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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랑랑이 Dec 24. 2015

#16 내 안에 장소한이 있다...?!

랑랑에게 중국이란...

나는 여행 갈 때마다 항상 빼먹지 않고 챙기는 게 있다. 바로, 아주 뻔하지만... 책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나는 약간의 활자 중독증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언제, 어디서든 글자만 보이면 읽지 않으면 배길 수 없는... 심지어 화장실에서 볼일 볼 때도 읽을게 없으면, 샴푸 병에 적혀있는 빼곡한 글씨들, 예컨대 사용 설명서나 성분, 주의사항까지 놓치지 않고 꼼꼼히 읽고 또 읽는다. 이런 습관이 대체 어디서 나온 건지는 잘 모르겠다. 엄마 아빠는 다 정상이신데, 이리도 비정상인 딸을 낳았으니... 유전자 돌연변이인가?!


이미지 출처 : 네이버

그래서 이번 여행을 떠날 때도 잊지 않고 책을 챙겼다. 조금 촉박한 상황에서이지만 말이다.  얼마 전 통 크게 열몇 권의 중국 원서를 한꺼번에 직구했다. 그 이유는 일단 불안함이라고 해두자. 평소에 중국어를 쓸 일이 없으니 불안해할 수밖에... 어느 날 부모님과 통화하는데 딸기란 단어가 중국어로 뭐였는지 갑자기 떠오르지 않아 멘붕이 왔었던 기억이 난다. 치매 초기 증상인지, 건망증인지는 모르겠지만 뭔가 대책이 필요한 건 틀림없다. 그래서 한동안 내게서 외면받았던 중국 원서들을 다시 펼쳐보기로 했다.  출발 직전, 급하게 새로 산 책 무더기 속에서 대충 한 권을 꺼내들고는 가방 속에 집어넣었다. 솔직히 무슨 책인지도 몰랐다. 그러다 비행기에서 한숨 푹 자고 나니 비로소 가방 속에 쑤셔 넣었던 책이 생각 나서 부랴부랴 꺼내 들었는데... 눈앞에 펼쳐진 책 표지, "我这辈子有过你"(내 생애 그대가 있었다)라고 쓰여있었다.  아하, 이 책이었군! 언제 적 읽었던 책이었더라? 오랜만에 다시 보니 이렇게 반가울 줄이야.  그러면서 머릿속에 무의식적으로 스쳐 지나가는 이름 - 장.소.한.  한때 사랑의 성경책으로 떠받들어 읽었던 그녀의 작품들이 주마등처럼 눈앞을 스쳐갔다. 철없던 시절, 내 안에 장소한이 있다고 엄청 허세를 부렸던 시간들이 있지 않았던가?

어릴 때부터 나는 책에 절어있었던 것 같다. 그건 아마도 나의 존경스러운 이모, 다시 말하면 우리 엄마의 언니 덕분이었던 것 같다. 초등학교 다닐 때 내가 살았던 동네 재개발 때문에, 갑자기 오갈 데 없는 신세가 될뻔한 시절이 있었다. 그때 잠깐 이모네 집 뒷방에 얹혀살았던 우리 가족. 지금 다시 그렇게 살라고 하면 죽어도 못하겠지만, 그때의 나에겐 더없이 행복하고 즐거웠던 시간으로 기억되고 있다. 이모네 집에 들어서면 가장 눈에 띄는 게 바로 한쪽 벽을 차지했던 커다란 책장이었다. 그 속엔 내가 여태껏 보지도 듣지도 못 했던 책들이 얌전히 숨 쉬고 있었다. 나를 말똥말똥 쳐다보면서  "어서 와!"하고 유혹하면서 말이다.

