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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ytimeMoon Oct 10. 2017

'나는 이 세상의 유일한 인간이 아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레몬'을 읽고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나는 이 세상의 유일한 인간이 아니다'

'레몬'을 읽고




‘레몬을 생각만 해도

입에 침이 고이는 거처럼

이 책을 읽고 나면

“레몬”으로 머릿속이

가득 찰 것이다.’     



책 ‘레몬’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이다.

사실 이 한줄 만으로

리뷰를 끝내도 될 것이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서스펜스, 판타지, SF, 로맨스,

그리고 내가 애정 하는 스릴러 작품까지

다양한 장르의 다작 작가면서

탄탄한 작품성까지 겸비한 흔치 않은 작가이다.


앞서 말했듯 그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르는

바로 스릴러인데 ‘레몬’의 경우 책 표지에

“인간의 통찰과 감동으로

깊은 여운을 남기는 히가시노 게이고

최고의 메디컬 스릴러”라고 소개하고 있다.                      


히가시노 게이고 作 '레몬'의 표지

                                                                                           

이 책의 줄거리를 간단히 소개하자면

다른 가정에서 자랐지만

쌍둥이처럼 똑같이 생긴

 두 여자가 자신들을 둘러싼

출생의 비밀을 파헤치는 메디컬 스릴러이다.


책은 주인공 ‘마리코’와 ‘후타바’

각각 두 명의 시점에서

한 챕터씩 번갈아 이야기를 풀어간다.


마리코와 후타바는

서로 전혀 다른 환경에서 자랐지만

같은 의문점을 가지고 있다.


바로 ‘왜 나는 부모님/엄마와 안 닮았을까?’


그리고 두 주인공은

놀랍게도 비슷한 시기에

자신들의 출생에 대한

의문을 풀려고 행동한다.

(비록 후타바는 출생에 대한

의문보다는 어머니의 죽음을

시작으로 행동하지만

 결국 어머니의 죽음 또한

출생의 비밀에 연관되어있으니

같은 맥락으로 보자)                


(이 부분부터 책에 대한 주요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스포일러가 싫으신 분들은 뒤로 가주세요!)



시모조 선배는 아무 말도 없이

눈을 감고 가만히 있었다.

나는 일어섰다.

그때 그녀가 물었다.

“홋카이도에는 혼자 돌아갈 거야?”

“그럴 거예요.”

나는 대답했다.

형광등 소리가

여전히 신경에 거슬렸다.

-본문 중에서     



사실 두 소녀가 오롯이

자신들만의 힘으로

출생의 비밀을 알아내기란

 결코 쉽지 않다.


그래서 일까? 마치 영화처럼

두 명의 조력자가 주인공들을 도와준다.


바로, ‘시모조 선배’와 ‘와키사카 고스케’!


두 사람은 각각 데이토 대학 의학부 소속,

출판사 편집부 소속으로

주인공들이 결정적인 단서를

찾을 수 있도록 돕는다.               



1. 조력자

사실 처음엔 의문이 들었다.

왜?


그들은 왜 자신들과

전혀 상관이 없는 사람들의

출생의 비밀 찾기에 이리 적극적일까?

어떻게 주인공이 필요로 하는 정보들을

척척 알아올까?


바로 여기서 히가시노 게이고 특유의

‘인간의 본성’에 대한 묘사가 나온다.


저 두 사람이 주인공을 돕는 이유는 간단하다.


주인공들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각종 영화와 드라마, 소설에서는

운명, 인연을 빙자로

헌신적인 조력자들이 주인공을 돕는다.


물론 이는 주인공들이

사건을 좀 더 쉽게 혹은

극적으로 해결하게 해준다.


그러나 현실에서

이러한 조력자들이 찾기 힘들다.


그래서 히가시노 게이고는 다른 방법을 쓴다.


이야기 흐름을 위해

조력자를 배치하고

그들 안의 인간의 본성을

살려서 그려낸다.


이는 두 조력자를

단순하고 순종적인 평면적인 캐릭터가 아닌

주체적인 입체적 캐릭터로 만들고

독자들에게도 현실적으로 다가가게 된다.     



“루이비통의 이미테이션이

싸구려로 팔리듯,

아무리 귀중한 문서라도

 복사본은 간단히 파기되듯,

그리고 위조지폐가

화폐로 통용될 수 없듯이

내 존재에도

이렇다 할 가치가

없는 게 아닐까?”

-본문 중에서                    




2. 클론

이 책을 읽은 사람들이라면

어쩌면 ‘클론’에 대해 검색을 해봤을 수도 있다.


주인공들의 출생의 비밀은 바로 클론이다.


그들은 한 여성의 난자로

체외수정을 통한 핵이식으로 만들어진 클론이다.


그들은 쌍둥이도 가족도 아닌,

그저 한 여자의 복사품일 뿐이다.


( 메디컬 스릴러인 만큼 자세한

의학지식이 나오나

나는 문과생이므로

이 정도가 최선이다.)


사실 클론은 SF의 단골소재이다.


각종 SF 영화, 소설에서

자주 나오는 클론은 범미래적이며

첨단 과학의 산 증거이다.


그러나 여기선 그렇게 다가가지 않는다.


세상에 하나뿐인 사람인 줄 알고 살았던

‘내’가 그저 누군가의 복제품일 뿐이라면

어쩌면 내가 살아온 삶 역시

진품 아닌 가품으로,

이미테이션으로 치부되는 듯한

비참함과 허무함으로 표현해낸다.


