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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재우 Jul 30. 2022

전시

이해되지 않는 사조

나는 벽면 한쪽에 덕지덕지 발라진 색 덩어리를 보고 있었다. 그림의 주인은 마치 떡진 머리를 억지로 빗어넘기려는 사람처럼, 거친 터치로 물감들을 이리저리 옮겨보려다 실패한 것 같았다. 나는 그렇게 남겨진 붓 끝의 감정선을 지켜보다가, 문득 왜 이곳에서 이런 작품을 보고 있는지 헷갈렸다. 나는 그렇다 치고 저 사람들은 왜 이 산만한 그림들을 보고 있는 걸까. 저렇게 우아한 표정을 지은 채로. 그보다 우아하게 꾸며진 옷들로 치장하고선.


한남동의 갤러리를 돌아다니다 보면 문득 드는 생각이 있다. 나는 정말 이곳에 예술작품을 감상하기 위해서 왔을까. 아니면 갈 곳 없는 노숙자처럼 단순히 시간을 죽이기 위해서 왔을까.  사람들은 이 그림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작가의 마음을 이해는 걸까. 그의 세계가 어떻게 이루어져 있는지 짐작이라도 된 것일까. 어쨌든 그들은 괴랄할 정도로 추상적인 언어로 꾸며진 팸플릿의 작품 설명을 들여다보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 정말로?


아마 대부분의 예술가들은 그런 것 같다. 그들은 노숙자들의 왕이다. 아무 목적도 방향성도 없이, 설렁설렁 돈과 시간을 죽이는 노숙자들의 왕. 그리고 그날 나는 그런 멍청이들 중 하나였다.


...

과거의 내가 했던 모든 일들도. 그렇게 엉기성기 칠해진 물감과 같았다. 몇몇 노숙자들의 거짓 칭찬을 받으며 뭉쳐진 물감들. 나는 그러한 것들이 언젠가 형체를 띠고 만다는 사실이 두려웠다. 마치 지워지지 않는 낙인처럼, 나를 아무렇게나 정의할 것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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