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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피 Nov 13. 2020

배달 식품의 행복을 아시나요?

[자가격리편 #3] 중국 배달 앱 사용 실패기

자가격리 3일 차. 파블로프의 개처럼 7시 전에 저절로 눈이 떠진다. 알람도 안 맞추는데 몸이 귀신같이 밥시간을 안다.


7시부터 ‘똑똑똑’ 소리를 기다리며 귀를 쫑긋 세우고 있었다. 그런데 7시 반이 넘어도 노크 소리가 안 들린다. 이제는 노크를 안 해주나 싶어서 문 밖을 열어보니 달걀이랑 또우지앙(豆浆, 두유)이 보인다. 어제랑 같은 메뉴인가?

반가운 비닐 봉다리

오, 아니다!! 다른 거다!!

보리빵, 만두, 그리고 어제와 같은 계란, 도우지앙

오늘은 탄수화물 위주네? 비상용으로 가져온 참치캔을 꺼내야 하려나? 만두도 속이 없는 그냥 흰 만두겠지?

속이 없으면 안 먹을 생각으로 만두를 갈라보았다.

사진은 이렇지만 정말 맛있음

와, 버섯과 야채가 한가득이다. 아... 여기 밥 다 너무 감동이잖아. 한 입 베어 먹어보니 간도 적절하다. 진짜 흡입하듯이 후딱 먹어치웠다.


밥 먹고 열심히 글 쓰고 있는데 10시 즈음 노크 소리가 들린다. 체온 측정이다. 사람 얼굴을 보니 반갑다. 그 얼굴이 마스크에, 고글에 가려져있더라도. 이번에는 원거리가 아닌 손목 위에서 체온을 측정한다. 기계 종류가 다양한가 봐?


11시 45분 즈음 쓰레기봉투를 정리했다. 정오가 수거 시간이라서.

면세품 포장지 때문에 봉투가 빵빵

쓰레기봉투를 세어보니 14장보다 적길래 이틀에 한 번 꼴로 배출할 생각이다. 문 밖을 보니 이미 다들 봉투를 내놓았다.

의료폐기물로 분류되는 쓰레기

12시가 되어가니 노크 소리가 들린다. 앗싸, 밥이다. 오늘도 푸짐하군요.

치킨인줄 알았는데 생선이었음

그런데 5분 뒤에 또 노크 소리가 들린다. 아니 이 건 무엇??????

영롱한 과일의 자태

5분 뒤에 또 노크 소리가 들린다.

아니, 생명수 니가 왜 거기서 나와

천사분께서 감사하게도 싱싱한 과일과 생명수를 하사하셨다. 이래서 방 번호를 물어보셨구나. 역대급 감동이다. 한국에 있을 때 아침에 사과를 먹었어서 사과 생각이 났는데 어찌 아시고. 게다가 귀한 용과까지. 한 입 베어 물으니 너무 맛있다. 게눈 감추듯 사과 한 개도 클리어. 점심 도시락이 눈에 안 들어온다.

먹기 좋게 미니 포크도 같이 들어 있다

물 비축량도 넉넉해졌다. 호텔에서 하루에 1리터 정도 마실 물만 줘서 들고 온 전기포트로 물을 끓여 마셔야 하나 했는데 덕분에 마음껏 마실 수 있겠다.


2시 50분이 되자 체온 측정하러 또 다른 직원이 왔다. 이번에는 어제 오후처럼 원거리에서 측정. 이제 익숙해져 간다.




나도 선물을 할까 싶어 신선식품 배달 앱 허마셴셩(盒马鲜生), 배달 음식 앱 어러머(饿了么), 그리고 아까 배달 영수증에 적혀있던 메이투완 와이마이(美团外卖)를 써보기로 했다. 중국 번호가 없어서 안 될 것 같지만 한 번 해봐야지.


1) 허마셴셩

로고가 하마여서 河马先生(하마선생)이라고 표기하는 줄 알았더니 동일한 발음에 다른 한자인 盒马鲜生이 서비스명이다. 이름 참 잘 지었다. 통을 의미하는 盒, 신선(新鲜)하다의 선(鲜)이란 단어가 들어가 신선 배달 서비스 느낌이 물씬. 중국어는 이래서 재밌다.


그런데 앱 스토어에 검색해보니 없다. 내 선불 유심이 홍콩 번호라서 그런가. 이 친구는 격리 끝나고 다운 받아봐야지.


