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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이아 May 23. 2023

생산성은 있고 '과정성'은 없는 시대

"생성AI시대 윤리는 가능한가"라는 질문에 대한 두서없는 단상


1. "생성AI시대 윤리는 가능한가"라는 박은하 기자님의 묵직한 질문을 곱씹으며 고민이 깊어집니다. 비관적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저는 고도의 기술자본주의가 윤리의 지형을 완전히 바꾸지 않을까 합니다. 


2. 사실 마음만 먹으면 지금도 '선생을 속이고' 기말 과제를 몇 시간 안에 후딱 만들 수 있습니다. 한국은 조금 덜하지만 미국에 계신 몇몇 분들의 전언에 따르면 학생들이 생성AI를 꽤 많이 사용하고, 이에 대해 명확히 밝히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합니다. 글을 쓰고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 필요한 노동이나 교사와의 약속, 정직함의 가치 등에 대해 깊이 고민하지 않는 이들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그 규모는 눈덩이처럼 금새 커질 것 같습니다. 


3. 여러 번 밝혔듯 리터러시에 대해 논의하면서 계속 던지게 되는 질문은 '우리가 언제 리터러시를 제대로 가르친 적이 있었나'하는 것입니다. 독서를 안/못해서 문제다, 글을 안/못써서 문제다, 소통하는 법을 몰라서 문제다 등등... 문제는 많지만 원인에 대해 말하는 사람은 적습니다. 마치 기성세대는 아무 잘못이 없다는 듯 말하는 '어른'도 심심찮게 보입니다. 


길을 걷지 않고 길에 대해 말하는 것은 가능한가?


4. 이와 관련하여 며칠 전 이런 쪽글을 썼습니다. 


"대부분의 리터러시 교육은 인지적, 언어적 역량에 집중한다. 조금 더 나아가면 정서적이고 사회적인 요소를 다룬다. 이런 측면의 중요성을 간과해선 안되지만, 결국 리터러시 교육이 향하는 것은 윤리적이고 관계적인 주체의 형성이다. 그런 면에서 리터러시 교육은 잘 읽고 잘 쓰지 않아도 함께 잘 사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읽고 쓰는 능력을 키우는 일종의 '자기 소멸 지향'의 행위이다. 개개인이 쌓은 바벨탑을 무너뜨려 서로를 연결하는 다리가 되게 하는 일 말이다."


5. 공유한 글에서 논의되는 '윤리'와는 조금 다른 관점이지만, 저는 리터러시 교육의 가장 중요한 목표가 윤리적이고 관계적인 주체로서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글을 잘 쓰느냐, 영상을 잘 만드느냐, 말을 잘 하느냐... 이런 기준도 중요하지만, 박은하 기자님이 말씀하시듯 글을 잘 쓰려고 애쓰는 과정에서 어떤 윤리적 각성을 하게 되느냐가 실제로 글을 잘 쓰느냐보다 훨씬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그 과정에서 윤리적 각성을 하고 자신을 돌아보게 된 사람은 자신의 글을 바벨탑으로 여기지 않게 되기 때문입니다. 소위 '잘 쓴 글'이나 '글 잘 쓰는 사람'을 우상화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6. 몇 달 간 생성AI와 관련된 문헌과 뉴스를 검토하며 가장 자주 본 단어는 '생산성(productivity)'이었습니다. 주어진 시간 내에 일정한 품질을 유지하면서 얼마나 많은 산출물을 낼 수 있는가로 계산되는 바로 그 생산성 말입니다. 생산성, 생산성 노래를 부르는 이들을 트위터에서, 광고에서, 책의 홍보자료에서 많이도 만났습니다. 


7. 하지만 왜 우리에겐 '과정성(processivity)'이라는 말은 없는 것일까요? (분자생물학의 개념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생산성보다 더 중요한 게 과정성이야'라는 말은 왜 이렇게 어색하게 느껴지는 걸까요? 생성AI가 더욱 강력해질수록 과정이 급격히 소거된다는 점을 이야기해야 하지 않을까요? 과정에서 길러지는 인지적, 정서적, 사회적, 관계적, 윤리적 역량이 탈각될 때 '생산성'이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단지 주고받음(trade-off)의 문제일까요?


8. 글을 맺으며 리터러시와 관련하여 다소 뭉툭한 질문을 던지고자 합니다. '그렇다/아니다'의 이분법으로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이지만, '인공지능을 통한 개별 맞춤학습의 실현'이나 '슈퍼휴먼이 되기 위한 챗GPT 활용법'같은 구호들이 난무하는 시기에 곱씹어야 할 논점을 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생성AI는 인간의 쓰기를 돕습니까? 혹은 쓰기에 수반되는 노동, 쓰기의 본질적 과정을 삭제합니까? 기계번역은 인간의 번역을 돕습니까? 아니면 번역에 수반되는 인지적, 정서적 노동, 즉 번역의 본질적 과정을 삭제합니까? 그것이 삭제된 세계, 기껏해야 인공지능의 사용을 각주로 처리하는 세계에서 리터러시 교육은 어떻게 윤리적 주체를 키워갈 수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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