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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랑랑이 Dec 02. 2015

#3. 계획되어 있는, 우연한 만남

아쓰(阿肆)의 예모해후(预谋邂逅)

"나는 인민광장에서 치킨을 먹는다"로 사랑스러운 치킨소녀로 불리며 일약 스타덤에 오른 소녀 가수가 있어요. 바로 "아쓰"인데요. 지난번에 랑랑이는 대표곡 "나는 인민광장에서 치킨을 먹는다"를 소개 해 드렸는데요, 오늘은 그녀의 다른 곡을 하나 올려봅니다.


"예모해후"? 우연한 만남...알고 보면 우연이 아니었다?


인디 뮤지션 아쓰, 언제봐도 그녀가 가사는 재치있고 공감이 가는 것 같아요. "예모해후", 계획된, 우연한 만남, 노래 제목부터 너무 맘에 드네요.

예모해후

预谋 : [yùmóu]   사전 모의.

邂逅 :  [xiè hòu]  우연한 만남


사실 예모(预谋)는 부정적인 의미를 가진 단어인데요 보통 나쁜일을 계획하거나 꾸밀 때 많이 사용한답니다. 예를 들어 预谋造反 : 반역을 꾀하다. 아쓰가 제목에서 이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순수한 소녀가 짝사랑하는 소년과의 우연한 만남의 기회를 만들기 위해 잔머리를 굴리면서 고군분투하는 모습이 그려져, 싫지가 않고 오히려 사랑스럽다(?)는 느낌이 들어요. 그만큼 소년에 대한 사랑이 간절했다는 걸 보여주기도 하고요. 제목이 정말 신의 한수였다는 느낌이 들어요.


그렇다면 이 곡에 숨겨둔 동화같은 이야기, 함께 들어볼까요?



그 날 아침, 왠지 분위기가 평소와 달리 수상했다. 종착역에 도착한 버스안엔 기사 아저씨와 매표원 언니를 제외하고 그와 나, 두사람밖에 없었다. 부랴부랴 영문 단어 학습장으로도 위장한 빈 공책을 가방안에 쑤셔넣는데, 갑자기 뒤에서 발걸음 소리가 천천히 들려온다. 그리고 내 앞에 뚝 멈춰선 새하얀 나이키 운동화, 내가 반응도 하기 전에 그 아이가 먼저 말을 걸어왔다. "저기..."


고등학교 때 내가 몰래 짝사랑했던 옆 반 남학생이 있었다. 그를 만나기 전 내 하루 일과는 수업, 그리고 수업외 졸기 였지만, 그를 좋아하게 되면서 하나가 더 늘었다. 그와의 우연한 만남을 기다리는 것, 아니, 계획하는 것이다.


나보다 집이 먼 그 아이는 마침 나와 같은 버스를 타고 등하교를 한다. 그래서 매일 아침 내가 제일 먼저 하는 일은 바로 아침 일찍 정류장으로 나와 버스를 기다리는 것. 버스가 올 때마다 두꺼운 뿔테안경에 100%  집중하며 그가 탔나 안 탔나 스캔을 해야만 했다. 그러다 그의 모습이 보이면 번개같이 버스에 올라탔다. 물론 대부분 경우는 나의 이 망할 시력때문에 버스에 타고나서야 사람을 잘못 봤단 는걸 알게 되곤 했지만...하교길에는 더 가관이었다. 버스 정류장 바로 맞은켠 길거리에 자리 잡은 노점안에 죽 치고 앉아 그를 기다리곤 했다. 그러다 익숙한 그의 모습이 보이면 손에 쥐고 있던 반쪽짜리 양꼬치와 닭똥집을 얼른 삼키고 죽기내기로 버스에 올라탔다.


언젠가는 그가 내 뒤통수를 알아볼거라 믿었다. 신사처럼 내게 다가와 "영어 숙제 한거 좀 빌려줄래?" 라고 말 거는 모습을 수없이 상상해 봤다. 그럼 나는 아주 새침하게 "대신 수학숙제 답안 좀 보여줘"라고 해야지. 그러면서 점점 친해지는거야! 하지만 현실은...아무도 내게 와서 영어 숙제 답안지 빌려달라고 하지 않았다는 것.

