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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 사귀기

아주 오랫동안 안면이 있었던 새 친구

by 글쓰는 권모니

동생들은 왜 이렇게 부족한 걸까. 한동안 친구들이 그 애의 소식을 궁금해하면 나는 눈꺼풀을 느리게 치켜뜨며 뭐, 알아서 하것지. 라고 대답하고 다녔다.


그 애는 대학 졸업 후 세무회계 사무실을 다니다 퇴사하고 취업 준비를 하는 중이다. 작년 부가세 신고가 끝나고 그만두었으니 전업 백수가 된 지는 일 년. 올해부터 아빠는 나를 볼 때마다 네 동생은 언제 취업할 건지 물어보라며 어깨를 툭 친다. 그 애 방에 붙어있는 메모 보드를 보면 열심인 것 같기는 하다. 운동도 하고 스터디도 하고 자소서에 쓸 직무 역량을 키운다며 혼자 이것저것 실험도 해 보고. 본인이 제일 힘들겠지 싶어 말을 아끼다, 한 번은 안부에 슬쩍 구직 활동 현황을 섞어 물어봤더니 언니한테는 뭘 말하기 싫어, 라는 벼락같은 대답이 돌아왔다. 그 뒤로는 입을 다물었다.






나는 아빠를 닮고, 그 애는 엄마를 닮았다. 발산하고 표출하는 아빠의 의사소통과 내면으로 침잠하여 표현까지 시간이 걸리는 엄마의 의사소통은 세대를 거쳐 재현되었다. 4년의 시간 차가 주는 언니의 지위는 아빠의 언어와 쉽게 엉겨 붙었다. 나는 그 애의 선택이 항상 못마땅했고, 여기저기 훈수를 두었다. 그 애의 언어는 어려웠으므로 나는 언제나 편한 대로 해석했다. 그래도 별문제는 없었으니까.


그 애가 이십 대 초반, 내가 이십 대 중반을 지나던 어느 날 엄마와 그 애와 함께 수원에 있는 이모네 집들이를 하러 갔다. 모두들 식탁에 둘러앉아 저녁을 푸지게 먹고 과일을 먹기 시작할 때쯤 시사 이슈 하나가 화두로 떠올랐다. 그때의 나는 지금보다 모든 것에 더 확신이 있었고, 맞다고 믿는 것들을 쉽게 떠드는 사람이었다. 그날도 확신만큼 강한 단어들을 써가며 내 생각을 신나게 이야기하고 있는데, 그 애가 내 말을 가로막았다.


그건 언니 생각이지.


그 자리가 어떻게 마무리되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서울로 돌아오는 일 호선에서 쏟아지는 당혹감과 부끄러움에 조금 울었던 것 같다.


한 번 물꼬가 터진 이후 그 애는 거침이 없었다. 내게 고압적이라고도 했고, 원하는 답을 정해 놓고 유도한다고도 했다. 그 애는 나의 짧은 문장에서도 희미한 구린내를 맡아내 길길이 날뛰었다. 그럴 의도가 없었는데 어디에서 구린내를 맡았다는 건지. 사과도 하고, 항변도 해 보았지만 그 애의 분노는 쉬이 사그라지지 않았다. 구린내를 너무 오랫동안 맡은 나머지 있지도 않은 냄새를 우기는 건 아닐까? 나는 지뢰를 피해 조심스럽게 발을 디디는 데 이력이 났다. 대화는 안전지대에서 맴돌았다.






몇 달 전, 회사 자기개발비를 소진할 목적으로 집 근처 요가원에 등록했다. 헬스장 GX나 원데이 클래스로 이 운동이 무엇인지 안다고 생각했는데, 첫 수업을 가자마자 내가 틀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요가는 요가원 앞에서 태우는 인센스 내음에서 시작해 수련실의 낮은 조도와 잔잔한 음악 속에서 몸을 낯설게 감각하고 호흡하는 모든 것을 포괄하는 경험이었다. 모든 감각이 예민하게 날 서 스스로도 어찌할 수 없는 날에도 수련실 매트 앞에 서면 모든 것이 잠잠해졌다.


