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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ay Again: 우리에겐 루미큐브가 필요하다

by 글쓰는 권모니


게임을 못해서 슬픈 내가 유일하게 하는 게임이 있다. 요즘 핸드폰 사용 시간 중 가장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는 루미큐브다. 연속되면서 같은 색의 숫자이거나, 서로 다른 색에 같은 숫자의 조합을 찾아 손에 쥐고 있는 패를 어떻게 가장 빠르게 털어낼 수 있을지 고민하다보면 시간이 참 잘 간다.



이 게임의 매력은 슴슴하고 적당한 데 있다. 다른 것을 동시에 하기는 어려운 정도의 집중력이 필요하지만 끄고 돌아서는게 아쉬울 만큼 미치게 재밌거나 중독적이지 않은 그 밸런스. 약간의 두뇌 회전과 창의력이 필요하지만 어렵지는 않은 난이도. 모든 것이 적당한 이 게임은 특히 생각을 끊어내는데 탁월한 효능을 발휘한다. 생각이 너무 많을 때, 생각을 하지 말자는 생각까지 이르렀을 때 이 게임을 켜 보시라. 루미큐브는 언제나 당신에게 확실한 환기 효과를 제공한다.



그래도 소파에 눌러 앉아 한 시간 반 째 루미큐브를 하고 있다보면 번뜩 죄책감이 들 때가 있다. 그럴 때에는 얼른 나영석 PD를 떠올리면 된다. 그는 한 유튜브 방송에서 라이브에서 캔디크러시 중독임을 고백하며, 침대에 누워 '캔디크러시 - 인터넷 포털 뉴스 - 쇼츠'의 삼각지대에 빠지면 2-3시간이 순삭이라는 공감 백배의 발언을 남겼다. 예전에도 잘 나갔고, 지금도 잘 나가는 스타 PD도 이런 시간죽이기 게임을 하는구나. 나는 묘한 안도감과 함께 그와 연결되는 느낌마저 받았다. 어쩌면 생각을 끊어내는 이런 단순한 게임이 창의력 향상에 도움이 되는 것일지도 몰랐다. 적당한 빈틈도 있어야 생각이 연결되고 창의력도 피어나는 것 아니겠는가. (비록 표본은 하나일지라도) 그러니 루미큐브를 하면서 죄책감은 느낄 필요가 없다.



루미큐브는 정신적 환기와 창의력 향상에 도움이 되지만, 그 시간이 길어진다면 요즘의 정신건강을 의식적으로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스스로 회피하고 있는 것도 의식하지 못하고 생각을 끊기 위해 습관적으로 루미큐브로 도피하고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적어도 무표정으로 Play Again 버튼을 내리 누르며 일고여덟 판이 넘어간다면, 분명 뭔가가 있는 것이다. 루미큐브는 절대 그 정도로 재밌는 게임이 아니다.



다시 앞으로 돌아가 루미큐브가 가장 오래 사용한 앱이 된 이유를 짚어봐야 한다. 나는 무엇을 회피하고 싶어했을까. 세탁기도, 냉장고도 없이 이삿짐만 뒹굴고 있는 집 구석, 새롭게 실행된 대출, 밀어닥치는 회사 일, 기어코 돌아온 연말? Play Again 버튼을 내리 누르며 계속 해서 새로운 숫자 카드를 받으면 그 순간은 잠시 머리가 멈춘다. 회피하고 있다는 상황은 자각하였으니 고비는 넘겼다고 해야 할까. 당분간 루미큐브는 비상약으로 핸드폰 용량을 차지하고 있을 것이다. 나는 소파만 들어와 있는 휑한 거실 한 가운데서 딸깍딸깍 같은 색의 카드를 맞춘다. (2023.10.26.)



* 에세이는 매주 금요일 업로드 됩니다.

* 정제되지 않은 날 것의 이야기는 블로그, 권모니 글방 에서 떠듭니다.

* 소식은 인스타그램과 스레드, @writer.moni 에서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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