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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이아 Apr 06. 2023

AI가 모든 면에서 인간을 압도한다면

창작의 미래, 기계가 '아직' 대체할 수 없는 것, 그리고 틈



1. 이미지 자체에 질리는 시대


"앞으로는 이미지 자체에 질릴 텐데요." 김태권 작가님의 글에서 '훅' 들어온 구절입니다. 기계가 생성한 이미지와 글, 동영상이 세계를 뒤덮을 때 우리는 어떤 존재가 되어 있을까요? 아니, 지금 우리는 어떤 존재가 되어가는 걸까요? 


"“보세요. AI로 삼십초 만에 뽑아낸 그림이에요.” 생성된 이미지를 본 사진작가 ㅇ님은 말했다. “신기하네. 하지만 이런 스타일의 이미지는 금방 질려.” 나는 쓰게 웃으며 답했다. “스타일이 문제겠어요? 사람들이 앞으로는 이미지 자체에 질릴 텐데요.”" 


- ‘AI 묵시록’ 일곱 개의 봉인 | 김태권

https://m.khan.co.kr/opinion/column/article/202304060300055/


2. '아직은' 기계가 못하는 것. 그리고 관계의 윤리.


'인간의 역량을 기계가 모두 압도하게 될 때'라는 말에 빠져 있는 것은 관계의 문제일지 모릅니다. '사이'에 대한 성찰. '틈의 생성과 변화'의 영역. 좀 거창하게 말한다면, 기계가 인간을 능가하는 시대에 인간이 더욱 깊이 성찰해야 할 것은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 나아가 인간과 동식물, 대지와 지구와의 관계입니다. (그래서는 안된다고 믿지만) 기계가 인간을 대체할 수 있을지 몰라도 인간과 (비)인간  사이, 틈, 거리, 관계를 대체할 수는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기술/기계가 아직 못하는 것이 아니라 기술/기계와 내 ‘관계’가 아직 못하는 것을 찾는 것이다. 전자로만 본다면 그것은 기술/기계의 문제이지만 후자로 본다면 그것은 ‘관계’의 문제이며 여기서 아직 대체되지 않는 ‘관계’로서의 사람과 사람 사이를 성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디어와 인간 사이에서 아직 미디어(매개)되지 못하는 것을 찾는 것이다." 


- 인공지능 시대, 문화예술교육의 자리 <우리는 서로에게 신중한 독자입니까? | 엄기호 

https://blog.naver.com/artezine/223065687965


3. 그리고 생각난 예전의 글과 사진을 남겨 놓습니다. 



"여전히 울릴 수 있는 종을 울리시오. 완벽한 봉납(offering)은 잊으시오. 모든 것에는 깨진 틈이 있고, 그리로 빛이 드는 법이니." – 레너드 노먼 코언 


어느 가을, 폭풍이 휩쓸고 간 제주를 걷고 있었습니다. 한 마을에 들어서자 처참한 광경이 펼쳐졌습니다. 시멘트 벽돌로 된 담장이 무너져 내려 길을 반쯤 덮고 있었죠. 아픈 마음을 안고 발걸음을 옮기다가 흠칫 놀랐습니다. 현무암을 쌓아 올린 담장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튼튼히 서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시멘트와 철근으로 겹겹이 쌓아 올린 도시민의 상식이 처참히 깨지는 순간이었죠. 


때마침 지나가던 주민께 여쭈었습니다. “시멘트 벽은 다 무너졌는데, 얘는 튼튼하네요.” “그게 벽에 바람이 통해서 그래. 이리저리 틈이 있잖아.” 그분의 말이 과학적으로 검증된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후 ‘틈’은 제 삶의 가장 중요한 메타포가 되었습니다. 이리저리 틈이 있는 사람들 곁에 서고 싶었고, 누군가의 삶에 작은 틈이 되고 싶었습니다. 제 마음 속에도 바람과 햇살, 새들과 나비들이 오가는 틈을 만들어 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 메타포대로 살아오진 못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틈이 된 사람들을 동경하고 응원합니다. 그것이 제도와 구조에 균열을 낸 것이든, 삶의 취약성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일이든, 다른 세계를 엿볼 수 있는, 그 자체로 예술이 된 삶이든, 일상의 상처를 덤덤한 말로 표현하여 삶과 말 '사이'의 긴장을 보여주는 일이든 말입니다. 


코언의 말을 곱씹어 봅니다. 그리고 감히 소망합니다. 저의 깨진 틈 사이로 든 빛으로 다른 이의 마음을 조금은 환하게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상처 사이로 드나드는 빛으로 우리가 좀 덜 아프면 좋겠다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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