그 애는 3년 차 요가인이었다. 어느 날 그 애에게 요가 해 보니 좋더라, 했더니 언제는 요가가 무슨 운동이냐고 했던 사람이, 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내가 그랬었지. 그 말을 했을 때 나는 주 6일 수영장을 가던 사람이라 심박수가 170이 넘지 않으면 운동 취급을 하지 않기는 했다. 나는 약간 긴장하며 말을 이었다. 네가 왜 요가를 꾸준히 했는지 알겠어. 요가는 몸으로 하는 명상이야. 별말 하지 않았는데도 그 애는 내가 느꼈던 감각을 정확히 이해했다. 그 애는 자신의 요가 이야기를, 남들보다 예민하고 내면으로 파고드는 자신을 탐색했던 시간에 대해 말해주었다. 기분이 묘했다. 그 애가 이미 몇 년 전부터 고민해 끝낸 탐색을 나는 이제야 시작하고 있었다.


나는 그 애가 항상 내 뒤에 있다고 생각했다. 일차원의 벡터값 위에서 내가 걸어가면 정확히 사 년의 거리를 두고 그 애가 뒤에서 쫓아오고 있다고. 내가 마주한 어려움을 그 애가 사 년 뒤에, 혹은 조금 더 늦은 때 맞닥뜨리면 나는 뒤 돌아 정답을 알려주었다. 답답아, 그거 아니고, 이쪽이야. 그날 깨달았다. 애초부터 그 애와 나는 같은 벡터값에 올라와 있지 않았다는 것을. 나는 그 애와 다른 세계에 살면서 정답을 알려준다고 오만을 떨고 있었던 것을. 그 애가 맡은 구린내는 환각이 아니라 진짜였다는 것도.






6월이 되자 그 애는 목요일마다 강의를 들으러 신촌에 왔다. 처음 두 어번은 별 말이 없더니 언젠가부터는 수업이 끝나면 돌아가기에 멀다며 신촌에서 버스로 20분이면 닿는 우리 집에 자주 자러 왔다. 내가 깨지 않도록 조심히 들어와 거실 테이블에서 그날의 수업을 정리하고 있으면 수면장애에 시달리는 내가 대중없는 시간에 침실에서 나왔다. 다시 잠들지 못하는 나를 두고 그 애는 오늘의 수업 내용을 조잘거렸다. 좋아하는 것을 배우는 즐거움은 스스로에 대한 불안과 의문을 동반하기도 했고, 훨씬 갖춰진 것처럼 보이는 스터디원에 대해 복잡한 마음이 들게도 했다. 사회생활에 지치고 닳아 낡아진 나는 그 애의 설레는 불안을 가만 지켜보았다. 해가 어스름 밝아오면 그 애는 하품을 길게 하고 내 침대로 들어가 잠을 잤다. 나는 거실 소파에 잠시 누워서 우리의 대화를 복기하다 출근 준비를 했다.


그 애는 부지런히 신촌과 내 집을 오갔다. 새벽의 대화도 이어졌다. 그 애는 한 주 동안 자신의 근황과 본가의 소식을 전해주었고, 종종 작문을 봐 달라 내밀었다. 나는 요즘의 상태를 공유하고, 상담에서 여운이 남았던 말들을 꺼내 놓았다. 우리는 몇 년 또는 몇십 년을 거슬러 기억을 맞대보기도 했다. 같은 부모를 가졌고, 같은 일을 겪었어도 각자에게 새겨진 무늬는 달랐다. 우리는 서로의 인생을 따라잡았다. 많은 것을 설명할 필요가 없었고, 많은 것들을 다시 설명해야 했다. 아주 오랫동안 안면이 있었던 새 친구를 사귀는 기분이었다. (2024.07.25)



* 에세이는 매주 금요일 업로드 됩니다.

* 정제되지 않은 날 것의 이야기는 블로그, 권모니 글방 에서 떠듭니다.

* 소식은 인스타그램과 스레드, @writer.moni 에서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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