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흔적이 남는 그 어느 곳이든 우리의 '지면'입니다.
공적 지면이 주어진 필자는 응당 그 지면의 가치와 무게를 고민하며 좋은 글을 쓰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한편 댓글을 다는 분들도 자신의 글이 일종의 '지면'이라는 생각으로 임해야 합니다. 특정한 미디어와 제도의 권력에 의해서 '허락된' 공간만이 담론을 형성하지 않으며, 자신의 말이 세계에 영향을 미치고 결국 자신의 내면을 만들어 간다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지면의 불균등한 배분과 사회정치적 권력의 작동은 그 자체로 비판의 대상이지만, 그 안에서 자신이 점하는 언어의 공간을 가꾸어 가는 것은 우리 모두의 책임입니다.
네. 압니다. 우리는 이러한 관계적, 윤리적 태도를 갖추는 데 있어 처참히 실패했고, 너무나 많은 이들을 극심한 고통으로 몰아넣었습니다. 잔혹하게 찌르는 무책임한 말들이 실제로 사람들을 죽였습니다. 이제 자신의 의견을 표명할 수 있는 '지면'은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필자와 독자가 만날 수 있는 장은 좁아집니다.
그런데 이것이 어디 포털 정치기사의 댓글란에서만 일어나는 일이던가요? 배달앱의 점포 평가 코멘트에서, 대학의 강의평가에서, 일부 지도 교수의 논문 피드백에서, '저격글'에 줄줄이 달린 댓글에서, 서점 사이트의 평점과 코멘트에서, 유튜브의 댓글창에서, 무기명의 직원평가에서... 실패와 무책임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의견의 제출로 충분한 상황에서 필자를 지적으로 열등한 존재로, 나아가 악마로 그리며 상대를 제압하고 자신의 '승리'를 쟁취하려는 분들이 적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런 유혹에 굴하지 않고 마음을 가다듬으며 말글을 짓는 것이 삶과 사회를 지탱하는 리터러시가 아닐까 합니다. 어쩌면 하나마나한 말이지만, 이 쪽글이 저의 널뛰는 마음에 묵직한 닻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남겨 놓습니다.
삶의 흔적이 남는 그 어떤 곳이든 우리의 '지면'입니다. 기성 권력이 펼쳐놓은 지면만 지면으로 인정할 때 우리 삶의 지면은, 대화의 가능성은 쪼그라듭니다. 그런 면에서 이미 쪼그라들대로 쪼그라든 세계이지만, 남아 있는 작은 텃밭들마저 뭉개는 우를 범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삶을위한리터러시 #지극히주관적인어휘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