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능을 끌어오지 않아도 다정할 수 있지 않을까?
1. 쏟아져 나오는 생성형 인공지능 관련 논문의 인기 주제 중 하나는 '인간 vs. AI'입니다. 인간의 수행과 인공지능의 수행을 비교하여 누가 더 나은지를 판별하는 구도입니다. 이들 연구에서 AI는 대개 '거대언어모델'로 불리는, ChatGPT, Claude를 비롯한 최신 인공지능 알고리즘입니다. 그런데 거기에서 '인간'은 누구일까요? 짐작할 수 있듯이 서양 특히 영미권의 대학에 속한 이들이 다수입니다. 최근 접했던 초록은 소위 '미국 최상위 MBA 학생들'이 인간 대표로 나섰습니다.
궁예가 외칩니다.
"누구인가? 지금 누가 그들을 인간 대표로 세웠어?"
2. 아울러 '인간 vs. AI'의 대결에서 가장 널리 사용되는 지표 중 하나는 지능지수(IQ)입니다. 새로운 언어모델이 발표될 때마다 인간의 IQ와 비교하는 기사와 포스트가 꼭 올라오죠.
여기에서 흥미로운 지점이 있습니다. 플린 효과가 잘 보여주듯이 20세기에 인류의 IQ는 상당히 많이 높아졌습니다. 미국의 경우 10년마다 약 3포인트씩 꾸준히 올랐죠. 다른 국가의 경우에도 IQ는 계속 올랐습니다.
10년 20년 만에 인간의 뇌가 비약적인 발전을 했을 리는 없습니다. 그러니까 이건 (1) 지능을 정의하는 방식 (2) 이와 관련된 교육과 훈련의 확산 (3) 테스트에 대한 적응 등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주고 받으면서 일어난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3. 플린 효과는 지능을 현재와 같이 정의하는 방식이 완벽함과는 거리가 멀어도 너무 멀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만약 지능을 다르게 정의하고 -- 아니, 지능이라는 구인을 거의 모든 영역에서 페기하고 교육과 문화를 그에 맞추어 바꿀 수 있다면 현재도 일부에서 지속되고 있는 지능 타령은 사라지게 될 것이라는 점을 시사하지요.
예를 들어 가드너의 다중지능(multiple intelligence) 모델은 흥미로운 시도이지만 '과학적 근거 부족' 등의 이유로 적극적인 실행과 검토의 대상이 되지 못 했지요. 그런데 그러한 가설이 힘을 잃게 된 게 단순히 비과학성 때문일까요?
신경과학 및 교육학적 증거로 볼 때 그런 측면이 분명 있습니다. 그럼에도 비과학성을 누가 어떻게 정의하는지, 그것이 기존의 사회구조 및 권력과 어떤 관계를 맺는지 더 깊이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기존의 지능 중심 위계사회와 빚는 갈등이 단일한 지능지수를 비판하는 가설들에 '비과학적'이라는 딱지가 붙게 되는 주요한 요인이라는 혐의를 거둘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사실 시험도 마찬가지죠. 코넬대학교의 심리학자 로버트 스턴버그(Robert J. Sternberg)가 말하듯 "시험과 출세가 갖는 상관관계는 우리가 발견한 게 아닙니다. 우리가 만들어낸 거죠."
4. 심리학이나 교육학을 공부하면 할수록 '머리 좋은 사람'같은 말이 참 별로입니다. 그냥 마음에 안 드는 게 아니라 그런 개념 자체가 너무 이데올로기적이라서요. 현재의 학력-시험 레짐에 적절한 기질과 특성을 타고 난 것처럼 보이는 걸 '좋다'고 표현하는 게 좋아 보이지 않는달까요.
5. 같은 맥락에서 '다정함도 지능이다'같은 말은 들을 때마다 움찔움찔합니다. 지능의 역사가 줄세우기와 차별, 우생학 및 인종주의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다정함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지능을 끌어올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지극히주관적인어휘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