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춰있는 것들
집의 한편 한편이 다른 사람의 흔적들로 채워져 있다. 누군가는 곁에 있고, 누군가는 곁에 있지 않다. 오늘 나는 창 커튼 뒤로 들어오는 희미한 새벽빛에 눈을 떴다. 평소라면 조금 더 잘 수 있었을 텐데.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깨어버린 원망스러운 마음을 핸드폰에 대신 쏘아 보냈다. 30분 전. 곧 울릴 알람을 종료할까요.
터덜터덜 걸어 나간 거실엔 어제 저녁의 어스름이 남아 있는 듯했다. 은회색 창 바깥으로는 가을바람이 살살 불고 있는지, 그곳을 빽빽이 뒤덮은 파란 잎사귀들이 천천히 흔들렸다. 그와 반대로 창 안쪽엔 한 치의 미동도 없이 숨을 죽인 화초들이 노란색 베란다 장판을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것들은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 것처럼, 고요하게, 어제와 똑같은 모습으로, 고작 손가락 몇 뼘에 지나지 않는 흙 속에 뿌리를 박고 있었다.
그곳은 정지한 공간이었다. 나 말고는 아무것도 숨을 쉬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그렇게 집의 본질이 '정지함'에 있다는 생각이 들자, 이상하게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을 느꼈다. 이곳은 무엇이든 그대로 있는 공간이었다. 변하지 않는 공간, 무엇이든 그대로 간직할 수 있는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몇 뼘에 지나지 않는 흙에도 삶을 이어나갈 수 있는, 그런 공간이었다.
고개를 돌려 소파 위에 다른 '정지한 것'들을 봤다. 언제부터 차곡차곡 쌓여 온 인형들이었다. 사실 이제 나는 누가 언제, 어떤 인형을 주었는지 모두 기억하지 못한다. 다만 예전의 내가 귀여운 인형들에 욕심을 냈어서, D와 함께 홍대 오락실에서 포켓몬 인형을 뽑거나 Y에게 라이언 인형을 생일선물로 받았던 기억을 할 수 있을 뿐이다. 왜 여럿 인형들 중에 그것들만 잘 기억하고 있는지 생각해봤다. 그리고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아마도 소중함의 차이였을 것이라 짐작했다.
사실 나는 예전부터 이런 인형들처럼, 다소 쓸모없더라도 집 한 구석에 멈추어둘 수 있는 잡동사니를 받고 싶어 했다. 그래서 나도 좋아하는 사람들의 생일마다 그와 비슷한 잡동사니를 주곤 했다. 쓰기엔 애매하고, 버리기엔 아까운 것들. 그래서 집이나 차 한편을 차지해야 하는 것들. 그래야 가만히 간직하고, 간직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커피나 베이커리 같은 일회용 교환권을 주는 사람들이 미웠다. 그런 교환권들처럼 곧 증발해버리는 관계가 싫었다.
글을 쓰다 보니 나는 집착이 많은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다. 어떻게든 남기고 싶어 하는 사람. 사실 어렸을 적 나는 마음을 그저 마음으로 남기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표현에 능숙하고 친절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살아가면서 나는 어느새 선물로, 아니 잡동사니로 마음을 표현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어느새 홀로 멈춰있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