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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윤 Aug 22. 2022

조 블랙의 사랑

멈춤이 아닌 느림, 그 포용성

영화 머니볼의 주인공 브래드 피트가 주연을 맡은 '조 블랙의 사랑'(Meet Joe Black/1998년)에는 아쉽게도 야구가 직접 등장하지는 않는다. 그래도 이 영화는 메이저리그와 꽤 인연이 깊다.


저승사자가 교통사고로 죽은 젊은 남자의 몸을 빌려 현세에 나타난다. 억만장자인 윌리엄 패리쉬를 저 세상으로 데리고 가는 데 목적이 있지만, 인간 세계에 흥미를 느껴 휴가를 보내기 위한 것도 있다.


저승사자는 하루 24시간 내내 윌리엄 곁을 떠나지 않는다. 윌리엄이 경영하는 회사의 이사회에도 참석하고 가족 식사 자리도 함께한다. 그 식사 자리에서 윌리엄의 장녀가 저승사자에게 이름을 묻는다. 뜻밖의 질문에 당황한 윌리엄은 만만한 "조"라고 말한다. 조라는 이름에 오른팔 격인 드류가 성도 묻는다. 그러자 윌리엄은 "블랙"이라고 대답한다.


저승사자에게 조 블랙이라는 이름이 생기는 순간이다. 그때 장녀의 사위가 "조 블랙, 1952년 브루클린 다저스에서 15승 2패"라고 말한다. 야구 '덕후'다운 기억력과 순발력이다.



확실히 조 블랙이라는 선수가 있었다. 재키 로빈슨과 돈 뉴컴에 이어 3번째로 브루클린 시절의 다저스에 입단한 흑인 선수다. 1952년 56경기에 등판해 15승 4패, 평균자책점 2.15를 거뒀다. 15승 가운데 구원승만 14차례. 여기에 15세이브를 올렸다. 즉, 불펜 에이스였으며, 이 활약으로 이해 신인왕을 차지했다.


그러나 이후로는 눈에 띄는 성적을 남기지 못했다. 2년 차인 1953년에는 불펜으로 6승을 거두는 데 그쳤고, 1955년 시즌 도중에는 신시내티로 트레이드됐다. 1957년에는 워싱턴(현 미네소타)으로 옮겼다가, 이해를 끝으로 유니폼을 벗었다. 메이저리그에서 통산 6시즌을 뛰며 30승 12패 25세이브, 평균자책점 3.91을 남긴 채.


월드시리즈에는 다저스 시절 1952년과 1953년에 경험했다. 4차례 등판해 1승 2패, 평균자책점 2.82. 그러나 우승은 어느 해나 모두 뉴욕 양키스의 몫이었다.



조 블랙의 야구 인생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짧고 굵게'. 신인왕으로 역사의 한 페이지에 이름을 남겼지만, 대부분 그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한다. 확실히 프로의 세계에서 화려한 출발이 그 후의 야구 인생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그 산뜻한 출발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노력은 물론, 운도 따라야 한다. 그런 점에서 프로의 세계에서 미덕은 불같은 사랑이 아니라 꾸준함이다.


이 영화도 그렇다. 템포가 처음부터 느리다. 다른 영화라면 느리게 시작했다가도 중간에 빨라진다든지 변화가 있다. 그런데 이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시종일관 느리다. 마치 선수 시절 성준 삼성 코치의 투구를 보는 듯하다.


느림은 주변의 변화를 거스러지 않고 순응•포용하면서 나아갈 수있다. 즉.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그것에 맞추어 나가라.' 이것이 이 영화의 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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