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방에 기대어 사는 날이 이어지자 버거운 것들이 툭툭 생긴다. 바닥에 널브러진 머리카락 무데기를 치우는 일이 우선 버겁다. 손님들이 밀리건 말건 작업하는 순간만은 고된 줄 모르고 무아지경에 빠지는 깎새. 한창 신나게 깎다 보면 대기석은 쥐도 새도 모르게 텅텅 비어 있다. 아, 점점 고수의 향기를 풍기는 이 득의양양을 어찌할꼬!
허나 작업이 끝나자마자 처지는 확 달라진다. 산지사방에 나동그라진 머리털을 쓸어 담으려고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집어드는 순간, 잠시 잊고 있었던 육신의 고통이 너울처럼 사정없이 몰려든다. 특히 뻣뻣하게 직립을 고수했던 허리가 그깟 잡것에 어이없이 굴복하고 말면 쑤시고 마치는 통증이 친구하겠다고 달려든다.
별일 아닌데 별쭝맞게 군다고 비웃는 작자가 나타난다면 깎새는 터진 입이라고 함부로 나대는 방정맞고 경솔하기 짝이 없는 그의 아가리를 결코 먼저 꿰매지는 않을 테다. 대신 깎새 점방으로 정중하게 초대해 끼니마다 후하게 받들어 모시는 건 물론이거니와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는 칙사로 대접할 용의가 분명 있다. 조건은 단 한 가지. 깎새가 작업을 끝내고 나면 그길로 빗자루 들어 널브러진 머리털을 쓸고 쓰레받기로 담는 것, 그것만 일껏 해주기를 바랄 뿐이다. 그렇게 일주일만 깎새와 사이좋게 지내보자. 그러면 깎새가 왜 이다지도 버거워하는지 뼈에 사무칠 테니까.
자기가 가져갈 수입 일부를 포기하면서까지 알바에 집착하는 커트점 원장 속셈을 비로소 눈치챈 깎새. 60년 경력을 자랑하는 깎새 부친서껀 개업하기 전까지 근 2년 가까이 시다 노릇하던 주례 커트점 늙은 여자 원장이 이구동성으로 커트의 기본은 빗자루질부터라는 건 순전히 제 신간이 편하려고 지어낸 허구다. 그들은 진작에 알았던 게다. 바닥 구석구석에 산재한 머리카락 쓸다가 허리 나갈 확률이 커트해서 떼돈 버는 확률보다 훨씬 높다는 걸. 그러니 리스크를 전가하는 수단으로 알바를 쓸 수밖에 없었겠지. 그러고 보니 뭣도 모르면서 시다 노릇하겠다고 달려들 때 커트 기술 전수는 안중에도 없고 바닥 머리털만 들입다 치우라고 닦달하던 원장들은 다들 한통속인 게다.
하지만 막상 개업을 하고 꼴에 원장이랍시고 대접이란 걸 받다 보니 그때 그 원장들 오죽했으면 하는 측은지심이 야속함을 뒤덮고도 남으니 깎새란 자야말로 참으로 간사한 인간이로고. 숫제 같은 병에 걸린 피붙이를 가엾게 여기는 동병상련 지경에까지 이르렀으니, 무심한 세월 앞에 유리허리만 갈수록 위태로워질 텐데 이참에 시다를 들이긴 들여야 하는지 정말 심각하게 고민에 들어간 깎새.