운동장에 모여 국민체조를 할 때 새로 자른 그 아이의 헤어스타일이 보고 싶어, 일부러 다른 친구랑 자리를 바꾸기도 했다. 합동 체육시간에도 나는 가만 있질 않았다. 여학생들이 화단주위에 모여앉아 종알종알 수다를 떨고 있을 때, 나는 농구장 옆에 눈에 띄는 위치에 자리 잡고 서서는 몸 굽히기,  허리 돌리기, 그리고 제기 차기 등 별별 생쇼를 다 했다. 속으론 농구공이 제발 내 머리위로 날아왔으면 하고 수없이 기도를 했다. 그러면 그 아이는 공에 맞은 나를 업고 멋있게 의무실로 향하겠지. 하지만 현실은...아무도 내게 공을 던지지 않았다는 것. 나는 쓰러질 기회도 잃어버리고 셈이다.


한때 고백편지까지 써놓고 줄까말까 백번도 넘게 고민 하다 결국 포기했다. 그 아이의 입에서 No라는 단어가 나오는 순간, 내 모든 기대와 아름다운 꿈과 풋풋한 사랑이 모두 산산조각이 날 것만 같았으니까.


그래서 나는 그냥 하던대로 소심하게 숨어서 우리의 운명적인 만남을 위한 작전을 끊임없이 짜고 또 짜봤다. 폭우가 쏟아지는 밤에 일부러 우산 없이 미친 여자처럼 그 아이 옆을 지나가는 건 어떨까? 그럼 착한 걔는 분명히 비 맞는 내가 불쌍해서 집까지 데려다 줄거야! 하지만 현실은... 나 혼자 비만 쫄딱 맞고 1주일동안 시름시름 앓았다든 것. 그렇다면 그가 자주 들리는 만화가게에 죽치고 앉아있는 것은 어떨까? 그 아이의 옆자리에 딱 붙어 앉아 밀크 티를 마시다가, 계산할 때 지갑을 잃어버린 척 하는 거야! 그럼 착한 걔는 분명히 나 대신 음료수 값을 내주겠지! 하지만 현실은...그 날 만화가게에 나타나지도 않은 얄미운 녀석. 설상가상으로 그 날 밀크 티를 너무 많이 마신 나는 그대로 병원으로 직행했다는 것.


내 교묘한 작전들은 번번이 물거품으로 돌아갔지만, 포기하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도전을 하는 나. 그 아이도 나에 대한 호감이 있다면 이런 잦은 만남을 운명이라 생각하겠지, 혹은 나 같은건 안중에도 없으니 내가 보이든 안 보이든 별 신경 안 쓸 수도 있고.


시간은 다시 그 날 버스안, 난생처음 그 아이가 내게 "저기..."라고 말 거는 순간으로 돌아간다.

"저기..."

그 한마디때문에 머릿속이 하얗게 되 버린 나. 심장은 이미 내 통제에서 벗어나 수시로 튀어나올 준비를 하고 있었고, 목은 굳은채로 바보처럼 하얀 나이키 운동화를 향해 묵례만 올리고 있었다.  3초동안 멘붕상태에 빠져있다 어디서 힘이 났는지 버스밖으로 냅다 뛰어내린 나. 아니, 정확하 말하자면 날아 내렸다. 가방 지퍼도 채 올리지 못한채,  뒤도 안 보고 교문쪽으로 달렸다. 안 봐도 비디오다, 그 순간 내 얼굴은 저 개코원숭이 엉덩이보다도 더 빨갛게 보였을거다.


교실에 들어선 후 자리에 털썩 주저앉은 나.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들었지만 나는 스스로 이렇게 위로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 잘 했어. 이제 곧 수능인데...날 좋아한다고 고백하면 난 더이상 공부에 집중이 안될거야, 결국 수능에도 떨어질거고. 날 싫어한다고 하면 난 또 상처 받아서...결국 또 수능에서 떨어지겠지. 그래, 그 뒷 말을 안 듣고 나온게 진짜 천만다행이야!"


