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밍크이다. 내가 살던 곳은 이 세계의 끝, 남극 앞바다였다. 우리 바다는 차가웠지만 햇살에 반짝이는 웅장한 빙하들로 둘러 쌓인, 세상에서 가장 멋진 곳이었다. 수면 위로 헤엄쳐 올라 바라본 바다는 짙은 청록색이지만 바닷속 깊이 헤엄칠 때는 연둣빛의 에메랄드처럼 영롱했다.
나는 엄마, 아빠, 그리고 할머니가 함께 살고 있었다. 우리 동네 바로 옆에는 펭귄들이 사는 마을이 있었다. 아주 오래전에는 우리 고래와 펭귄들이 아주 사이좋게 살았다고 한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고래와 펭귄들 사이에 먹을 것을 사이에 두고 큰 싸움이 일었다. 고래와 펭귄들은 주로 빙하 주변에서 쉽게 잡을 수 있는 크릴을 먹는다. 인간들은 크릴이 새우와 비슷하다고 생각한다는데 엄연히 그 모양과 맛이 다르다. 예전에 크릴은 남극 바다에 차고 넘쳐서 펭귄은 고래에게, 고래는 펭귄에게 서로 양보하고 나눠주며 살기도 했단다. 그런데 점점 바다 주변으로 크릴을 잡는 인간들 배가 자주 등장했다.
“엄마, 인간들도 크릴을 좋아해요?”라고 물어본 적이 있다.
“글쎄다. 인간들은 못 먹는 것이 없는 종족이라지만 크릴까지 먹을 줄은 몰랐다. 저 멀리 바다에 다녀온 옆집 아저씨 말로는 요즘 인간들 세상에 크릴 오일이라는 것이 아주 인기라더구나. 인간들은 몸에 좋다고 하면 뭐든 잡아먹거든.”
아무리 인간들이 우리의 먹이를 잡아간다고 해도 나는 걱정할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사는 남극은 매일 같이 새로운 생명이 다시 태어나는 축복의 땅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바닷가에 이상한 일이 생겼다. 우리가 사는 남극은 눈이 많이 내리는 곳인데 어찌 된 일인지 눈보다 비가 더 많이 내리기 시작했다. 눈이 내리면 친구들과 수면 위로 뛰어오르며 폭신하고 차가운 눈송이를 받아먹는 재미가 있었는데 비가 오는 날은 수영하기도 더 힘들었다.
우리 마을에 사는 어른들도 처음에는 도무지 무슨 일인지 알 수 없어했다. 비가 계속 내리기 시작하면서 마을에 나이 든 고래들이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다. 모두들 처음에는 그저 나이가 들어 자연스레 아픈 것이려니 했다. 건강하셨던 나의 할머니도 점점 말수가 줄어들고 기운이 없다면서 좀처럼 움직이지 않으셨다. 할머니와 함께 따개비를 잡고 해초를 가꾸던 할머니 친구들도 같이 아프기 시작했다. 결국 우리 마을에 살던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갑작스레 하늘나라로 떠나셨다. 우리는 큰 슬픔에 잠겨서 한동안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몇몇 어른들은 그저 슬픔에 빠져 있을 수 없다고 했다. 결국 아빠를 포함함 용감한 몇몇 고래 아저씨들은 이 바닷가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아보러 떠나셨다. 펭귄들과 사이가 좋지 않았지만 바다에 관한 정보는 펭귄들이 알고 있을 거라 했다. 옆집 미우의 말로는 펭귄 마을에도 어린 펭귄들이 많이 아프고 죽어서 우리처럼 많이 슬퍼한다고 했다. 대체 이곳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분명 펭귄들은 뭔가를 알고 있을 거요. 여기 남극을 연구하는 인간들이 펭귄들이 사는 땅에는 종종 나타나니 아마 펭귄들은 그들에게 들은 정보가 있겠지. 당신은 걱정 말고 밍크와 건강하게 지내고 있으시오.” 아빠는 엄마에게 그리 말하고 떠났다.
아빠가 집을 떠나 있는 사이 할머니를 잃은 슬픔에 빠져 있던 엄마도 할머니와 비슷한 증상으로 아프기 시작했다. 엄마의 위엄 있고 아름다웠던 몸이 점점 작아지고 있었다. 나는 최대한 크릴을 잡아서 엄마에게 드렸다. 그러나 엄마는 그토록 좋아하던 크릴도 잘 드시지 못했다.
얼마 후, 그토록 기다리던 아빠가 다른 탐사대 어른들과 돌아왔다.
“아빠, 보고 싶었어요. 엄마가 많이 아프세요. 우리 어떻게요? 으앙….”
나는 아빠를 보자마자 그동안 참아왔던 슬픔과 두려움이 눈물과 함께 왈칵 쏟아졌다.
“밍크야, 걱정 말거라. 우리는 지금부터 여행을 떠날 거야. 지금 바닷가에 큰일이 일어나고 있는 모양이다. 남극의 얼음들이 녹아서 우리가 사는 바다의 온도가 점차 오르고 있는 중이라는구나.”
“왜 갑자기 얼음들이 녹는 거예요? 비가 와서 그런 거예요?”
“그건 펭귄들도 정확히 설명은 못했지만 아마 인간들의 욕심이 이 지구를 아프게 하고 있는 모양이야.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은 것이겠지. 우리가 먹을 크릴을 욕심내서 잡는 것처럼 말이다.”
“그럼 우린 이제 어디로 가요?”
“분명 우리가 살 만한 더 좋은 바다가 있을 거다. 더 차가운 바다를 찾아갈 수 있을 거야. 어서 준비해서 떠나자꾸나.”
그렇게 우리 가족과 이웃들은 아주 오래전부터 살 던 그곳을 떠나 새로운 바다를 찾아 떠나는 중이다. 우리 가족이 다시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그곳에 닿는 꿈을 꾸면서 말이다.
딸이 그린 그림덧) 11살 딸이 그린 그림에 엄마의 상상력을 더해 동화를 썼습니다. 아이의 고래 그림을 한참을 들여다보면서 다큐멘터리, <남극의 눈물>에서 봤던 바다 생물들이 떠올랐습니다. 지구 온난화와 인간들의 무분별한 포획으로 점점 위험에 빠진 펭귄과 고래들. 그들이 부디 저 그림 속 세상처럼 아름다운 곳에서 안전하게 살아가길 꿈꿔봅니다.
참고기사 2: <지구 온난화로 사라져 가는 남극의 펭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