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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young Abby Lee Nov 12. 2020

중국 자가격리 호텔 밥은 맛있을까?

[자가격리편 #2] 생활수칙부터 식사 후기까지

자가격리 2일 차.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살에 눈을 떴다. 전기장판 덕에 푹 잤다.

둥근 해가 떴습니다. 랄랄라

안내 서류에 적혀있던 생활수칙 몇 가지를 적어보면 다음과 같다.

[1] 격리 해제 일자

‘입소 일자+14일’이 격리 해제일이다. 예를 들어, 9월 9일에 입소했으면 9월 23일에 격리 해제이다. 즉, 입소일 포함 15일 간 있어야 한다. 중문 서류에는 해제일이 정확하게 적혀 있었는데, 영문 서류에는 공란이더라.

중국에 살려면 중국어를 꼭 할 줄 알아야 겠다

[2] 식사 시간

1) 아침: 오전 7시~7시 반

2) 점심: 오전 11시~11시 반

3) 저녁: 오후 5시~5시 반


원칙적으로 배달음식과 택배는 불가이지만 꼭 필요한 물품이 있으면 직원이랑 사전에 협의해야 한다.

중문 서류랑 뉘앙스가 다름

결론적으로 배달 음식 가능. 배달 음식 가능 여부는 호텔마다 다르다고 한다.


직원 안내에 따르면 배달 음식과 택배는 직원들이 도시락을 배달해줄 때만 받을 수 있다. 7시 전, 11시 전, 저녁 5시 전에 호텔 로비에 도착해야 바로 배달해주고, 만약 이 시간을 넘기면 다음번 밥시간에 배달해준다.


[3] 체온 측정

체온은 오전(9시~11시), 오후(2시~4시) 하루에 두 번 측정한다.


[4] 쓰레기 배출

쓰레기 수거는 정오에 하니 그전에 문 밖에 배출해야 한다.


[5] 가격

가장 중요한 가격. 내가 머문 호텔은 숙박비 220위안/일(3.7만 원), 식사비 60위안/일(1만 원). 아침이 10위안, 점심&저녁이 25위안이다. 하루에 5만 원도 안 한다.

아침, 점심, 저녁 가격은 중문 서류에만 적혀 있다

신문 기사에서 10,000 위안(170만 원)씩 낸다고 봤는데 생각보다 너무 저렴하다. 중국 친구 말로는 하루에 600위안(10만 원) 하는 호텔도 있다고. 내가 운이 좋았다.


[6] 구비 물품

이전 글에서 언급한 구비 물품​은 다시 채워주지 않는다.


[7] 코로나 검사

13일째에 진행한다.

이 내용은 영문 서류에만 있다




언제 아침이 올까 기다리고 있는데 7시 반 즈음 문 밖에서 사부작 사부작 비닐 소리가 난다.

“똑똑똑”

오오오, 드디어 왔는가, 나의 아침. 직원분께서 아직 밖에 계시는 것 같아서 소리가 사라질 때까지 기다렸다. 접촉을 최소화해야지.

아침 대령이오

로봇이 음식 배달해주는 호텔​도 있던데 이 곳은 아날로그 감성 뿜뿜. 일단 달걀이 보인다.


자아, 뭘까요???

어제 발견한 빵의 정체를 밝혀냈다 아침 식사거리였구나

오오오오 요우티아오(油条, 기름에 튀긴 빵)! 또우지앙(豆浆, 두유)! 모두 전형적인 중국 아침 식사 메뉴다. 달걀으로 단백질까지 충족한 식단. 냉장고가 작동을 안 하다 보니 시원한 물을 마실 수 없었는데, 시원한 또우지앙 한 모금에 행복해진다.


밥 먹고 한숨 자고 싶었는데 오전 9~11시 사이에 체온 측정을 한대서 기다렸다. 그런데 아무도 문을 안 두드리네?? 감감무소식.


11시가 되었길래 어제 위챗에서 친추한 직원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체온 측정은 언제 하나요?”

“오후 2시에 시작이에요. 방마다 하나하나 다 돌아다닐 거라서 2~4시 사이면 갈 거예요.”


그럼 괜히 깨어있었네? 마음 놓고 쉬어야겠다.


“띠리리리링”

10분쯤 지났을까. 전화 한 통이 왔다. 체온 측정 때문인가 싶어 얼른 수화기를 들었다. 중국어로 뭐라 쏼라쏼라하는데,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었고, “내 온도는 36.4도예요.”라고 말하니 그게 아니란다.


“저는 통역사예요. 위챗 아이디 알려주시고, 여권과 비자 페이지 사진 찍어서 위챗으로 보내주세요.”

