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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대일 Jul 15. 2024

김밥

   아침잠 많은 마누라가 일요일인 어제 새벽 5시에 잠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부엌으로 직진했다. 프라이팬을 달궈 뭘 지지는 게 전날부터 오지게 마음먹은 성싶다. 

   머리 감고 볼일 본 뒤 주섬주섬 옷 입어 나갈 채비를 하려는데 식탁 위에 그릇 두 개가 훈김을 식히고 있었다. 달걀지단에 말린 김밥이었다. 

   서방 점심을 준비하느라 단잠까지 유예한 마누라가 고맙기는 하나 안 하던 짓을 하면···, 슬쩍 불안해졌다. 그래도 모른 척할 순 없어서 마누라 엉덩이를 슬쩍 만지고는, 

   "남편 끼니까지 챙겨주니 고맙네 그려."

   나쁘지 않은 표정을 확인한 뒤 문을 나섰다.

   이런 김밥은 결코 '김빠진 김밥'은 아니고 '먹다 보면 목이 메는 밥'이다.


김밥

    이재무


​김밥은 김빠진 인생들이 먹는 밥이다.

김밥은 끼니때를 놓쳤을 때 먹는 밥이다.

김밥은 혼자 먹어도 쑥스럽지 않은 밥이다.

김밥은 서서 먹을 수 있는 밥이다.

김밥은 거울 속 시들어가는 자신의 얼굴을 힐끔힐끔 훔쳐보며 먹는 밥이다.

김밥은 핸드폰 액정 화면을 들여다보며 먹는 밥이다.

김밥은 숟가락 없이 먹는 밥이다.

김밥은 반찬 없이 먹을 수 있는 밥이다.

김밥은 컵라면과 함께 먹으면 맛이 배가 되는 밥이다.

김밥은 허겁지겁 먹을 때가 많은 밥이다.

김밥은 먹을수록 추억이 두꺼워지는 밥이다.

김밥은 천국 대신 집 한 채가 간절한 사람들이 먹는 밥이다.

먹다 보면 목이 메는 밥이다.

터널처럼 캄캄한 밥이다.

바다에서 난 생과 육지에서 나고 자란 생이 만나 찰떡궁합을 이룬 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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