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직도 그 10초에 머물러 있다
캉
두 손으로 가볍게 들릴 솜사탕 같은 강아지가 차에 치이는 소리는 '쾅' 보다 '캉'에 가까웠다. 솜털 같은 강아지에 비해 자동차는 무쇠처럼 단단했다. 강아지는 첫 충돌에 머리를 부딪혔다. 정신을 못 차리고 몸부림쳤다. 강아지는 제 머리를 세차게 좌우로 흔들었다. 몸은 머리를 따라 어쩔 수 없이 격렬하게 흔들리는 것처럼 보였다. 작고 짧은 다리는 향할 곳을 잃고 제 주인을 차도 안쪽으로 이끌었다.
캉
두 번째 충돌. 방금까지 격렬했던 움직임이 가벼운 파열음과 함께 멎었다. 뜨겁고 울퉁불퉁한 아스팔트 도로 위에 작은 솜뭉치가 위태롭게 놓여있었다. 사실 강아지가 위태로운 건 아니었다. 한눈에 알 수 있었다. 강아지는 그 순간 숨이 멎었다. 불안한 건 내 마음이었다. 눈앞에서 죽음을 목격한 충격과 함께 머릿속이 시끄럽게 텅 비었다. 차가 쌩쌩 달리는 8차선 도로에서 어느 차도 작은 강아지를 보고 멈추지 않았다. 아니, 멈추지 못했다. 횡단보도 앞에 선 나는 저절로 벌어진 입을 두 손으로 틀어막고, 휘둥그레 커진 눈은 가리지 못한 채 세상에서 가장 긴 신호를 기다렸다.
이쯤 되면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의 머릿속엔 질문이 가득할 거다. 강아지는 어쩌다 도로에 뛰어들었나? 강아지 주인은 어디서 뭘 하고 있었나? 강아지 리드줄은 없었나?
내가 강아지를 처음 본 건, 그 강아지가 죽기 딱 10초 전쯤이었던 것 같다. 지하철을 타러 남부터미널역으로 걸어가던 길이었다. 왼쪽으론 차가 쌩쌩 달리는 차도가, 오른쪽으로는 벽을 타고 자란 나무와 풀이 무성했던 것 같다. 저 멀리서 포메라니안처럼 생긴 작고 동그란 강아지가 뽈뽈뽈 걸어오고 있었다.
진짜 귀엽다!
기분 좋은 미소를 짓는 순간, 그 옆의 견주를 봤다.
어?
견주와 강아지를 잇는 줄이 없었다. 그 순간 강아지는 순진하게 제 속도를 높여 순식간에 차도로 뛰어들었다. 강아지는 지구로 떨어지는 불타는 운석을 피하는 작은 생명 같았다. 크게 놀라며 달리는 차를 피했지만 역부족이었다. 그렇게 캉, 하게 된 거다. 10초 사이에 일어난 일이다. 견주는 작고 날쌘 강아지를 잡을 수 없었다. 견주의 안 돼! 하는 작고 후회 섞인 비명은 근처에 있던 나와 다른 행인만 들을 수 있었다. 차도로 뛰어들지 못 한 견주는 그대로 두 번의 캉, 캉을 보고만 있을 수밖에 없었다.
왜 목줄을 하지 않았을까? 대체 왜 이렇게 위험한 도로에서 그냥 강아지를 풀어놓은 거지? 왜 내 앞에서 이런 일이 일어난 거지? 답해줄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그저 내 앞에서 사건이 일어났을 뿐이다. 횡단보도 신호가 초록색으로 바뀌자 견주는 빠른 걸음으로 강아지를 향해 걸어갔다. 축 늘어진 강아지를 두 손으로 안고 어디론가 향했다. 정말 침착해 보여서 곁으로 다가갈 수도 없었다. 그렇게 나는 바로 앞에서 죽음을 목격하고도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은 사람처럼 남부터미널역으로 마저 걸어갈 수밖에 없었다.
종종 그 강아지 생각이 난다. 짧은 관심과 애정을 비친 순간 생명을 다한 강아지의 죽음, 그 충격이 나에게 꽤 컸다. 첫 번째 충돌 이후 정신을 잃고 더 깊은 차도로 뛰어들어간 강아지의 몸부림이 눈앞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요즘은 내가 그 강아지랑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한 번 치였을 때 가만히 있었으면 죽진 않았을 텐데,
어찌할 바를 모르고 뛰어다닌 바람에,
자기가 차를 이길 수도 없는데,
아니 차가 뭔지도 모르면서,
날 덮칠 게 무엇인지도 모르고,
그것이 덮치면 내가 어떻게 되는지도 모르고,
허겁지겁 스스로 패닉에 빠지다 보면 그 강아지 생각이 나는 거다. 아, 그 강아지가 그래서 멈출 수 없었구나. 캉, 하고 한 번 치이면 시야가 좁아지고 눈앞의 차를 피하기 위해 두 다리가 어디로 향하는지도 모른 채 그저 달리는 거구나. 일단 달려야 살겠으니까.
요즘, 그 작은 생명의 죽음이 어쩐지 자주 생각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