아하. 안내문에 통역사가 있다더니. 이런 건 세심하게 다 준비해놨네. 사진은 어디에 쓰는 거냐니까 이 정보를 업로드해야 된다고. 필요한 사항이 있으면 본인한테 연락하란다. 친절친절.


수화기를 내려놓자 바로 ‘translator’라는 위챗 메시지가 왔다. 사진을 보내고 나서 중국어를 연습하고 싶으니 계속 중국어로 얘기하고 싶다고 했다. “오케이(好呢)”란 답신. 오예, 공짜 중국어 연습이다.


“똑똑똑”

12시가 되니 칼같이 노크 소리가 들린다. 점심이다!! 노크도 딱 3번만 하는 이 규칙성! 두근두근하며 비닐봉지를 열어본다.

새우, 닭고기, 야채, 그리고 어묵볶음 느낌의 두부볶음

옴마야, 여기 밥 왜 이렇게 잘 나와??? 탄단지 제대로네?? 호텔 컨디션도 좋고, 아침도 맛있어서 내심 기대를 했건만 이렇게 훌륭한 식사라니. 젓가락에는 한글이 적혀 있어서 더 반갑다. 나 한국인이라고 배려해주는 건 아니겠지? 하하

두리쥬와 워어어어

닭고기, 야채, 새우 모두 기름에 푹 볶아서 기름지긴 하지만 다 맛나다. 지금 몸에 들어간 기름은 나중에 격리 해제하고 많이 걸어 다니면 빠지겠지. 신나게 밥을 퍼먹었다.


식사를 마치고 나니 따스한 오후 햇살이 내리쬔다. 앞으로 살 집을 구해야 되는데. 이 방 정도만 되어도 원이 없겠다. 햇볕이 정말 잘 든다.

햇살에 그림자가 내려앉는다


“똑똑똑”

4시가 되니 누군가 문을 두드린다. 체온 측정 직원이다. 원거리에서 비접촉식 체온계로 내 체온을 측정하더니 정상이란다.


본인이 체온계로 사진을 찍어서 위챗으로 보내야 하는 호텔도 있다던데. 입소 첫날 수은 체온계 같은 걸 하나 줬는데 안 쓰는 건가? 호텔에서 나눠주는 수은 체온계는 위생상 안 쓰는 편이 좋다고 해서 비접촉식 체온계를 하나 사 오긴 했는데 쓸 일이 없겠다.


5시가 넘어서 또 노크 소리를 기다렸다.

“이를테면, 네가 오후 네 시에 온다면 난 세시부터 행복해지기 시작할 거야. 시간이 흐를수록 난 점점 더 행복해지겠지. 네 시에는 흥분해서 안절부절못할 거야. 그래서 행복이 얼마나 값진 것인가 알게 되겠지! 아무 때나 오면 몇 시에 마음을 곱게 단장을 해야 하는지 모르잖아. 올바른 의식이 필요하거든."

어린 왕자를 기다리는 여우 느낌. 그런데 5시 반 넘도록 노크 소리가 안 난다. 이제는 알아서 챙겨가라고 노크를 안 하나 싶어서 문을 열어보니, 짜잔!!

미역, 숙주볶음, 소고기, 계란말이

와, 여기 밥 너무 잘 나온다. 내가 가져온 비상식품이 필요가 없겠는 걸? 소고기 간이 조금 세긴 했지만 진짜 기대 이상이다. 살찌겠어.


다 먹고 나서 저녁 도시락에 동봉되어 있던 위챗페이 QR 코드를 살펴봤다.

QR 코드 사용이 일상적인 이 나라

식비를 위챗페이로 내라는 안내문이었다.

60위안/일*13일+2끼=815위안(13.8만 원)
결제할 때는 방 번호 표기

나는 중국 번호가 없어서 위챗페이 결제 인증이 안 되기 때문에 통역사에게 현금 지불이 가능하냐고 위챗 메시지를 보냈다.


“알리페이는요?”

“알리페이도 결제 인증을 못 받아요.”

“정 안되면 격리 끝나고 현금으로 낼 수밖에 없네요. 대신 내줄 사람을 찾는 편이 가장 좋아요.”

“격리 끝나고 현금으로 내도 될까요?”

“그럼 나가는 날 프런트 데스크에 가서 결제하세요.”

다행이다.


온전히 하루를 보내보니 난 자가격리 체질인가 싶다. 이렇게 합법적으로 아무것도 안 해도 되는 기간이 언제 또 오겠어. 2주 잘 버틸 수 있을 거 같다. 내일 메뉴가 뭘지 벌써부터 기대된다.


2일 차 일기 끄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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