그리고, 그날 이후, 그 아이는 내 삶에서 소리없이 사라졌다. 버스역에서도, 농구장에서도 그 어디에도 더이상 그 아이를 찾을 수가 없게 되었다. 내게 처음 말 걸었던 그 날, 그 아이에겐 마지막 수업날이었다. 네델란드로 유학을 갔단다.


그 후 나는 원했던 대학에 붙었고, 무사히 졸업도 하고, 직장인으로 살다가 결국 그만두고...나도 모르는 사이 어느덧 이렇게 "치킨소녀 아쓰"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어느날, 내 위챗계정으로 이상한 메일 한통이 날아왔다. 열어보니 이렇게 써있었다. "사실 그날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은 : "저기, 나 이제 떠나!"였어." 설마...하는 마음으로 발신자 홈페이지로 들어가보니, 위치가...오랫동안 잊혀져있던 그 나라, 네델란드 암스테르담으로 떡하니 찍혀있었다. 그리고 홈페이지의 가장 최근 블로그에는 이런 글이 적혀있었다. " 무심코 지나쳐버린 그 조각들 하나 하나, 모두 네가 계획했던 우연한 만남이라는 걸, 나처럼 이렇게 스마트한 사람이 모를리가 있겠니? "


나는 순간 얼 빠진 사람마냥 멍해 있었다. 그동안 살면서 가끔 추억속으로부터 튀오나오곤 했던 그 한마디 "저기...", 그 끊겼던 한마디가 이렇게 생각지도 못한 방식으로 주인과 다시 만나게 되었다.


"저기, 나 이제 떠나!"


제대로 만난적도 없는 우리사이, 이별을 운운하기엔 너무 사치이지 않은가? 그날 내가 당황해서 도망가지 않았다면, 지금의 나는 많이 달라져있을까?


이틀 후, 또 한통의 메일을 받은 나. "궁금하지 않아? 그날 내가 왜 네게 작별 인사를 하려 했는지."

이 한마디때문에 그 동안 마음속 깊은 곳에 꽁꽁 숨겨두었던, 영영 답을 못 받을줄 알았던 그 질문이 또 한번 시간의 틈새를 비집고 나와 나를 괴롭혔다.


"그 아이는 과연 날 좋아했을까?"


그리고 결국 나는 이렇게 회신했다. "나처럼 이렇게 스마트한 사람이, 모를리가 없잖아?"

엔터 키를 누르며 이 짧은 한마디를 날려보내는 순간, 오랫동안 내 마음속 깊이 쌓여있었던 응어리들도 함께 사르르 녹아버렸다.


살면서 놓쳤던 수많은 일과 사람들, 그런 완벽하지 않았던 경험들이 오늘의 나를 만들어줬다.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마음속에 쌓인 응어리들을 자신의 힘으로 스스로 풀어낼 수있다면, 모두가 나처럼 굳은 믿음이 생길거다 : 그 아이는 나를 좋아한다고. 상상속의 긍정이 바로, 나만의 소심한 낭만이니까.


어떤가요? 이게 바로 "예모해후" 뒤에 숨겨진 슬픈 듯 슬프지 않은, 슬픈것 같은 ...그런 사랑에 대한 이야기예요. 아쓰 본인의 이야기일 수도 있겠지만, 사실 우리 모두가 한번쯤 겪어봤을 만한 평범한 이야기이기도 하죠. 그래서인지 더 공감이 가고 감동이 와닿는 것 같아요. 이야기를 읽고 나서 다시 노래를 들으시면 또 새로운 느낌이실거에요. ^^


제목 : 예모해후(预谋邂逅) (계획된, 우연한 만남)
작곡:아쓰(阿肆)
작사:아쓰(阿肆)

발행 : 2013.7.25

앨범 : "예모해후"

작곡:아쓰(阿肆)
작사:아쓰(阿肆)

노래 : 아쓰(阿肆)

