이려나 봐! "아야!" 나의 돼지 멱따는 비명과 함께 다음 순간 정확하게 내 몸을 덮친 마귀할멈. 무서워서 눈을 꼭 감고 이불 속에서 벌벌 떠는 나, 그리고 당황한 마귀할멈, 다음 순간 갑자기 방안이 환해졌다.

"어, 엄마!" 뭐야, 마귀할멈이 아니고 엄마였어?!

"엄마, 지금 여기서 뭐 하는 거..."

"쉿!"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엄마가 조용히 손짓으로 내 발밑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그리고 영문도 모른 채 엄마가 가리키는 그 곳에 눈을 돌린 순간!!! 할렐루야!, 난 못 볼 꼴을 봤다!!!

    글쎄 내 발밑에 주먹만 한 무언가가 자리를 잡고 앉아, 눈알을 데굴데굴 굴리면서 나를 쳐다보고 있는 게 아닌가? 이게 뭐지? 내가 잘못 봤나? 그게, 그게, 개구리도 아닌, 두. 꺼. 비였다! "엄마야!" 나의 2차 비명과 함께 시작된 두꺼비와 나, 엄마 세 사람 , 아니 2인 1곤충 사이의 추격전. 결국 용맹무쌍 우리 엄마는 맨손으로, 정확히 말하자면 휴지로 그 끔찍한 아이를 손으로 잡아채고는 일말의 미련 없이 창밖으로 훌 던져버렸다. 하느님, 우리 엄마와 공범인 저의 죄를 용서하소서!

    후에야 알았지만, 시골에서 사시던 옆집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낡은 빌라에 쥐가 있다고, 두꺼비를 몇 마리 잡아서 집안에 두었다고 한다. 두꺼비가 알아서 쥐를 잡는다나... 헐... 그 후 할머니는 우리에게 몹시 미안해하셨는지, 나를 볼 때마다 맛있는 걸 쥐어주시곤 하셨다. 하지만 이미 상처받을 대로 받은 내 마음은 한동안 "마귀할멈"을 용서하지 못 했다. 그리고 몇 주 후, 결국 다른 데로 이사 가기로 한 우리.

    그 낡은 빌라에서 살았던 시간들, 내겐 지금까지도 잘 잊히지 않는다. 이미 어엿한 성인이 되어있는 지금, 그때의 무서웠던 느낌은 어느새 사라지고, 대신 힘들었던 고3 시절을 버텨낼 수 있었던 비타민 같은 에피소드로 기억되고 있다. 그리고 가끔은 끔찍했던 그 아이가 생각이 날 때도 있었다.


꺼비야,

그렇게 자유낙하 후 아직도 이 세상에 살아있을지 모르겠다. 네겐 정말 미안하지만, 그때 넌 너무 무서웠어!

우리가 다른 곳에서 다른 방식으로 만났더라면 이런 악연이 아니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한때 힘들었던 내 청춘 시절, 너와의 "끔찍한" 추억이 있어서 나쁘진 않았어! 그리 즐거운 추억은 아니었지만...우리 다신 보지 말자!^^ 그냥 서로의 추억으로 남는 걸로^^


작의 :

숨이 턱턱 막히는 고3 수능생들의 힘겨운 모습을 보면서, 랑랑이도 가끔 그때 그 시절이 생각 나군 해요. 그래서 오늘은 랑랑이의 고3 때 추억을 한번 들춰냈어요. 그때 어린 마음이 감당하기엔 너무 힘들었던 시간들이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유치하기도 하고, 즐거웠기도 한 나만의 소중한 시간들이었던 것 같네요.

P.S: 오늘은 좀 코믹 스릴러로 갔어요! ㅋㅋㅋ 그런데 랑랑이는 역시나... 스릴러랑은 안 어울려요 ...그렇죠? ㅋㅋㅋ


이미지 출처 : 바이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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