그렇게 멋도 모르고 이모와 함께 시작한 독서 생활. 나는 내가 독서하고 있다는 걸 동네방네 다 알리고 싶었을거다. 그렇지 않고선 그렇게 소리를 꽥꽥 지르면서 책을 읽을 수가 없다.^^  책만 펼쳐들면 주위에 사람이 있든 없든 나만의 세계에 빠져서 계속 중얼중얼 댔다. 이모는 그런 무식한 내게 우아한 독서의 매너기 뭔지 가르쳐주셨다. 독서할 땐 소리 내어 읽는 것보단 마음으로 읽어보라고. 그래야 작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을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하셨다.  그렇게 시작된 나의 묵언수행.


불면증에 시달렸던 이모, 한밤중에도 이모 방에 불이 켜져 있을 때가 많았다. 그런 이모와 함께 나는 뒷방에 앉아, 조용하게 나만의 세계여행을 하곤 했다.  "몽테크리스토 백작",  "적과 흑", "안나 카레니나" "전쟁과 평화", "레미제라블"... 아마도 그때의 난 무슨 의미인지 정확히 알지도 못하면서 무작정 읽기만 했을거다.


그렇게 독서에 점점 중독되면서 어느덧 내게도 책에 대한 욕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한 푼 두 푼 모은 용돈들을, 책 사는 데에 탈탈 털었던 나. 나의 소중한 돼지 저금통을 들고 처음으로 서점에 들어섰을 때, 나를 바라보았던 서점 이모들의 눈빛이 아직도 눈앞에 생생하다.  지금이라면 창피해서 죽어도 그런 짓을 못할 법 한데 말이다. 내 저금 통안의 모든 돈을 다 쏟아부어 사치스럽게 책을 3권이나 샀던 기억이 든다. 꼬질꼬질한 잔돈들을 참을성 있게 세던 서점 이모의 모습, 지금 생각해도 너무 고마웠던 분이었다. 정확히 얼마를 냈는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 그땐 확실히 책이 그리 비싸지 않았던 것 같다. 그날 나는 그 돈으로 오스트로프스키의  "강철은 어떻게 단련되었는가"란 책을 샀다.


시험기간이 닥칠 때면 사촌 오빠와 함께 머리 굴리며 어른들을 눈속임 해왔다. 사촌 오빠는 책상 앞에 앉아 무협소설을, 나는 소설책을 읽었다. 어른들의 인기척이 나면 바로 기침으로 서로에게 신호를 줬다. 물론 대부분 경우는 허둥지둥 책을 숨기기도 전에 어른들에게 발각되긴 했지만... 그럴 때마다 나이 많은 사촌 오빠가 항상 희생양으로 전락되기 일쑤였다. 이모한테 엄청 두들겨맞았던 불쌍한 오빠, 하지만 슬픈 기억도 잠시. 얼마 못가 다시 버릇이 도지곤 했던 우리.

중고등학교에 들어서자 이모의 책장, 나의 저금통만으로 내 욕심을 채우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읽어도 읽어도 항상 책 앞에 선 굶주렸던 나. 그렇게 시작된 친구들과의 물물교환 작전. 그때까지만 해도 주위엔 명작 소설들을 읽는 친구가 많지 않았다. 나는 이모의 책을 몰래 빌려서 친구들의 책과 바꿔치기를 하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한테서 받은 한 권의 얇은 서적 : "面包树上的女人"(빵나무 위의 여인). 어라? 책 제목이 너무 귀여운데? 그리고 알게 된 장소한 이란 이름, 홍콩의 여류 작가란다. 그 시기 나는 장소한(张小娴) 말고도 많은 여류 작가들을 알게 되었다. 싼마오(三毛), 역서(亦舒) 그리고 경요(琼瑶) 등등...