2) 어러머(饿了么)

사장님용만 나온다. 알리바바가 인수한 회사​여서 그런지 로고에 타오바오 앱과 동일한 디자인으로  ‘11.11’이 적혀있다. 어러머는 ‘배고프니?’라는 뜻이다. 응, 나 시원한 음료 고파.


3) 메이투완 와이마이(美团外卖)

텐센트가 투자한 메이투완 와이마이​는 먼저 위챗에서 접속해봤다. 와이마이(外卖)는 배달 음식, 테이크 아웃이란 뜻이다.

위챗 언어 설정도 중국어로 바꿔야 되는데 흠
내가 격투와 요가를 즐길 사람이라는 데이터가 쌓였나?


위챗 계정이 한국 번호라 먼저 한국 번호로 가입했는데 역시나 ‘정산하기(去结算)’를 누르니 ‘알 수 없는 오류(未知错误)’라고 뜬다.

왜, 왜, 마시지를 못하니


이번에는 앱 스토어에서 앱을 직접 다운 받아 홍콩 번호로 가입했다. 메뉴를 골라 장바구니에 넣으려고 하니 역시나 오류. 핸드폰 번호를 변경하라고 한다.

서비스 못 쓰게 하면서 왜 ‘당신의 계정은 안전한 환경에 있습니다.’라는거지


쳇, 퇴소하면 바로 중국 번호부터 만들 테다. 얼른 중국 앱 써보고 싶다.


궁금증이 생겨 중국 배달 앱에 대해 찾아보니 대충 이렇다.

‘15.4월 알리바바, 어러머에 12.5억 달러(약 1.46조 원) 투자

‘17.8월 어러머, 바이두 와이마이 8억 달러에 인수(약 9천억 원)

‘18.2월 알리바바, 어러머를 현금 95억 달러(약 10.3조 원)와 지분교환 방식으로 인수

*출처: 연세대학교 중국연구원​, 조선일보


점유율은 다음과 같다.

‘17.4Q: 어러머+바이두 와이마이(55.3%), 메이투완 와이마이(41.3%)

‘19.3월: 메이투완 와이마이(61%), 어러머(37%)

*출처: 코트라​, 뉴스핌


어러머가 바이두 와이마이를 인수할 때만 해도 격차를 벌린 1위 탄생이라는 언론 기사가 쏟아지더니 지금은 메이투완이 압도적인 1위다. 어러머는 왜 바이두 와이마이의 점유율을 제대로 흡수하지 못했을까? 나중에 써보면 알겠지 뭐.




5시 40분 즈음 또 노크 소리. 문 밖을 내다보니 내 쓰레기봉투가 안 치워져 있다. 그리고 다른 방 의자에는 입소 첫날 안내 서류를 담아준 투명 봉투가 보인다. 음, 왜 다르지?

내가 쓰레기 배출을 잘못했나 싶어 반대편을 돌아보니 여기도 아직 미수거. 내일 아침에 수거해갔는지 다시 봐야겠다.

동지야, 반갑다

문 손잡이는 언제 해놨는지 테이프로 봉인 중. 방 안에 얌전히 있으란 거겠지?

이렇게 꼼꼼하게 봉인하기도 힘들었겠다

저녁은 여전히 실하다. 마파두부에 오리고기까지! 둘 다 기가 막히다. 마파두부는 숟가락으로 푹푹 떠먹는 맛인데 아쉬운 대로 젓가락으로 열심히 냠냠.

반찬 종류가 참 다양하게 잘 나온다

도가니는 좋아하는 반찬이 아니라서 맛만 보고 콩을 집어먹었다. 내가 물컹한 식감을 싫어해서 그렇지 간도 적절했다. 거의 뭐 방구석에서 중국 음식 투어 중이다.


3일 차 일기도 이렇게 끄읕-


(+) 덧: 빨래가 지독하게도 안 마른다. 첫날 한 빨래가 아직까지 은근히 축축하다. 한국에서는 하룻밤에 뽀송뽀송하게 마르던 옷들인데 습도가 많이 차이 나는 걸까. 너무 안 마르길래 햇볕이 잘 드는 창가로 옮겨뒀는데도 자기 전에 보니 아직도 영... 화장실 바닥이 빨리 마르는 것이 신기할 정도. 정녕 내 빨래 실력은 청소 실력을 따라오지 못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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