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이 다가오면 다양한 세밑 풍경이 절로 머릿속에 그려진다. 우선 오색찬란한 크리스마스 장식과 현란한 백화점 미디어 파사드가 시각적 이미지로 떠오른다. 반면 구세군 자선냄비의 종소리는 크리스마스 캐럴과 함께 성탄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청각적 이미지로 다가올 것 같다. 우리에게 익숙한 구세군 자선냄비는 대체 언제부터 유래된 걸까? 서울 한복판 정동길에 자선냄비의 본부였던 옛 구세군중앙회관이 있다.
덕수궁 돌담길 북측은 정동에서 작은 영국 조계지 느낌을 주는 곳이다. 우선 덕수궁 담장과 이웃한 영국 대사관이 1883년 한영통상조약이 체결된 이래 100년 넘게 한 자리에 자리 잡고 있다. 그 옆에는 우리나라에서 흔치 않은 로마네스크양식인 영국 성공회성당이 있다.
성공회성당과 영국대사관
영국대사관과 덕수궁 담장 사이에는 고종의 길이란 작은 샛길이 있다. 이 길은 2017년 대사관이 오랫동안 점유했던 덕수궁 부지 일부를 서울시에 돌려준 것이다. 그 덕에 60년간 끊겼던 덕수궁 돌담길이 다시 하나로 이어지며 고즈넉한 작은 둘레길을 선사해 주었다. 고종의 길을 지나 덕수궁길 쪽으로 향하면 고풍스러운 벽돌 건물 하나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2019년 ‘정동1928아트센터’라는 이름으로 탈바꿈한 옛 구세군중앙회관이다. 1928년 구세군 사관학교로 건축되어 성직자를 교육하는 신학대학으로 사용된 이 곳은 구세군사관학교가 과천으로 캠퍼스를 이전한 1985년부터 구세군중앙회관으로 명칭을 바꿨다. 2002년에는 서울특별시 기념물 제20호로 선정되어 정동 근대 건축물 문화재로서의 위상을 굳건히 다졌다.
외관을 살펴보면 중앙 상부의 삼각형 박공과 중앙 현관을 장식하는 4개의 기둥이 인상적이다.
구세군중앙회관(1928)과 경성방송국(1926)이 함께 담긴 사진 엽서. 과거 일본인이 설립한 우리나라 최초의 방송국인 경성방송국이 구세군중앙회관 뒤편에 위치했다.
박공면에는 ‘구세군사관학교’라고 쓰여 있다. 덕수궁 석조전과 비슷한 외양의 신고전주의 양식에 충실한 건물이다. 석조전도 대한제국 시절 고종 황제의 의뢰를 받아 영국인에 의해 지어졌다.
1층 현관에 들어가면 벽면에 양쪽에 국한문, 영문으로 새긴 건립기가 적힌 돌판이 눈에 띈다. 좌우에 기숙사, 사무실과 홀들이 있고 식당과 주방이 있었다. 현재 오른편 공간은 두손갤러리 전시실로 쓰이고 있다.
두손갤러리는 1969년 고미술상으로 출발해 1980년대에 대학로에서 김환기, 박수근, 이중섭, 나혜석, 박서보 등 한국 근·현대 미술가 전시를 열고 한국 미술을 이끌어온 1세대 화랑이다. 1993년 김양수 대표가 미국으로 떠나면서 갤러리는 한동안 문을 닫았다가 2022년 정동 1928아트센터에서 30년 만에 부활했다.
재개관전으로 ‘깨진 도자기’ 전시로 유명한 이수경 작가의 개인전 <다정한 자매들>을 선보였고, 백남준, 전광영, 니콜라 푸치, 엄정순, 신문섭 등의 개인전은 물론 사진과 조각, 골동품 등 다양한 작가와 작품을 소개하고 있다.
갤러리 안으로 들어가면 목조 지붕과 트러스트, 계단 난간 등 외관 못지않게 내부도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다. 최근에는 근대 시기 신문물의 도입지였던 외국인들의 거리 정동의 특성을 살려 다양한 레트로 오브제를 소개하는
<RETRO정동>(24.10.25~11.30)이 전시 중이다.
2층 강당은 예배실, 회의실, 연회실 등 다용도로 사용한다. 강당에 들어서면 눈에 띄는 목조 트러스트(삼각형의 골조 모양)는 보나 기둥 없이 독특한 짜임새로 지붕을 떠받치고 있다. 14세기 영국 건축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아치형 해머 빔 트러스로 다른 곳에서 찾아보기 힘든 양식이다.
이렇게 육중하고 정제된 모습으로 검소한 삶을 살라고 강조하는 듯한 구세군회관 건물을 돌아보면 대체 구세군이 뭘까? 그 신앙 정신은 무엇이며 한국에는 언제 들어왔을까 하는 궁금증이 절로 들 것 같다. 그런 궁금증을 풀기 위해서라면 건물 왼편에 자리 잡은 구세군 역사박물관으로 재진입해야 한다.
2003년 설립된 구세군역사박물관에는 100년 전 성경과 찬송가를 비롯 구세군의 역사, 유물, 그리고 사회봉사 이력과 ‘자선냄비운동’과 ‘브라스밴드’ 유물을 상설 전시하고 있다.
구세군(The Salvation Army)은 1865년 영국에서 윌리엄 부스가 런던의 빈민을 위해 창시한 종교다. 우리나라에는 일본에 의해 대한제국의 군대가 강제로 해산되던 이듬해인 1908년, 영국 구세군 선교사 로버트 호가드 일행이 선교활동을 위해 한국에 들어오면서 시작되었다.
구세군은 이름 그대로 ‘하나님의 군대’라는 의미를 실천하기 위해 조직과 활동에서 군대식 편제와 용어를 썼다. 선교사들의 직함은 사령관, 연대장, 대대장으로, 선교 계획은 작전, 선교 행위는 전투, 헌금은 탄약이라고 불렀다. 당시 일제에 저항하고자 했던 조선인들은 구세군에 입교하면 총과 탄약을 나눠주는 줄 알고 몰려들었다는 웃지 못할 사연도 들려온다. 선교 시작 열흘 만에 수천 명의 입교자를 모은 위력에 놀란 일본 경찰은 통역을 잡아들이고 호가드 일행의 선교 방식을 저지했다.
구세군은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해 빈민에게 쌀을 나눠주고 고아원을 설립하는 등 자선 활동에 몰두했다. 근대교육기관으로 정동 구세군사관학교 건물을 신축해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신학대학 건물을 남겼다. 3.1 만세운동에 많은 신도가 참여했고 신사참배 반대운동으로 선교사 전원이 추방되고 구세군사관학교가 강제 폐교되는 일도 겪었다.
1928년 12월에는 서울 곳곳에 한국 최초의 구세군 자선냄비가 모습을 드러냈다. 일본의 쌀 수탈과 조선 전역을 때린 가뭄과 홍수로 흉년이 들어 가난한 자들이 어려움을 겪던 때였다. 크리스마스 시즌에 자선냄비활동을 통해 모금한 848원 67전으로 급식소를 차려 매일 120명 안팎의 걸인들에게 식사와 의복, 땔감을 지원했다.
이렇게 구세군사관학교는 나눔과 헌신으로 이웃사랑을 실천하고 인재를 양성하던 본부였다. 현재는 구세군 역사박물관과 두손갤러리로 탈바꿈하여 다양한 문화 프로그램을 운용하고 있다. 연말에 구세군회관에 들러건축물도 둘러보고 전시도 보고 정동의 깊은 역사를 느끼면 한 해를 풍요롭게 마무리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