그중에서도 특별히 내 시선을 끌었던 장소한의 작품들. 대개 심플하면서도 단순한 사랑 이야기를 담아서인지 가볍게 읽기 편했다. 한창 꽃다운 나이에 사랑이란 주제는 매력적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장소한의 작품들을 보면 주인공들이 대부분 여자다. 그래서인지 같은 여자로서 더욱더 공감이 갔을지도 모른다. 그녀의 작품 속 사랑을 보면, 대부분 완벽하지 않고 뭔가 2% 부족했다. 특히 새드 엔딩으로 끝난 작품들이 적지 않았다. 완벽한 사랑을 꿈꾸던 나에겐 실로 적잖은 충격이긴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작품을 찾을 수밖에 없었던 건, 아마도 섬세하면서도 담백한 그녀의 문체 때문이었을 거다. 거추장스러운 미사여구를 치우고 직설적이면서도 담담하게 내용을 쏟아내는, 가끔은 너무 건성으로 쓴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평범하게 느껴지기도 하다. 이런 장소한의 문체를 두고 논란이 일기도 했었다. 너무 밋밋하고 평범한 것 아니냐고 말이다. 그러나 부정할 수 없는 한 가지, 사랑이란 주제에 대한 그녀의 날카로운 관찰과 독특한 시각은 작품에 고스란히 드러나있었다는 것. 그렇게 그녀는 강력한 파워로 90년대 젊은 여성들의 사랑관, 가치관 그리고 인생관에 큰 영향을 일으켰다. 물론 그 속엔 나도 있었다.

고등학교 때 장소한에 얽힌 창피한 에피소드도 있었다. 소꿉친구한테서 장소한의 산문집을 빌린 나. " 나, 이런 책을 보는 여자야!" , 잘난척하려고 일부러 책상위 가장 눈에 띄는 위치에 떡 하니 책을 놔두었다. 물론 결말은 아주 참담했다. 수업시간에 교실에 들어선 수학선생님, 책상 위에 얌전히 누워있는 책을 발견하고는 두말 없이 책을 몰수하셨다. 젠장! 보라는 사람은 안 보고 엉뚱한 사람이 봐버렸네! 그게 어떻게 얻은 책인데! (그때까지만 해도 중국 본토에서는 홍콩 작가의 작품을 사기가 하늘의 별 따기였다.) 친구의 지랄 맞은 성격상 절대 나를 가만둘 리 만무하다. 아마 쥐도 새도 모르게 날 처치해 버릴 수도 있다. 어린 나이에 책 한 권 때문에 요절하고 싶진 않았다. 삶에 대하 강력한 의지로, 얼굴에 철판을 깔고 선생님을 찾아가 무작정 빌었다. 그런 내게 선생님은 책 어디서 났냐고 물으셨지만, 난 끝까지 입을 다물었다. 절대 내가 정의감이 넘쳐서도, 착해서도 아니다. 앞으로도 쭉- 그 친구한테서 책을 빌리기 위해선 그럴 수밖에 없었으니 말이다.  결국 선생님은 농담으로 그럼 노래 한곡 불러보라고 하시는 거였다. 그런데 웬걸, 내가 진짜로 부를 줄이야! 그것도 아주 진지하게 말이다. 그런 나를 보며 당황하신 선생님, 내가 진짜 부를 줄 모르셨나 보다. 어찌 됐든 나의 간절함이 통했던지 결국 책을 돌려받게 되었다.  나의 고음불가, 돼지 멱따는 보이스로 결국 장소한을 사수한 셈이다. 그 후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 책이 그때까지만 해도 중국 본토에서 판매 금지된 서적이었다고 한다. 난, 그때부터 이런 여자였다! 우하하하~


내가 그토록 장소한에 열광했던 이유가 뭐였는지 사실 잘 모르겠다. 그녀가 쓴 작품 하나하나를 음미하다 보면, 어느새 또 다른 나를 보는 것만 같다. 지금 이런 모습으로 살아가는 내가 아닌, 또 다른 나의 모습이 보인다고나 할까? 그녀의 작품 속 주인공은 어찌 보면, 또다른 너와 나였을지도 모른다. 18살의 또 다른 나, 스무 살의 또 다른 나, 그리고 서른 살의 또 다른 나. 이런 나의 모습과 직면하다 보면, 내가 몰랐던 또 다른 깨달음을 얻게 되는 것 같다.

