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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또호레 May 29. 2022

게으른 완벽주의자로 산다는 것

피곤하다, 피곤해

게으르다와 완벽주의자. 부정적인 느낌을 주는 두 단어가 합쳐져서 오히려 상쇄되는 느낌으로 생각했다. 게으른데 완벽주의자라니. 사회생활 10년 차 쯤되야 한두 명 스치듯 만나볼 수 있다는, 성격 좋은데, 일도 잘하는 전설 속의 그 같은 느낌일까. 그러나 일반적인 시각에서의 이 성향은 고쳐져야 함이 마땅한 성향으로 여겨졌다.



게으른 완벽주의자: 일을 하기 위해 완벽하게 준비된 상태를 찾거나 제대로 할 수 없으면 안 하려는 태도.


실수 없이 완벽하게 일하고 싶고, 그래서 일을 시작하기 전에 고민이 너무 많아 준비하는 데 많은 시간을 쏟는 사람들. 누군가는 이상만 높고 노력하지 않는 허무주의자라 말했다.

이들은 실수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과 일을 완벽하게 해내야 한다는 압박감에 쉽게 괴로움과 불안함에 노출되곤 한다.



나에게 18,19년도는 이 성향의 절정을 보이던 때였다. 나는 취준생일까 직장인일까. 공부를 하는 직장인일까. 일을 하는 취준생일까. 세상이 나란 사람에 대한 정의를 어떻게 내릴까에 대한 쓸모없는 고민으로 시간을 헛되이 보냈다. 직장인의 역할도, 취업준비생의 역할도 제대로 해내고 있지 않은 느낌이 들었다. 둘 다 잘 해내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완벽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 괴리감이 나를 더 괴롭게 만들었다. 결국 둘 다 잘하고 싶은 마음에 둘 다 해내지 못했다는 옹졸한 결론에 다다르고 말았다.



현재 내가 맡은 업무에서도 그 면모를 여실히 보이고 있다. 매달 당월 할 일이 정해져 있고 거기에 더해 플러스알파가 조금 더 생기는 정도였다. 새 업무를 맡은 지 4개월 차가 되어 그 사이클을 4번 돌리고 보니 흐름이 머리에 들어왔지만, 결국에는 업무 기한이 다돼서야 부랴부랴 마무리 짓기 바빴다. 다양한 케이스가 많은 업무라 명확한 답은 없다 보니, 더 완벽히 조사하려다 결국에는 시간이 모자라 어느 하나 내 마음에 들게 해결하지 못했다. 민원인에게 무엇인가를 설명할 때도 실수 없이 정확하게 안내하고 싶었다. 제도에 대해 설명한 후 민원인들이 대답할 수 있는 모든 경우의 수를 따지고,  그들의 개인적인 사정까지 고려하곤 했다. 하지만 이렇게 업무를 처리하다 보면 빠르게 처리할 수 없었고, 무엇보다 감정의 소모가 심했다.


남편에게 폭력을 당한 후 자식들과 며느리에게 창피해서 말을 할 수도 없다며, 병실에 홀로 앉아 멍하니 병상 끝을 바라보던 공허한 눈빛.

무면허 사고로 젊은 아들은 장애를 가지게 됐고, 딸은 정신 병동에 있는데 이게 다 내 탓같다며 도와달라며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울음소리.


업무지침과 법은 정답을 어렴풋이 말하고 있었지만, 나는 그들의 상황을 완벽히 배제할 수 없었다. 결론적으로는, 업무지침대로, 법대로 할 수 없다는 게 나를 또 괴롭혔다.

제도가 그렇다는 것은 그렇게 처리할 수밖에 없음을 뜻하고, 그렇게 처리할 수밖에 없었다면 나는 최선의 업무처리를 했음을 뜻한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나는 내가 더 좋은 방안을 내길 원했다.



난 게으름을 지향하는 욕심 많은 성실한 노동자1에 지나지 않았다. 이것도 잘하고 싶고 저것도 잘하고 싶은데 모두 잘할 수 없으니 포기를 해버리고, 그런 나 자신을 원망하는 것. 나의 타고난 dna는 뭐라도 하지 않으면 불안에 휩싸여 눈앞에 다음 '가야만 하는' 길이 그려져 있어야 마음이 놓이곤 했다. 어느 게으른 사람들은 성실한 사람들을 부러워하겠지만, 나는 게으른 사람들이 가진 특유의 바이브가 맘에 들었다. 그들에게 은은하게 풍기는 본인에 대한 확신과 근거 없는 여유로움, 뭐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쿨함까지. 아등바등 계획을 세워야 진행이 되는 나는 그들의 느슨한 삶의 태도가 멋져 보였다.



나는 게으름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22살의 여름, 타 지역으로 이사 가는 날 당일부터 바로 아르바이트를 하기 위해서 그 전 주말에 아르바이트 면접을 봤던 나였다.

그렇다고 완벽주의자도 절대 아니었다. 일을 벌리고 서둘러 마무리 짓기 바빴고, 마무리도 못하고 던져버린 일이 수도 없이 많다. 하지만 게으름과 완벽주의자가 합쳐지니 이상하게 나를 지칭하는 단어가 만들어졌다. 내가 원하는 나의 기준이 너무 높지만, 나는 내가 원하는 내가 되질 못했다. '귀찮아서', '바빠서',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를 둘려대며 내가 이 일을 제대로 해내지 못했던 이유에 대한 방어책을 세우는데 능숙해졌다. 이런 상황에서는 제대로 된 시작을 할 수 없다고 '포기'와 '다음'을 운운하는 일이 늘어갔다. 비겁했다.


이런 나와 다르게 세상에는 반짝반짝 빛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인스타그램을 깔고 지우고를 반복하며 나를 괴롭히는 나의 비교 대상들이 내 눈앞에서 사라져 주길 바랬다.

그러나 이 방법은 비새는 천장 아래 세워둔 대야와 같은 임시방편 일 뿐, 다시 내 눈앞에 나를 시험에 들게 하는 대상 군이 나타나면 길길이 날뛰었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꿔보겠다는 당찬 포부는 박수받아야 함이 마땅하나, 안타깝게도 세상의 많은 일들은 결과로 평가받았다. 그래서 결국 내가 얻게 된 결과는 무엇인가.


성실한데 게으르고 싶고, 게으르면 답답하고, 다 완벽하게 잘 해내고 싶은데 결국 아무것도 해내지 못하는 나약하고 초라한 내가 남아있다. 나에게 필요한 것은 '내려놓음'이었다. 시도도 해보지 않고 포기하는 자조적 태도에서 물러서겠다는 것.  그래서 나는 글쓰기가 좋다. 부족하지만 솔직한 나를 담아내고 어느 순간에나 꺼내볼 수 있다는 것. 불완전한 나를 두고두고 인정할 수 있다는 것. 완벽하지 않으면 어떠한가. 성공하지 못하면 의미 없는 삶이라고 할 수 있는가. 불완전한 나를 인정하고 '조금 덜 실패' 하며 살아가도 충분한 삶이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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