번역 : 랑랑이


已经习惯
这样不被注意的存在
在人群中假装冷淡
在角落里独自傻笑狂欢


已经习惯
放弃对缘分的期盼
指靠老天
不如自己套牢 噢 另一半

苦思冥想地盘算
怎样才最自然
最恰到好处的安排

或许在
某个大雨的夜晚
路过你身边不打伞
也许你会因为不忍心看我淋湿而与我为伴

或许在
你最常出没的咖啡馆
喝一个下午的蓝山
直到你出现假装我没带钱然后只好 让你买单

已经习惯
这种啼笑皆非的孤单
喜欢我的人我不喜欢
我喜欢的人却总在彼岸


已经习惯
放弃对缘分的期盼
指靠老天
不如自己勇敢找出答案

苦思冥想地盘算
怎样才最自然
最恰到好处的安排

或许在
某个大雨的夜晚
路过你身边不打伞
也许你会因为不忍心看我淋湿而与我为伴


或许在
你最常出没的咖啡馆
喝一个下午的蓝山
直到你出现假装我没带钱然后只好 让你买单

这不经意的片段  是我预谋的偶然
这幻想中的乐观  是我内向的浪漫


我多想在
某个大雨的夜晚
路过你身边不打伞
也许你会因为不忍心看我淋湿而与我为伴


或许在
你最常出没的咖啡馆
喝一个下午的蓝山
直到你出现假装我没带钱然后只好 让你买单


至少不会遗憾
也不会让你看出我的破绽


이미 익숙 해 진 걸.

아무도 신경 안 쓰는 존재로 살아가는것 말이야.

사람들속에선 냉담한척 굴다가,

구석에 가서는 혼자 바보처럼 웃고 떠드는 것도 말이야.


이미 익숙해 진 걸.

인연에 대한 기대를 포기하는 것 말이야.

하늘에 기대는것보단

차라리 내 힘으로 내 반쪽을 꽉 잡는 게 더 낫잖아.


골똘히 생각해봤어,

가장 자연스럽고,

좋은 방법이 뭔지.


어쩌면

폭우 쏟아지는 어느날 밤,

우산 없이 네 옆을 지나갈 때

넌 내가 비 맞는 꼴을 차마 볼수 없어, 옆에 있어줄 지도 모르잖아.


어쩌면

네가 가장 자주 가는 커피숍에서

오후 내내 죽치고 앉아 블루 마운틴을 마실 때

네가 짠하고 나타나 돈 없는 척 하는 날 대신해서 계산해줄지도 모르잖아.


이미 익숙해 진 걸.

이런 말도 안되는 외로움에 말이야.

날 좋아하는 사람은 내가 싫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늘 멀리 떨어져있잖아.  

(彼岸:강의 건너편/ 의역 : 멀리 떨어져있다.)


이미 익숙해 진 걸.

인연에 대한 기대를 포기하는 것 말이야.

하늘에 기대는것보단

차라리 내 힘으로 내 반쪽을 꽉 잡는 게 더 낫잖아.


골똘히 생각해봤어,

가장 자연스럽고,

좋은 방법이 뭔지.


어쩌면

폭우 쏟아지는 어느날 밤,

우산 없이 네 옆을 지나갈 때

넌 내가 비 맞는 꼴을 차마 볼수 없어, 옆에 있어줄 지도 모르잖아.


어쩌면

네가 가장 자주 가는 커피숍에서

오후 내내 죽치고 앉아 블루 마운틴을 마실 때

네가 짠하고 나타나 돈 없는 척 하는 날 대신해서 계산해줄지도 모르잖아.


무심코 지나친 이 조각들이, 모두 내가  계획한 우연한 만남이야.

이 상상속의 긍정은, 내 소심한 낭만이야.


폭우 쏟아지는 어느날 밤,

우산 없이 네 옆을 지나갈 때

넌 내가 비 맞는 꼴을 차마 볼수 없어, 옆에 있어줄 지도 모르잖아.


어쩌면

네가 가장 자주 가는 커피숍에서

오후 내내 죽치고 앉아 블루 마운틴을 마실 때

네가 짠하고 나타나 돈 없는 척 하는 날 대신해서 계산해줄지도 모르잖아.


최소한 섭섭해하진 않겠지.

네게 들키지도 않겠지.


 "예모해후" 뮤직 비디오~

노래 들으면서 갑자기 떠오르는 신이 있는데요, "응팔"에서 신발끈을 묶고 풀기를 반복하면서 혜리를 기다리는 류준열...그 장면이 생각나네요.^^


아쓰의 다른 곡을 듣고 싶다면:

http://blog.naver.com/ranrandambee/220432290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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