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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reath in Jan 01. 2024

2023, 쉴 만한 물가에서

송구영신의 주절거림

찰랑거렸다. 온통 찰랑거렸다. 바닥나는 듯한 상태와 넘치기 직전의 그것이 맞닿아 닮아있다는 것은 얼마나 역설적인가. 실눈 뜨고 뒤 돌아봤을 때 뭔가가 산더미처럼 쌓여있는데 공허가 밀려와 지나온 시간들을 외면했다. 2022년에서 2023년으로 넘어갈 때에 새해맞이 글쓰기를 하지 못했다. 지난 2년은 실로 방전 상태였다.


2023년에 가장 잘한 일은 급속충전을 위해 한 달간 안식휴가를 다녀온 것이다. 30대의 나는 폭발하거나 망가지지 않고 서서히 멈춰 설 때를 안다. 나를 돌보는 방법도 알고 있다. 감사한 일이다.


시공간을 아우르는 여행을 하는 것으로 스스로를 땜질했다. 20대의 내가 반짝거리던 곳에서 오감으로 모든 것을 되새김질하는 시간. 형언하기 힘든 감정의 홍수 속에서 영혼을 충전할 수 있었다. 사하라 사막에 누워 흐드러진 별을 보며 순간을 만끽했다. 같은 도시에서 전엔 몰랐던 사랑스러움을 느꼈다. 매일의 공기와 도처의 노을, 낯선 다정과 친절들, 기분 좋은 긴장감, 곁의 벗과 나누는 시시콜콜한 이야기들 하나하나가 소중했다.


추스르고 돌아온 뒤엔 여러 기회들이 불시에 다가오기도 했지만 매번 망설이다 머무르기를 택했다. 스스로를, 나아갈 방향을 충분히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옳은 선택, 더 나은 결정이 있는지 알 수 없었다. 확신은 위험하대도 의심뿐인 마음은 참 힘들다는 생각을 했다. 대신 작은 책임을 지는 역할을 맡고서, 혼자가 아니라 함께 일한다는 것의 또 다른 차원을 겪었다. 자신에 대한 믿음은 부족하지만, 나를 믿어주는 사람들에 대한 믿음으로 버텼노라 고백한다.


부쩍 소중한 사람들이 갑자기 아프기도 했다.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삶과 죽음에 대해서 자주 생각했다. 죽는 것이 두려웠던 시절이 있었다. 죽음이 무서워서 잠이 오지 않던 어린 날들. 지난 몇 년 사이 산다는 것이야말로 진짜 무서운 것이라는 사실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영혼에 나이테가 새겨질 때 찾아오는 통각이다.


2023년이 시작되던 무렵에 죽기 전에 생각나는 사람에게 표현할 말로써 발명된 것이 사랑이라는 문장을 읽었다. 오늘 죽게 된다면 그 순간 떠올릴 사람들을 헤아려본다. 그들 덕분에 내게 열렸던 크고 작은 세계들이 있다. 2024년에는 오늘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그 모두에게 한껏 다정하게 매일을 살고 싶다.


기복신앙의 꽃인 새해 말씀 뽑기로 온라인에서도 오프라인에서도 언약(Covenant)에 관한 구절을 받았다. 가장 좋은 때에 돕는 손길이 거칠고 메마른 모든 것을 도닥여 풍요롭게 할 거라고, 꼭 필요한 위로가 와닿았다. 마음이 몽글거렸다. 그러니 영원한 약속으로 반짝이는 무지개를 좇아 또 한 해를 영글게 살아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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