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광고 리뷰 11. 배달의 민족 2.0
우리나라는 세계가 놀랄 만한 배달 문화를 지니고 있습니다. 점심과 저녁은 물론이고 밤늦게까지, 또 어디로든 배달이 가능하다는 것에 외국인들은 놀라며, 이동식 카드 리더기가 있다는 것에 까무러칩니다. 그만큼 배달 시장(?)은 우리나라만큼 탄탄한 곳은 없는데요. 거의 모두가 스마트폰을 사용하면서 배달 애플리케이션도 등장하게 되었고, 비싼 수수료 등 여러 우여곡절은 있었지만 배달 어플들은 여전히 잘 성장하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배달 주문 애플리케이션 중 광고가 가장 최근에 나온 배달의 민족 2.0(이하 배달의 민족) TV광고 <팥빙수> 편, <우럭회> 편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5aCuk7X8ZlQ
https://www.youtube.com/watch?v=7iBsuLO0zAc
광고를 정말 간단하게 말해보자면, 캐릭터가 팥빙수와 우럭회를 탐험합니다. 조금 위험에 처하지만 어찌 됐든 살아남죠! 그리고 알고 봤더니 팥빙수와 우럭회도 우리 민족이라는 겁니다! 전 이 소식(?)을 듣자마자 그 안에 숨은 메시지가 무엇인지 바로 알 수 있었는데요. 바로 배달음식의 범주에 속하지 않았던 회, 팥빙수 등의 음식도 배달의 민족 애플리케이션을 통해서 시켜먹을 수 있다! 또, 배달의 민족은 계속 배달 음식의 카테고리를 확장해나갈 것이다!라는 것을 말이죠. ‘민족’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분류 자체가 달랐던 음식들을 하나로 묶어버리고, 또 배달의 ‘민족’을 바로 떠올리게도 할 수 있는 아주 절묘하고 훌륭한 카피군요.
‘○○○도 우리 민족이었어’. 이 간단한 한 문장이 카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데요. 카피뿐만 아니라 슬로건, 표어 등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돌려 말하되 바로 알게 하라’입니다. 대놓고 그 이야기를 하고 있지는 않지만 아무리 멍청한 사람이라도 본래의 의미를 바로 알아챌 수 있도록 하는, 어찌 보면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그런데 배달의 민족은 해냈군요. 광고에 카피가 나오는 순간은 잠깐이지만 그 카피가 광고 전체를 휘어잡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어떤 분이 이 카피를 썼는지, 정말로 존경스럽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훌륭한 카피에도 단점이 있는데요. ‘민족’이라는 단어가 모든 것을 아우르는 단어는 아니죠. 특정 지역, 좁은 지역에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단어이기 때문에, 점점 배달음식 종류를 넓혀나가려는 배달의 민족의 의도와는 조금 다른 의미를 가질 수 있겠군요. 팥빙수, 우럭회는 옛날부터 익숙했고 먹어왔던 음식이라 큰 거리감이 느껴지지 않지만,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음식을 ‘민족’의 일부로 넣고 그것을 합리화시키기에는 살짝 무리가 있습니다.
카피에 감탄한 건 정말 오랜만이다(출처 : 배달의 민족 유튜브)
광고에서는 브랜드 이름을 크게 언급하지는 않는데요. 캐릭터도 최근에 나온 터라 익숙하지 않다고 가정하면, 배달의 민족이라고 작게 써진 글씨만이 이 광고가 배달의 민족 광고임을 알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카피가 딱 뜨는 순간, 우리는 이 광고가 배달의 민족 것임을 바로 알 수 있는데요. 물론 카피에 ‘민족’이란 단어가 언급되었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오래전부터 광고에 사용했고 꾸준히 밀던 독특한 개성을 지닌 글꼴의 힘이 더 컸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다양한 기업, 기관에서 그곳만의 개성 넘치는 글꼴을 만들어 사용하고 있는데요. 그중에서도 배달의 민족 글꼴은 그 존재감이 더욱 빛납니다. 오죽하면 지하철 광고에 하얀 것은 종이고 까만 것은 글씨로 카피만 큼직하게 써서 걸어놓았을 뿐인데 ‘아, 저것은 배달의 민족 광고구나!'를 단번에 알 수 있을까요. 브랜드 아이덴티티가 글꼴로 정말 잘 묻어난 사례라 볼 수 있습니다.
분명 어린 갓김치 광고지만 글꼴 때문에 배달의 민족 광고 같다
배달의 민족 광고 캐릭터는 팥빙수의 눈사태에 휩쓸리고, 물속에서 우럭에게 생명의 위협을 받습니다. 그런데 도대체 왜 캐릭터가 위험에 처해야 하고 생사를 오가야 할까요? 저는 왜 이런 크리에이티브를 넣었는지 의문이 들었는데요. 광고의 메인 카피인 'OOO도 우리 민족이었어'와 묶어 생각해볼 때 크리에이티브와 크게 연결되지 않습니다. 음식으로부터 처절하게 살아남았더니 우리 민족이었다고 깨달(?)았다고 해도 무언가 앞뒤가 맞지 않죠. 우리 민족의 음식이 생명을 위협할 정도로 맛있다고 말하는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저는 이것을 광고 시간 채우기로 보고 있는데요. 팥빙수 편에서는 '팥빙수도 배달 가능', 우럭회 편에서는 '우럭회도 배달 가능'이라는 간단명료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습니다. 간단명료한 핵심 메시지를 전달하는 역할은 카피가 다 해버려 크리에이티브가 딱히 할 일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카피를 보좌하는 역할이라도 해야 하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팥빙수가 우리 민족이었다는 걸 크리에이티브로 잘 표현할 방법이 안 보입니다. 거기에 12월 초 광고의 연장선이기 때문에 광고 콘셉트가 동일해야 하니, 더 답을 찾기 어려웠을 것 같습니다.
크리에이티브가 야속해(이미지 출처 : 배달의 민족 유튜브)
이번 배달의 민족 TV광고는 내용이나 크리에이티브에 있어 TV가 아닌 신문, 잡지, 옥외 광고에 적합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유는 크게 2가지로 설명할 수 있는데요. 큼지막한 카피가 들어간 2초 정도 되는 영상만 핵심이고 우럭에게 쫓기거나 빙수 눈사태에 휩쓸리는 대부분의 장면은 메시지와 큰 관련이 없다는 것이 첫 번째, 무엇보다 카피가 훌륭해 마지막 장면만 그대로 따서 인쇄광고로 활용해도 충분히 메시지 전달이 가능하다는 것이 두 번째 이유입니다.
배달의 민족 광고는 언제나 광고 카피에 힘이 있었습니다. 그냥 흰 배경에 글자만 몇 개 썼을 뿐인데 사람들의 많은 관심을 받은 것도 모두 카피에 재치와 유머가 넘쳐났기 때문입니다. 이번 카피는 그렇게 유머가 넘치는 카피는 아닙니다. 하지만 카피의 1순위 과제인 메시지 전달만큼은 정말 확실하죠. 만약 저도 카피를 쓴다면 이런 카피를 쓰고 싶네요.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일단 책이라도 많이 읽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