그리고 클론이 두 주인공을 이용해

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우려는

‘악’의 존재도 등장한다.


대부분 소설에서 ‘악’한 존재가

얼마나 비열하고 이기적인지

그들의 악함을 설명한다.


그래서 주인공은 선,

악역은 악으로 분리하여

악을 처단하고 결국 벌을 받는 권선징악의 구조로

독자들에게 긴장감과 카타르시스를 주고

스릴러를 읽는 독자들 또한 기대하는 바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그러한 권선징악도 없고

(그렇다고 악이 원하는 바는 이루는 건 아니니깐

허무해 하지 않아도 된다.)

‘악’이 얼마나 악한지 서술하는데

많은 페이지를 소모하지도 않는다.

(그래서일까?

 ‘악’역을 악역이라고 하기도 참 모호하다.)


두 주인공이 그들이 존재에 대한 의문을 품고

의문을 풀기 위한 여정에서

그들을 둘러싼 비밀만으로도

충분히 긴장감을 주며

자신들이 클론이며

단지 연구와 실험에 의해

태어난 클론이라는 사실이 밝혀졌을 때

그들이 느끼는 충격과 허탈함,

공허함과 같은 감정들을 묘사하며

온전히 두 주인공에 집중한다.

이렇게 인물을 묘사하고

주인공들의 감정과 심리에 집중하는

히가시노 게이고 만의

특별한 스릴러를

내가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녀가 웨스트 백에서 꺼낸 것은

내가 그녀에게 준 것과

똑같은 레몬이었다.

나는 깜짝 놀라 그녀를 바라보았다.

“치토세에서 주운거야.”

그녀가 말했다.

나는 그녀에게서 받은 레몬을

내려다보고, 다시 그녀를 바라보았다.

“평소 레몬은 어떻게 먹어?”

내가 물었다.

“물론,이렇게”

내 눈앞에 있는 또 한 명의 나는

아침 햇살에 하얀 이를 빛내며,

아직 푸른빛이 남아 있는

레몬을 베어 물었다.

-본문 중에서          




3. 레몬

두 주인공은 사실 클론이기 때문에

가족이라고 보기도 애매하다.


그리고 외형만 같을 뿐이지,

살아온 환경과 성격이 전혀 다르기 때문에

 이 둘이 쌍둥이라고 보기도 힘들다.


그래서 서로가 서로에게

무슨 감정이나 느낄까 했지만

이 둘이 서로에게 진심이 통하게 해주는 것이

바로 ‘레몬’이 아닐까?

(자세히 애기하면 레몬을 마치 사과처럼 껍질도 까지 않고 통 채로 먹는 '방식'이다.)


누군가는 결말에서

후타바가 마리코를 구하려 하고,

마리코가 후타바에게

운명적인 이끌림을 느끼게 되는 게 말이 안된다고

둘의 공통점은

고작 레몬을 먹는 방식밖에

없지 않느냐고 한다.


이 책을 읽은 내 친구 역시

어째서 레몬이

책 제목이 되는지 모르겠다고

레몬은 책을 통틀어

서너 장면밖에 나오지 않는다고 말이다.


그러나 나는 이 책에서 레몬이

너무나 크게 느껴졌다.


책을 읽다보면

도대체 둘이 왜 똑같이 생길 걸까,

둘이 무슨 관계나 있을까라는 의문점이 들 때쯤

레몬이 나와 이러한 의문점을 해소해준다.


오히려 레몬이 많이 나오지 않기 때문에

더 결정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마리코와 후타바가 레몬을 먹는 장면을

한 번씩 보여주는 것만으로  

둘 사이에 보이지 않던 선들을 연결해주며

독자로서 하여금

이 둘의 관계에 대한 궁금증을 자아내

책을 손에서 놓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지막에 서로 마주보며

레몬을 먹는 장면으로 끝날 때는

‘악당을 물리치고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라는

 진부하지만 안도감을 주는 결말보다도

더 오래 가슴에 머문다.


그 장면을 통해 ‘아, 이제 이 둘은

자신들의 비밀을 풀고

그 비밀을 통해 느낄

수많은 부정적인 감정과 생각을

서로서로 보듬으며 살겠구나’라는 느낌을 준다.


그렇게 악을 처치하고 벌을 주는 것보다도

레몬만으로 독자들이

오롯이 두 주인공에 집중해

그 두 주인공의 삶에 어울리는

결말이 만들어주는 소재이기 때문이다.          





P.S. 사실 이 책의 원제는 분신(分身)이다.

우리나라에 책이 들어오면서

레몬으로 제목이 바뀌었는데

 영화 ‘로맨틱 홀리데이’의 원제가

홀리데이였던 걸

로맨틱 홀리데이로 바꾼 게 더 좋았던 거처럼

 ‘레몬’ 역시 원제를 잘 바꾼 사례라고 생각된다.


P.S. 2 이 책의 첫 부분에서는

마리코가 자신의 외모가

부모님과 전혀 닮지 않고

어쩌면 자신이 입양아라

 엄마가 자살하고

아빠 역시 자신을 멀리한다고 생각하는데

뒷부분에서 엄마의 진심과

아빠가 자신을 희생하며

딸을 구출해내는 장면을 통해

모정과 부정 모두를 느낄 수 있다.


P.S. 3 여기서 국회의원이

자신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이 사단이 난 건데

하여간 있는 것들이 더하다는 사실은

한국이나 일본이나 똑같은 거 같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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