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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날의 햇살 Aug 01. 2020

나를 나답게 해주는 그것.

오롯이 '나'를 위한 시간

30대가 되기 전에 연년생 형제의 엄마가 되어 맞이한 나의 서른은 수유티는 반쯤 열려 있고, 종종 거리면서 정신없이 이리저리 움직이는 그야말로 멘붕의 상태였다. 

오로지 모유수유만 원하는 둘째는 나의 껌딱지처럼 혹은 액세서리인 양 항상 내 몸에 붙어있었고, 그런 상태로 호기심이 많고 활동적인 첫째를 따라다니기 바빴다.

오늘 내가 세수를 했었는지, 이는 닦았는지 조차 기억이 나지 않는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이 똑같은 하루하루를 육아의 쳇바퀴 속에 쉼 없이 굴리고 있었다.


쳇바퀴를 굴리는 나날이 늘어갈수록 점점 나를 잃어가는 느낌이었다. 놀이터에 나가면 나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은 없고, 그저 아이의 엄마로만 불렸다. 어쩌다가 외출을 해도 나는 그 무리 속에서도 누구의 엄마, 혹은 누구 씨의 와이프였다. 그 어디에도 내 이름은 없었다. 


나를 다시 찾고 싶었다. 예쁜 옷, 반짝이는 구두, 작은 가방을 가지고 외출을 하는 '나'를 꿈꾸며 그런 나를 찾고 싶었다. 그런데 현실은 삐죽삐죽 잔디머리에 눌어진 수유티를 입고 있는 커다란 기저귀 가방을 메고 있는 동네 아줌마. 그런 내 모습이 너무나도 싫었지만, 나의 현실은 연년생 형제 독박 육아였다. 첫째는 혼합수유를 해서 친정에 가면 잠시 맡겨두고 외출도 가능했었는데 둘째는 오로지 모유만 먹는 아기였다. 게다가 아직 기저귀를 하고, 말도 못 하는 첫째까지 있었기에 이젠 더 이상 두 아이를 두고 혼자 외출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리고 그렇게 아이들을 두고 어딜 나가는 것조차 이기적인 엄마로 생각되었던 의기소침하고 소심한 엄마가 바로 나였다. 조금 더 쿨해지지 못하고 종종 거리며, 아이들 밥과 잠을 걱정하는 엄마. 그렇게 나는 아이의 시간에 맞추어서 살아가고 있었다. 그렇게 나의 시계는 멈추었고, 나는 아이들의 시계만 바쁘게 쫓고 있었다. 




나의 시간을 찾기 위한 시작은 아이들이 자는 시간에 하나씩 시작되었다. 아이를 임신하면서 접었던 내 꿈, 7년 만에 다시 시작한 임용고시 공부였다. 처음에 공부를 시작할 땐 그동안 굳어져 버린 머리로 인해 책의 한 줄도 넘어가지 못하고 뱅뱅 머릿속에 맴돌기만 했다. 한국사 3급을 통과해야 임용고시를 칠 수 있는데 그 한국사 시험에서 조차 매번 탈락을 하고 있었다. 이래선 안 되겠다 싶어 100일 동안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서 공부를 하기로 했다. 아이들을 재우다 같이 잠들어 버리기 일쑤여서 차라리 새벽에 일찍 일어나서 공부를 하는 게 낫겠다 싶었다. 

그렇게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서 한국사 강의를 듣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눈도 떠지지 않고 몸도 천근만근에 일어나는 것조차 너무 힘들었다. 그렇게 하루 이틀... 새벽공부를 하다가 꾸벅거리며 조는 한이 있더라도 꾸역꾸역 일어나서 나의 시간을 찾았다. 하루 2시간 남짓한 시간이었지만, 나는 나를 위한 시간의 조각들을 차곡차곡 소중하게 모아갔다. 

매일 4시에 일어나서 공부하는 나를 위해 스스로 보상을 주기로 했다. 하루 1천 원씩, 그렇게 100일을 성공해서 꿈 통장에 10만 원을 모았다. 그 돈으로 100일 성공 후, 전신 마사지를 받았다. 꿈처럼 달콤한 시간, 어차피 내 돈이었지만 세상에서 가장 값진 돈과 나만을 위한 시간이었다. 


다음 해, 본격적인 임용 공부를 하면서 매일 나만의 시간을 조금 더 확보하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유치원에 있는 시간인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까지가 오롯이 혼자 있는 나만의 시간이었다. 그 시간은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오로지 '나'만을 위해 썼다. 거실과 방에 옷가지와 장난감이 널브러져 있더라도, 쿨하게 무시한 채 핸드폰을 식탁에 두고 커피를 한 잔 타서 방에 들어와서 앉았다. 그리고 책을 펴고 공부를 시작했다. 그 시간만큼은 누구의 엄마도 아니었고, 누구의 아내도 아니었다. 그저 임용고시 수험생인 '나'만 있었다. 내가 원하는 공부를 하고 내가 원하는 시간에 강의를 듣고, 내가 원하는 대로 시간을 계획해서 쓸 수 있었다. 


처음에는 공부하는 시간이 힘들고 어려웠지만, 하루하루 지나며 어느 순간 그 시간을 즐기고 있었다. 그 시간은 오롯이 '나'를 위해서, '나'로 살아가는 시간이었다. 뒤늦게 다시 시작한 공부가 지치기도 하고 굳어버린 머리를 탓하기도 했지만, 그 시간만큼은 너무 달콤하고 짜릿했다. 그 시간은 어느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나'로 살아 숨 쉬는 시간이자, 나를 나답게 해주는 시간이었다. 


그렇게 '나'의 시간을 차곡차곡 채워 공부한 결과, 나는 임용고시 공부를 시작한 지 10년 만에 최종 합격을 했다. 그리고 그제야 알게 되었다. 나는 나만의 시간이 필요한 사람이라는 것을. 그 시간이 나를 가장 나답게 만들어주는 시간이라는 것을 알았다.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도 분명히 행복하고 좋은 시간이다. 하지만, 오롯이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채워질 때 비로소 나는 '나'로서 행복을 느낄 수 있었다. 




"마침내 나는 먹는다는 것은 숭고한 의식이며, 
고기, 빵, 포도주는 정신을 만드는 원료임을 깨달았다."
-그리스인 조르바-


얼마 전에 책을 읽다가 이 문장이 나의 가슴에 꽂혔다. 스스로 '나에게 정신을 만드는 원료는 무엇일까?'라는 물음을 스스로에게 했을 때, 나는 단번에 대답할 수 있었다. 그것은 혼자 오롯이 누리는 '나만의 시간'이었다. 나를 나답게 만들어주는 시간. 고기와 빵, 포도주를 먹듯이 나는 나만의 숭고한 의식인 나의 시간을 먹는다. 오늘도 나는 나만의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새벽에 일어나서 책을 읽고, 아이들이 잠들고 나서 조용한 시간에 글을 쓴다. 나를 오롯이 '나'로 즐기며 누리기 위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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