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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mi Kim Pottery Jul 04. 2022

어두움과 아름다움

"유쾌한 건 아닌데, 짧고 임팩트 있음. 읽어봐"

"윽 - 나 어두운 거 힘든데.."

친구가 추천한 책을 읽고 있는데, 뒤로 갈수록 점점  어두워지고 있다.


읽는 도중 방금 발견한 문장.


'아름답다고 느낀 것을 아름답게만 표현하려고 노력하는 안이함과 어리석음. 대가들은 아무것도 아닌 것을 주관에 의해 아름답게 창조하거나 추악한 것에 구토를 느끼면서도 그에 대한 흥미를 감추지 않고 표현하는 희열에 잠겼던 것입니다. 즉 남이 어떻게 생각하든 조금도 상관하지 않는다는 원초적인 비법을 다케이치한테서 전수받은 저는 예의 여자 손님들 몰래 조금씩 자화상 제작에 착수했습니다.

제가 봐도 흠칫할 정도로 음산한 그림이 완성되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가슴속에 꼭꼭 눌러 감추고 감추어 온 내 정체다.' - '인간실격', 다자이 오사무


광고 제작 감독인 영국 친구와 한 대화가 생각났다. 그 친구의 작업은 주로 어둡고, 나의 도예 작업은 주로 밝다. 친구는 나의 밝은 느낌의 작업을 '아름답다'라고 표현했다. 나는 나와는 전혀 다른 감정을 가진 그 친구의 어두운 작업에 압도되었다. 매우 강렬했다. 순간 '인간의 내면에 이런 감정이 있을 수 있구나..' 싶었다.

친구의 말로는, 밝음보다 어두움이  강렬한 임팩트를 준다고 했다.



... 그런 것 같다. 어둡고 까칠한 비판이 담겨있는 대가들의 작업에 우리는 왜 압도되는 것일까?


'사람은 밝아야 한다. 웃어야 한다. 친절해야 한다. 긍정적이어야 한다'

지하 벙커 저 밑에 숨어있던 우리 내 어두운 마음을 밖으로 들춰내기 어려운 이유는,

우리는 그래야만 한다는 세상에 이미 세뇌당했기 때문일까?


말린 듀마스 (Marlene dumas),  안젤름 키퍼 (Anselm Kiefer), 알렉산더 맥퀸 (Alexander McQueen) 등등. 어두운 작업을 했던 작가들이 몇몇 떠오른다. 물론, 압도적이었고 너무 멋있었다.


하지만, 나는 어두움을 마주하기가 정말이지 너무 힘들다.

내 안에 그런 어두움은 없다 (full stop).

나는 오히려, 아름답다고 느낀 것을 더 아름답게 표현하지 못하는 나의 능력에 대한 아쉬움이 있다.

내 눈에 보이는 이 우주의 아름다움. 이 아름다움을 보지 못하는 이들에게 보여주고 이해시켜 주고 싶은데 말이다.


나는 '신비로울 정도로' 아름다운, 그런 작업을 하고 싶다.

1991년 경.. 내가 10살 즈음, 토요일이었다.

오빠, 언니와 함께 우리 셋은 김녕 버스 정거장에서 내려, 할아버지 댁으로 20여 분간 걸어가고 있었다.

우리 위 하늘에 펼쳐진 그 광경은, 그저 아름다운 파란 하늘이 아니었다. 나는 보았고, 느꼈다. 애초에 어두움으로 시작했기에 이런 아름다움이 있음을..


그날은 내가 우주와 연결된 시작점이었다.


#INF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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