아마 아무리 노력해도 난 장소한의 발톱도 못 따라갈 확률이 99%다. 이 세상에 장소한은 하나뿐이니까. 대신 나는 랑랑이란 이름으로 나 만의 이야기를 담아보고 싶다. 장소한의 감성과 나만의 감성을 합치면 뭔가 나오지 않을까? 뭐가 안 나올 가능성이 크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안에 장소한이 있다!" 나는 지금도 이렇게 믿고 싶다, 아니 믿을 것이다! ^^



P.S : 한국의 젊은 여성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친 한국 작가 추천 부탁드려요!!




    장소한 , 그녀는 누구인가?


이름        :  장소한(张小娴) (영문 이름: Amy Cheung Siu Han)

국적        :  중국 홍콩

출생지     :  홍콩

출생        :  1967.11.3

직업        :  작가,     mingshixueyuan 영역 학원 원장(名师学院 领域学院院长)

학력        :  Hong Kong Baptist University (香港浸会学院 )

수상        :  2013년 제8회 중국 작가 부호 리스트에 오름. (荣登2013第八届中国作家富豪榜)

대표작     :  "면포수상적여인"(의역: 빵나무 위의 여인)(面包上的女人)、 "하포리적단인상(의역: 주머니 속 싱글침대)(荷包里的人床)


장소한, 그녀는 중국 홍콩의 유명한 여류 작가다. "명보"(明报)잡지의 칼럼 작가로 일을 하면서, " "면포수상적여인"(의역: 빵나무위의 여인)(94년)와 "하포리적단인상(의역: 주머니 속 싱글 침대)(97년) 등 작품으로 명성을 떨쳤다. 그중에서도 "주머니 속 싱글 침대"는  홍콩 베스트셀러에 오르기도 했다. 98년도에는 홍콩 첫 여성 잡지"AMY"를 창간하게 되면서 편집장으로 일을 하기도 했다.


주요 작품

"三月里的幸福饼(Happy Cookies in March)

짝사랑, 사랑, 이별, 재회 그리고 다시 헤어지는 과정을 그린 이야기.  운명의 장난으로 헤어지게 된 두 연인이 다시 만나면서 사랑에 빠지고 결혼 직전까지 가지만 , 결국 두 사람 사이에 넘을 수 없는 벽 때문에 다시 헤어지는 이야기.


"我这辈子有过你"(《三个 A Cup的女人》) (의역: "내 생애 그대가 있었다" 혹은 "3명의 A 컵 여인들")

사랑과 여인의 가슴을 교묘하게 연결 시켜 , 세 명의 A 컵 여인이 각자 사랑을 좇는 과정을 그린 이야기. 그리고 그런 그녀들을 각자의 방식으로 사랑하는 세 명의 남자. 그중 여주 1호는 유부남과 사귀고 있음. (새드 엔딩. 남주 1호- 유부남 죽음.)  유부남과의 사랑을 아름답게 그려놓아서, 불륜을 너무 미화시키지 않았나란 생각이 가끔 들기도 한다.


"再見野鼬鼠"(Goodbye, Wild Weasel)

자신을 버린 전 남자친구에 대한 집착 그리고  그런 그녀 곁에서 묵묵히 지켜주는 또 다른 남자. 사랑이 떠나버릴 때에야 진정한 사랑이 뭔지 깨닫게 된다. (해피엔딩)  


"面包树上的女人"(빵나무 위의 여인)

세 여인의 사랑 이야기


"荷包里的单人床" (주머니 속 싱글 침대)

짝사랑에 대한 이야기


이 중 최근 드라마로 제작된 작품이 있다. 바로 대표작 ""面包树上的女人"(빵나무 위의 여인)이다.


이미지 출처 : 바이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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