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름으로 찍으면 무언가 다르다?
아주 오랫동안 '브런치'를 잊고 살았습니다.
뭐 먹고살기 바쁘다 보니 그렇게 됐습니다.
근데 아직도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다시 펜... 키보드를 잡습니다.
옛날부터 사진을 공부하고자 하는 분들...
혹은 사진을 취미로 하고 계신 분들에게 많이 듣는 단어가 있습니다.
'감성 사진'
검색창에 저 말을 검색하면 무수히 많은 사진이 쏟아져 나옵니다.
나름 본인들의 느낌을 얹어놓은 사진들이 아주아주 많이 나옵니다.
감성은 감성이고, 사진은 사진입니다.
무슨 얘기인고 하니...
어학사전에도 없는 정체불명의 단어가 '감성 사진'이라는 것이죠.
하나의 장르가 아닌 사진의 느낌으로 정의하는 아무도 모르는 분야인 것입니다.
보통 사람들이 일컫는 감성 사진이라는 작품을 들여다보면
대부분 보정이나 리터칭으로 느낌을 만들어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는 아마추어의 경우, 혹은 하수의 경우 더욱 심해집니다.
'필름 느낌의 감성 사진'
이라는 사진들도 꽤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저 진짜 궁금합니다.
저 역시 필름 시절부터 사진을 찍기 시작했고,
필름을 직접 현상하거나 인화하는 단계까지는 아니었지만
되묻고 싶습니다.
필름과 디지털의 차이를 알고 이야기하는 것인지...
디지털로 찍어놓고 필름 사진처럼 만들기는 참 쉽습니다.
여기 두장의 사진이 있습니다.
왼쪽은 전혀 보정하지 않은 날 것 그대로이고,
오른쪽은 필름 느낌으로 보정한 사진입니다. (Agfa Vista 400)
분명 다른 느낌입니다.
그분들이 이야기하는 감성 사진이 이런 것인가요?
하나만 더 보겠습니다.
왼쪽은 날것이고, 오른쪽은 필름 느낌으로 보정된 사진입니다. (Kodak Gold 100)
감성적인가요?
서두에 언급했듯이 '감성 사진'이라는 장르는 없습니다.
어떻게 표현했느냐에 따라 '감성적인 사진' 이 될 수는 있는 것이죠.
한 가지 더 중요한 사실.
필름 사진과 디지털 사진은 분명 다릅니다.
여러분의 눈은 '필름 사진'과 '디지털 사진'을 구별할 수 있나요?
저는 못합니다.
특히 웹에 게시된 사진을 보고 구별하라고 하면 절대 못합니다.
종이로 인화된 사진을 보고 구별하라고 하면 어느 정도 구별이 가능하겠지만요.
자! 이제 디지털과 필름의 가장 중요한 다른 점을 알려드릴까 합니다.
사진 공부하다가 이걸 알게 된 순간 저도 적잖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사진을 배우다 보면 '계조'라는 단어를 접하게 됩니다.
A라는 색에서 B라는 색으로(혹은 밝음에서 어두움으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그 농도가 자연스럽게 표현되는 것을 말합니다.
사전적인 의미로는
[명사]< 출> 그림, 사진, 인쇄물 따위에서 밝은 부분부터 어두운 부분까지 변화해 가는 농도의 단계.
(네이버 어학사전)
이라고 나와있습니다.
디지털 사진은 '픽셀' 단위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우리가 가정에서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HD 모니터의 경우 1920 X 1280 정도의 해상도를 사용합니다.
이는 모니터 가로를 1920개로 쪼개고, 세로를 1280개로 쪼개어 그 한 조각, 한 조각을 붙여 출력되는 것을 말합니다.
디지털카메라의 화소수도 이를 의미합니다.
만약 가로 1920, 세로 1280의 픽셀로 이루어진 사진이 찍힌다고 하면 그 카메라는 대략 245만 화소가 되는 것이죠.
그렇지만 놀라운 디지털카메라의 기술력에 의해 요즘엔 수천만 화소까지 찍을 수 있는 카메라들을 쓰고 있습니다.
만약 245만 화소의 카메라로 찍은 사진을 UHD 모니터로 보거나 (3840X2160)
많이 많이 확대해서 보게 되면 '픽셀이 깨지는' 현상이 나타납니다.
이미지를 늘리면 흐릿해지는 현상이라고 이해하시면 빠릅니다.
자, 다시 필름 얘기를 해보겠습니다.
필름은 화소가 없습니다.
즉! 아무리 늘려도 이미지가 깨지는 경우가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선명도와는 다른 이야기입니다. 픽셀의 개념에 관련된 이야기입니다.
또 한 가지 극명하게 다른 점은 바로 '계조'입니다.
디지털이 표현할 수 있는 계조의 한계는 '화소수'에 묶여있습니다.
디지털로는 필름만큼 완벽한 계조를 표현할 수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계조가 얼마나 중요한지 사진으로 보여드리겠습니다.
사진의 상단은 어두운 파란색이고, 태양에 가까울수록 밝은 노란색으로 바뀌어갑니다.
여러분은 웹으로 보고 있기 때문에 어색하게 넘어가는 부분이 잘 안 보이실 겁니다.
이 사진을 확대해서 보겠습니다.
색이 넘어가는 과정이 매끄럽지 못하다는 게 느껴지시나요?
뭔가 한 줄, 한 줄 색이 변해가는 과정이 보이시죠?
이게 바로 디지털과 필름의 다른 점이라는 겁니다.
물론, 정확한 감을 잡으시기 편하도록 이미지의 품질을 저하시켜서 보여드렸습니다.
자,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겠습니다.
필름으로 찍으면 감성적인 사진이 나온다고 합니다.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필름으로 감성적인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보정이나 리터칭이라는 컴퓨터의 장난으로 여러분의 눈이 속고 있는 것이죠.
그런 사진은 그분들이 이야기하는 '감성 사진'이 아닙니다.
'감성적인 느낌으로 리터칭 한 사진' 이 정확한 표현입니다.
진짜 감성적인 사진을 잘 찍는 분들도 계십니다.
그 도구가 필름이건, 디지털이건 상관없이 말이죠.
나쁘다! 틀리다!라는 것은 아닙니다.
정확히 알고 표현하자는 취지입니다.
그런 말씀들 많이 합니다.
'디지털로 찍으면 저런 표현 못해. 저건 필름으로 찍었어'
천만에요.
필름으로 찍어도 디지털의 결과물을 만들 수 있으며
반대로, 디지털로 찍어서 필름 사진 같은 결과물을 만들 수 있습니다.
두 도구의 차이가 사진의 차이를 말하는 것은 아니니까요.
더불어, 한 가지 꼭 드리고 싶은 말씀.
'감성 사진'이라는 단어에 얽매여서 자신을 가둬놓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세상에는 '감성 사진'이라는 사진의 장르는 없습니다.
'감성적인 이야기가 담겨있는 사진'을 '촬영' 하시기 바랍니다.
찍고 나서 만드는 사진은 이미 사진이 아니거든요.
정말 보정의 고수가 되어 원하는 대로 만들어내는 훌륭한 '그래픽 디자이너'가 되실게 아니라면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