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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유준 Jul 11. 2015

기록을 찍을까? 기억을 찍을까?

이야기가 남아있는 사진을 만들자.

팀이 두 점 차로 지고 있는 9회 말.

1사에 주자가 1, 3루인 상황.

첫 타석과 두 번째 타석에 홈런을 쳤고 3안타에 고의사구 한 번으로

오늘만 네 번 모두  출루했으며 시즌 기록 3할 4푼의 강타자가 타석에 들어선다.

홈런을 치면 끝내기가 돼버리고 병살을 치면 지는 경기가 돼버린다.

우리 팀이 이길 확률은?


정답은  '모름'이다.


이런 순간 우리들은 1구 1구에 집중하며 야구를 본다.

말 그대로 '야구'를 본다.

하지만 사진을 찍기 위해 카메라를 들고 있다면 엄청난 순간을 남길 수 있다.

그것이 기록이다.


요즘 들어 (정확히는 작년 막바지부터) 정성훈 선수의 헤어스타일을 볼 수가 없다.

늘 비니로 꽁꽁 싸매고 다녀서 그 속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 수가 없는데...

사실 정성훈 선수는 나이에 비해 심각한 탈모로 맘고생이 심한 듯하다.


'정영감' 등의 수식어를 달고 다닐 정도로 노안도 좀 있고;;

거기 탈모까지 왔으니 그 누가 헤어스타일을 공개하고 싶겠는가.

그렇지만 아주 잠깐씩 의도치 않게 공개되는 순간이 있다.

그 순간을 노려보자..;;



난 절대 정성훈 안티가 아님을 밝힘

아직 경기가 시작되기 전 몸을 풀면서 땀을 흘린다.

땀을 닦기 위해 아주 잠깐이라도 모자를 벗으리라.

내 예상은 적중했다.

그.. 그리고...

미안해졌다...

이것이 기억이다.


복면야왕

공격이 끝나고 수비로 들어가기 전.

타순이 한참 남았다면 포수들은 2 아웃쯤부터 장비 착용에 들어간다.

타순이 아주 많이 남았다면 불펜에서 투수의 공을 받으며 기다리기도 한다.

마스크를 쓰는 모습을 한컷 남기고 싶었다. 

성공했다.

이것이 기억이다.



만약 이대호선수가 1루 주자였다면 볼 수 없는 장면

발 빠른 박용근 선수가 1루에 나갔다.

당연히 견제가 들어오겠지.

포커스를 1루 베이스에 맞춰놓고 반셔터를 눌러둔다.

연사 세팅은 기본이다.

왼쪽 눈으로는 투수를 보고 오른쪽 눈으로는 뷰파인더를 본다.

투수가 몸을 돌려 1루를 향한다.

셔터를 마저 누른다. (촤라라라라락~~)

이것이 기억이다.



고영민선수의 표정, 박용근선수의 슬라이딩, 포수의 송구미스

볼 카운트가 점점 불리해진다.

투수가 변화구로 삼진을 노릴 것이다.

그렇다면 발 빠른 1루 주자가 그 타이밍에 도루를 시도하겠지?

다시 포커스는 2루 베이스에 두고 연사를 준비한다.

왼쪽 눈은 투수를 보고 오른쪽 눈은 뷰파인더를 본다.

변화구 헛스윙 삼진, 그리고 도루 시도.

포수의 어이없는 송구 실수와 2루수의 당황한 모습.

결국 박용근은 여유 있게 3루까지 간다.


사진 좀 찍어봤다는 분들도 잘 구분 못하는 것이 '기록과  기억'이다.

사진을 찍는 이유는 제각각 다 다르다.

좋아하는 선수를 담기 위해.

멋진 장면을 담기 위해.

나 거기 있었다는 증거를 남기기 위해.

'나 DSLR 쓰는 사람이야'라고 자랑하기 위해. (웃지 말자. 실제로 그런 사람 무지 많다;;)


이전 글에도 언급했던 바와 같이 노리고 찍으면 사진 찍는 재미가 두배가 된다.

아니 몇 배~수십 배가 될지도 모른다.

야구를 좀 본 사람이라면 위에 적어둔 예 정도는 충분히 예상해 볼 수 있다.

그 예상이 적중했고 그 장면을 남겨두었다면 얼마나 재밌겠는가.

물론 그 상황을 어떻게 찍어야 하는지 방법 정도는 이미 알고 있어야 하고 말이다.

(그래서 공부해야 한다)


헐.jpg

왜 이런 표정을 지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냥 얻어걸린 사진이다.

경기 전 몸을 풀다가 뜬금없이 나온 표정.

사실 이런 사진은 그냥 재미만 있을 뿐, 사진으로서 값어치는 없다고 본다. (내 사진은 내가 깐다)

근데 그냥 재밌다. 그냥... 그뿐이다.

(김용의 선수는 내 카메라를 피해 다닌다. 사진이 못 나와서 사진 찍히기 싫단다. 이 사진 봤나?)



무작정 막 셔터를 누르기보다는 이야기를 만들고 기억을 만드는 사진을 찍어보자.

그게 훨씬 더 재밌고 즐거운 사진이 될 것이다.


기술적이고 지식을 줄 수 있는 이야기를 쓰겠다고 해놓고 맨날 헛소리만 하고 있다고 뭐라 하지 말아달라.

기초부터 논해야 하고 너무 방대한 이야기를 시작해야 해서 좀 손대기가 불안하다.

사진에 접근하는 방식의 차이인데, 너무 딱딱한 것부터 접근하면 역효과가 나오게 된다.

재미를 느껴가며 접근한다면 스스로 욕심이 생기기 시작한다.

그런 의도다.


2013년 시즌은 엘지 팬들에게 잊지 못하는 한 해였다.

그 해 이병규(9) 선수가 팀에 가장 큰 공헌을 한 것이 무엇인지 아는가?


역전 홈런, 수위타자, 사이클링 히트 등...

이것이 기록이다.


그리고...



'으쌰으쌰'라 쓰고 '의쌰의쌰'라 읽는다.

절대 잊지 못할 '으쌰 으쌰' 세리머니.


그리고 '기억'에 평생 남을 그의 한마디.


기자: 세리머니 이름 좀 지어보자.

라뱅: 이미 '으쌰 으쌰'로 지었다.

기자: 이름이 좀 촌스러운 거 아니냐?

라뱅: '팬들이 그렇다면 그런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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